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남 경북 의성군 단촌면 상화2리 <>도시·농촌 어린이·여성 한마음 백일장이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와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공동 주최로 지난 1일 올림픽공원에서 열렸다. 제3회 농업인의 날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개최된 이번 대회에는 1백여명의 여성과 어린이가 참가해 상호간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백일장의 여성부문과 어린이부문 대상 수상작을 소개한다.새벽 세시, 땅을 후벼파며 소나기는 그렇게 울부짖듯 내리기 시작했다. 게릴라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이 붙은 폭우는 경기도를 시작으로 이 땅 구석구석을 공포의 도가니로 끌어 넣으려는 것이다.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드디어 비상사태 선포, 대피에 들어가야하는긴급한 상황, 선잠 깬 아이들은 마당 가득히 들어찬 물살에 놀라 일어났고대피에 동참하기 위해 피난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했다.방 아래쪽 물건들을 우선 장롱위로 올려놓고 중요한 것들만 보자기에 싸기로 했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었다. 평소 천대하던 하찮은 물건들도 모두 소중하게 느껴졌다.피난 보따리를 싸매 방 한구석에 몰아놓으니 6·25 동란시절 피난 보따리가무색할 정도로 궁상맞았다.윗마을 논둑이 터지면 큰일난다며 빗속을 헤집고 다니던 남편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돌았다. 머리 풀어헤친 미친년 처럼 분간없이 퍼붓던 빗줄기가조금씩 가늘어진 것이다.다행이었다. 그러나 무심한 비는 온전하게 떠나지 않았다. 온 들을 모두 쓸고 가버렸다.너댓살먹은 사내아이 머리통만한 수박이 주렁주렁 달린 수박밭은 한 순간에폐허가 돼버렸다. 상인으로부터 이미 계약금까지 받아 둔 터라 더욱 더 안타까웠다.‘그래 모두가 당한 일이다. 모두들 어려울텐데 목숨이라도 온전하니 얼마나 다행인가’하고 나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나는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없었다.유난히 길었던 여름이 가고 이제 가을, 그 한가운데 섰다. 수마가 할퀴고간 자리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와 이 땅의 농부들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밭작물은 모두 쓸어가 버렸지만 논빼미만 온전한게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할까. 곡간에 알곡이 가득하니 부자가 된양 푸근하다.예년의 가을보다 감회가 새로운건 왜일까, 물난리를 겪은 후여서일까? 한톨의 알곡도 너무나 소중하게 여겨진다.지난 여름을 돌이켜보면 나는 너무나 많은 편리함에 길들여져 살아온건 아닐까하는 반성을 하게된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은후에야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여기저기 땔감이 남아 나뒹굴어도 힘들다는 이유로 부엌 아궁이를 메꿔버리고 이 땅에 생산되지도 않는 비싼 기름을 들여 난방을 하고 논둑 밭둑까지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이웃의 따뜻한 정을 주고 받던 품앗이라는 아름다운 풍속도 언제부턴가 사라지고 도시의 구석구석을 헤매 어렵게 인력을 사 들이는게 요즘 농촌 현실이다.십칠년 전, 나는 생수 한모금에 반해 평생 살 곳을 농촌으로 정해버렸다.결혼이라는 아주 중요한 선택을 쉽게 결정해 버린 셈이지만, 그때의 나는편리함보다는 순수함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었다.처음 시댁에 인사갔던 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비포장도로를 덜커덩거리며 달려 나즈막히 엎드린 집 안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실망스런 표정으로 엉거주춤 서 있는 며느리감을 행여 놓칠새라 맨발로 달려나와 내 손을마주 잡아주던 시어머님의 손. 그리고 황급히 내오신 물 한 잔.아! 나는 그때의 물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맑고, 깊고, 차가운 정감,쪽빛의 색채가 얼마나 고운지, 알싸하게 목젖을 타고 내려 간 물 한모금은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진 내 심장을 맑게 정화시켜 주었다.“우리 고운 인연 맺을 수 있을 거에요.”“농촌이라 대접이 시원찮아요. 귀한 손님이 오시면 물 한잔은 대접한다우.”그래, 한 번 살아보자. 생수처럼 맑고 순수하게 살아보리라. 호기심 반 오기 반으로 시작한 농촌생활은 이후 시어머님과도 결고운 사랑으로 이어오고있다.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고 행복을 느끼는 정도도 모두 다를 것이다.그러나 삶의 목표로 행복을 추구함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어디에 둥지를 틀고 사느냐 하는 것보다 어떤 삶을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걸 느끼게 되는 요즈음이다.쌉싸름하고 약간은 매캐한 마른 한약재 같은 그런 냄새가 코끝을 연하게 스치는 들녘이 나는 참 좋다.빈 들녘은 황량해 보인다. 그러나 다음 해의 풍성한 결실을 위해 잠시 비워둔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감사의 마음으로 이어진다.
한국농어민신문webmaster@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