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농협의 조합장 선거는 농협 합병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합병시기에서나타나는 특징은 조합장 선거 바로 전 해와 선거를 치르는 해에 합병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반면 선거 직후에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는 합병이 조합장들이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 활발하고 임기가 시작된 직후에는 현실적으로 추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 선거와 맞물려 89년 19건, 90년 6건, 92년 8건, 93년 25건의 합병이이뤄졌고, 올 2월~내년 3월까지의 3기 민선조합장 선거와 관련해서도 합병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합병은 이번 3기 선거시기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지난해말 농협중앙회와 정부가 ‘농업협동조합 합병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것도 올해 선거시기를의식한 측면이 크다. 조합장 선거와 합병은 함수관계인 것이다. 조합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도 합병문제를 주요 공약사항으로 다루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전국에서 2백27개 조합이 선거를 끝낸 20일 현재까지 대두된 공약사항 가운데도 “합병을 주도하겠다”는 공약이 적지 않다. 합병주도 공약은주로 지명도가 있는 다선 조합장들이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2월말 실시됐던 충남의 한 조합장 선거에서 22년 동안 조합장을역임한 M 후보의 소견은 이들의 논리를 그대로 대변한다.
“이번 조합장 선거는 합병법 때문에 우리 고장 뿐 아니라 밖에서도 알려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래했기 때문에 상호금융 대출한도를다른조합의 몇십배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합병되면 누구를 내보내시겠습니까?” 앞으로 합병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될 것이고 이 때 지명도가 있어야합병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논리다. 이런 소견에는 현직 조합장이 신진인사보다는 합병에서 유리하다는 논리도 숨어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가바로 합병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합병의 당위성에 공감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합병을 주도해야만 합병이 잘될것이라든지, 다른 조합에 흡수당하면 무능력한 조합이라는 생각을 조합장들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합병문제를 놓고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이유에선지 선거시기에 들어서도 합병은 예상보다 부진한 것이 사실이다. 농협중앙회 합병추진사무국에 따르면 선거 전해인 지난해 10개조합(4건)이 합병에 참여, 6개조합이 소멸됐으며, 선거를 치르는 올해에는 21일까지 7개의 조합(2건)이 합병에 나서 5개 조합이 소멸됐다. 이는 당초 정부등에서 2001년까지 존속조합수를 5백개 수준으로 하고 향후 소멸조합수를96년 33개, 97년 1백80개, 98년 3백40개, 99년 000년 각 1백개, 2001년 1백3개로 예상했던 것에 크게 미달하는 것이다.
현재의 분위기로 보아 이런 계획대로 된다는 전망은 극히 불투명한 상태다. 농협중앙회도 당초 정부에 대해 합병촉진법을 건의할 만큼 의욕적으로나섰다가도 막상 선거가 시작되자 “5백개 합병계획은 지역에서 취합된 것”이라며 한발 빼는 자세다. 이같이 애매한 태도는 조합장들의 반발을 의식해서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특히 조합장들은 지난 95년말 농협법이개정된데다 지난해말 합병촉진법의 제정으로 이번 선거가 새로운 환경을 맞기 이전의 마지막 기회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합병보다는 재선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합병대상 조합장들의 재선에 대한 미련과역시 중앙회장 선거를 1년 남짓 앞두고 조합장들을 무시할 수 없는 중앙회의 눈치보기가 합병문제를 지체시킨다는 지적이다.
합병문제는 당위성만 가지고 밀어부치기가 어려운 ‘뜨거운 감자’임에는틀림없다. 합병의 기본원칙도 자율합병이 아니면 안된다. 그러나 이대로 방치되기에는 오늘 농협이 처하고 있는 여건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재선이중요한 조합장들이나 예전처럼 하향식으로 밀어부치지 못하는 농협중앙회나정부 모두 조합원과 농협의 미래를 생각하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합병문제를대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발행일 : 97년 4월 24일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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