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올해 처음 실시되는 추곡 약정수매의 약정체결과 선금 지급이 일단 종료되면서 이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쌀의 약정수매제는 지난달까지 수매목표 8백50만석(정부수매 5백만석, 농협 차액수매 3백50만석)을 채우기는 했지만 핵심내용 가운데 하나인 선금지급은 77% 수준에 그쳐 농가들의 불만이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이 제도는 당초 연초에 수매물량과 가격을 사전 예시, 농가의 안정적 계획영농을 유도하고 현재 수매가격 이상의 하한가격을 보장해 소득증대를 도모한다는 취지를 내포하고 있었다. 또 영농기에 선도자금 지급을 통해 소득지원효과를 높이고 수확기에 자율선택권을 부여, 민간유통활성화와 자율영농정착을 유도한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이 제도는 정부의 당초 홍보와는 달리 시행과정에서 새로운 문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우선 올해 약정수매가격이 지난해 수매가격으로 동결됐다는 점이다. 지난해 수매가격을 95년에 비해 4%만 인상하고 올해 약정가격을 지난해 수준에동결했으니 4년동안 단지 4%만 인상한 셈이다. 이는 그동안 소비자물가와영농자재가격이 20% 이상 인상된 것을 감안할 때 농민들로서는 납득할 수없는 조치다.이로써 약정수매제는 ‘하한가 보장을 통한 안정적인 소득보장’이 아니라‘하한가 지정을 통한 시장가격의 동결’이 됐다는 평가다. 기존의 추곡수매제도가 쌀값 지지효과를 가졌던 것과는 달리 정부가 의도하는 약정수매제도는 반대로 수매가 동결과 개방에 대비한 국제시세의 유지가 초점이라는것이다. 이렇게 쌀값을 묶을 경우 수확기 쌀값의 하락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며, 이는 계절진폭 15% 허용에도 불구하고 소득보장을 어렵게 하고 결국농가피해와 쌀농사 포기, 쌀자급 실패, 쌀시장 전면개방의 수순을 밟게 된다는 게 농민들의 주장이다.또 선도금 비율 40%는 지나치게 적어 푼돈으로 영농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 아니라 기존 농업경영자금을 대체하는 빌미가 될 수도 있고 반환금리7%, 선도금 반환기간 경과후 이자율 15%는 정책자금 금리가 보통 5%인 점을고려할 때 고리채적 성격마저 가진다는 지적이다.그리고 현 약정수매제도는 자연재해 등 돌발사태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평이다. 현 규정은 재해가 발생할 때 재해구호 및 복구 비용 부담기준에따른다고만 돼있어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이 때문에 농민들은 대풍, 홍수,가뭄, 냉해 등 자연재해와 돌발변수가 있을 경우 약정물량 만큼 수매에 응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농가경제가 어려워 선도금을 반환하지 못할 경우 또 하나의 부채요인이 될 수 있다는 문제제기도 나온다.한편 약정수매제는 매년 추곡수매 시기만 되면 낮은 수매가와 적은 수매량으로 농민들의 저항과 국회동의과정에서 난관에 직면했던 정부가 이를 피하는 수단으로 도입했다는 의도가 짙게 풍긴다는 분석이다. 수매가와 수매량이 동결 내지 축소되는 상황이라면 약정수매제는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수단이지, 농가소득증대와 식량자급이 목적인 제도가 결코 아니라는 지적이 강하다.따라서 농민들은 정부가 현행 약정수매제도가 기존 수매제도보다 어떤 장점이 있는지, 쌀자급에 효과적인지와 농민이 원하는 제도인지를 재검토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특히 농민들은 올해 수매가 동결조치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하한가격은 물가상승률과 영농의욕, 생산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수매량은 농협을 통한 시가수매 등을 통해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는 게 농민들의 여론이다.이와 함께 선도금은 푼돈화를 방지하기 위해 40%가 아니라 80% 이상 지급하고 선도금 반환이자는 다른 정책자금처럼 5% 이하가 돼야하며, 자연재해시는 3%~무이자까지 신축적인 운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매기간 종료후반환금리 15%는 즉각 철회해야 한다는 지적이다.이같은 불씨를 안고 약정체결과 선도금 지급은 일단 종료됐다. 그러나 이것으로 올해 수매는 끝난 것이 아니다. 선도금 지급이 77%에 그친 것은 농민들의 불만을 웅변하는 것이다. 오는 11월~12월로 예정된 수매시기에 예년과 같은 악순환을 겪지 않으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자세가 정부에게는 필요하다.<이상길 기자>발행일 : 97년 5월 15일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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