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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기업·일부 부처 중심 농지전용 억지논리 ‘기승’
내용 : “식량이 뭐그리 특별한가. 오히려 식량보다 기름이 급하다. 충분한 가격만 낸다면 식량은 얼마든지 필요로 하는 만큼 구입할 수 있다. 수경농법만 있다면 남한농지의 2%만 가지고도 5천만 인구에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다. 식량안보, 환경보전, 농민생계보장 논리는 근거없는 믿음일 뿐이다.”
지난달 28일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비롯한 경제5단체가 공동으로 구성한 ‘국가경쟁력 강화 민간위원회(대표의장 최종현)’가 새정부의 개혁과제와 21세기 국가비전을 제시한다고 주최한 ‘토지개혁,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말이다. 발표자는 김정호 전경련 자유기업센터 법경제실장.
전경련을 비롯한 대기업들과 재경원, 건교부, 공정거래위원회, 국토개발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 등이 ‘규제개혁과 시장경제 활성화’를 빌미로 농지를 무제한 내놓으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이들의 논리는 ‘농지규제가 산업발전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식량안보, 환경보전, 농민생계 보장의논리는 허구이므로 시장을 개방하고 농지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일경제신문, 삼성경제연구소, ㈜대우, 건교부 등이 토론자로 나선 이날 심포지엄에서 김정호 실장은 “투기억제나 토지공개념은 낡은 패러다임”이라고 몰아세웠다. 그는 “토지가격을 낮추려면 그린벨트, 농업진흥지역, 임야보전제도, 각종 밀도 및 용도규제를 폐지, 토지공급을 증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래규제가 국민들의 도덕심 타락을 부추겼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앞서 윤영석 대우 총괄회장(전경련 기업경영위원회 위원장)은 기조연설에서 “산업용지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전국토의 26.4%에달하는 준농림지의 적절한 개발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은 다음날인 2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토개발연구원 주최, 공정거래위원회·건설교통부·한국개발연구원 후원의 주요분야별 규제에 대한 구조적 개혁방안 ‘산업입지 및 공장설립부문 공청회’에서 보다구체화됐다. 주제발표자인 박헌주 국토개발연구원 토지연구실장은 “우리나라는 공장용지 가격이 비싸고 농지규제 등 각종 규제로 설립절차가 복잡해산업경쟁력 강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며 공장용지와 산업단지 확보를 위해 일부 전용절차를 생략하고 지자체에 권한을 대폭 위임해야 한다고주장했다. 국토개발연구원은 지난 8월21일에도 건교부와 함께 ‘규제완화를통한 토지공급의 원활화’라는 공청회를 통해 준농림지의 대폭적인 도시계획구역 편입을 제시한바 있다.
이들의 논리는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완화” “국민들을 위한 행정규제 철폐” “효율성 있는 농업”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으나 실제로는값싼 토지, 특히 농지를 무제한 점유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특히 재경원을 비롯한 경제당국은 경제실정을 타부처의 규제때문으로, 대기업들은 스스로의 국제경쟁력 약화를 마치 농지규제 때문인 것처럼 떠들고 있다.
그러나 토지가격 상승은 농지규제보다는 용도변경이 불러왔다는게 정설이다. 기업들의 주장에 밀려 지난 94년 준농림지를 지정함에 따라 땅값이 오르자 이제는 진흥지역까지 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지이용규제권한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한 뒤 러브호텔과 음식점만 늘었다는 것은주지의 사실이다.
29일 공청회에 유일하게 농업관련 대표로 토론에 참석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박시현 박사는 “개별공장입지에 대한 규제완화와 농지대체조성제도를 부담금 납부로 바꾼다는 것은 기업에게는 좋겠지만 농지잠식이 필연적”이라며 “식량, 특히 쌀은 지켜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다면 기업도 이를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8일 심포지엄에서 삼성경제연구소 이규황 부사장의 경우 “현재 식량자급률은 25%에 불과하고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했어도 세계적으로 곡물재고는 줄고 있다”며 현재 농지의 2%만 있으면 된다는 논리를 반박하고 “토지공급은 난개발이 아닌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말하기도 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관계자는 “최근 대기업들의 요구는 경제논리도국가경쟁력강화도 아닌, 차기정부 토지정책에서 재벌중심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며 “누구나 자기 이익을 대변할 수 있지만 최근이들의 움직임은 너무나 자기중심적 억지”라고 비난했다.
발행일 : 97년 11월 3일
이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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