내용 : “선거규정이 너무 빡빡해요. 공고가 난 후에는 인사도 제대로 못해요.” 최근 모 농협의 조합장 선거에서 참관인으로 활동한 한 조합원의 말이다.
지난달부터 본격화된 제 3기 민선조합장 선거는 선거 결과라는 ‘내용’은있으되 ‘바람’은 없다. 현행 선거규약이 너무나 썰렁하기 때문이다. 농축수협을 통틀어 전국에서 1천5백여개의 조합이 선거를 치르고 있지만 플래카드 하나 걸린 곳이 없다. 거리에서 인사하는 후보도 없을뿐더러 뛰어 다니는 자원봉사자 한명 없다.
그런 속에서 ‘모 후보는 돈을 억대를 쓰고 있다’, ‘모 후보는 어느 학교 인맥을 동원하고 있다’, ‘모 후보는 종친회에서 밀어준다’ 는 등의소문은 무성하다. 형식은 깨끗한데 내용은 예전대로라는 얘기가 설득력을가진다. 선거규정이 워낙 ‘공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그렇지 할건 다한다는 후문이다.
“척사대회(윷놀이) 한곳에 10만원은 쓰는 것 같아요. 이런식으로 경조사에 쫓아다니면 암만 안써도 기천만원은 안들어 가겠어요?” 최근 축협조합장 출마의사를 밝히고 있는 한 인사의 변이다. 후보당 최소 기천만원에서억대까지 쓴다는 말이 정설처럼 이번 선거에서도 돌고 있다.
그러니 죽어나는 건 돈 없고 공명선거에만 의지하는 후보다. 선거규정은빡빡해서 발로 뛰는 것도(호별방문, 거리유세) 금지돼 있는데 돈 쓸사람은다 쓴다니.
“어려움이 많았어요. 젊은 사람이 조합원들에게 어필하려면 인사도 중요하지만 정견발표 정도는 할 기회를 줘야죠. 합동연설회 말입니다.” 지난달대규모 농협중 하나인 경기 송탄농협의 차기 조합장으로 당선된 문창호씨의 말이다. 문창호씨는 당선되기는 했지만 대중 앞에서 소견을 밝히는 기회가 제한됐다며 선거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협동조합발전연구위원회 위원장도 지낸 전문가로서 그의 지적은시사하는 바가 있다. “투표구별, 지역별로 한 번정도는 대중연설의 기회를줘야 합니다.”
협동조합 임원선거규약은 공명선거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이처럼 실질적인 소견발표마저 제한하고 있다.
지역농협 정관부속서 임원선거 규약(예)을 보면 ‘후보자는 선전벽보의 첩부, 소형인쇄물의 배포 및 합동연설회의 개최 중에서 위원회가 정하는 1 이상의 선거운동 방법과 선거공보외의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는것이다. 이는 공명정대한 선거를 치른다는 목적으로서는 이해할 수 있지만실질적으로 신진기예들의 조합장 진출을 가로막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지적이다. 현직 조합장이나 지명도 높은 인사가 유리한 제도라는 것.
그런다 해도 이번 선거는 ‘변화’의 전기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당선자의 면면은 나중 선거가 끝난 뒤 소상하게 분석되겠지만 현재로선 참신성을 가진 인사들이 약진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얘기가 조심스레 나온다. 지난달 충남 천안 입장농협이나 경기 송탄농협의 조합장선거만해도그렇다. 경험과 전문성은 기존 인물만의 전유물은 아니며, 조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사들은 같은 수준의 전문성에 변화와 개혁의 바람을 몰고 올수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는 여론이다.
그런점에서 현행 선거운동규정은 형식에서는 ‘공명’을 보장하고 있지만 내용면에서 ‘투명성’을 다 보장한다고 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극도의 선거운동 제한이 상대적으로 기존 인물들의 기득권을 보장할 가능성이다분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운동은 활발하되, 돈을 안쓰는 깨끗한 선거, 공약과 소견으로승부하는 선거, 외부적인 간섭을 배제하는 자율적인 선거가 되도록 만든다는 정신으로 현행 선거제도를 운용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나아가 잘못된 점이 있다면 다음 선거를 위해서라도 제도를 개선하는 노력이 협동조합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발행일 : 97년 3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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