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무수입쌀 44만섬(6만4천톤)을 중국산 식용쌀로 들여오기로 결정하기 두달전인 지난 4월10일 미국미곡연합회(USA Rice Federation)는 서울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져 관심을 모았다. 미국미곡연합회는 미국미곡재배농협회.미국도정업자협회.미국미곡협회 등으로 구성된 압력단체다.이날 이 단체의 한국담당 이사인 윌리엄 지 파머(Wiliam G. Farmer)는 “한국정부가 지난해 의무수입분을 모두 인도산으로 정한데 대해 실망했다”며 “미국과 호주쌀이 품질 측면에서 더 우수하므로 올해 의무수입분에는미국이 참여하기를 희망한다”고 미국쌀을 사라는 엄포를 놓았다.이같은 미국업자들의 행보는 곧바로 통상압력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다.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올 의무수입분에 대한 입찰이있던 시기인 지난 6월 캔터 미 상무장관은 박재윤 당시 통상산업부 장관에게 “미국쌀을 사주기를 희망한다”는 서한을 보냈다. 이어 글리크먼 미 농무장관은 박건우 주미대사에게 “UR 협상 과정에서 한국이 MMA 물량의 50%를 미국산으로 사기로 양해한 일이 있으니 미국쌀을 사달라”고 요구했다.정부는 이런 이번약속을 부인했지만 우리가 미국의 행보를 주목하는 것은UR 농산물협상을 통한 쌀시장의 부분개방이 미국에 근거를 둔 국제곡물상성격의 도정업자들과 곡물메이저(대곡물상)들에 의해 비롯됐기 때문이다. 퍼미사.코넬사.애그로포롬사 등 미국기업들과 미국법인 형식의 일본계 미쓰비시.마루베니 등이 그들이다.이들 곡물상들은 국내외에 정확한 정보망을 가지고 각국의 정부정책과 여론동향은 물론 심지어 인공위성을 통해 우리보다 먼저 우리나라의 작부상황을 파악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다가 흉년이 들었다는 사실을 파악하는순간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대상곡물을 매점해 버린다.이처럼 우리 쌀시장을 노리는 나라는 미국뿐 아니라 호주도 있다. 호주는자국 생산량의 70%를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서 소비되는 자포니카(중단립종)계통으로 생산하고 있으며, UR 이후 두 나라를 겨냥해 ‘밀린’이라는 신품종쌀의 재배를 확대하기 까지 하는 실정이다.중국 역시 요령.길림.흑룡강성 등 상당수의 지역에서 3천만톤 정도의 자포니카쌀을 생산하고 있어 당장은 수출여력이 가장 많은 국가로 꼽힌다. 실제중국은 96년분 의무도입량 44만섬을 공급하기도 했다.그러나 현재 국제 쌀시장에서 거래되는 쌀은 세계 생산량의 4%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일본 등 주요 소비국에서 기상이변 등으로 생산량이 격감할 경우 곧바로 쌀값 파동이 일어나는 실정이다. 미국 A諒중국등이 수출여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들 나라도 관개용수의 제약 등으로 무한정의 쌀을 댈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기상이변이 생길 때는이같은 비탄력성 때문에 UR협정에서 규정한 물량조차 확보하기 힘들 수도있다.바로 이런 불안정성 때문에 국민들은 식량의 자급에 대해 공감을 형성했고, 2004년까지 향후 10년간의 MMA물량 수입은 전량 가공용으로 한정한다는정부의 약속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올들어 재고관리의 어려움을들어 식용쌀(중국산)을 수입함으로써 2년도 채 안돼 대국민 약속을 저버리고 쌀재배농민들의 영농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한편 우리나라는 UR협상에서 쌀의 경우 95년~2004년까지 10년 동안 전면수입자유화를 유예하는 대신 이 기간 동안 88~90년 평균 식량용 수요량 5백13만1천톤의 1~4%를 최소시장 접근(MMA)방식으로 의무수입하도록 허용했다.수입물량에 대해서는 현행 관세율 5%를 적용, 국영무역 형태로 수입키로 했다.이에 따라 95년부터 국내 쌀 소비량의 1%가 수입되고, 해마다 시장접근 비율을 늘려 2004년에는 4%까지 허용된다. 최소시장접근 비율은 95~99년까지는 매년 0.25%, 2000~2004년까지는 매년 5%씩 증가한다.또한 우리나라는 UR협상에서 최소시장 접근물량의 의무수입과 함께 정부수매에 따른 보조금을 감축하기로 했는데, 이것이 바로 추곡수매량 감축의 근거가 된다.쌀의 보조금 감축은 93년 보조금 수준인 2조1천93억원에서 최종년도인2004년 감축수준 1조3천5백98억원에 일치되도록 95년~2004년까지 10년 동안매년 7백50억원씩 감축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2004년의 보조금은 35.5%가줄어드는 것이다.이렇게 계산할 경우 정부 수매량은 95년 9백61만석에서 2004년에는 6백42만석으로 대폭 줄게 된다. 결국 UR협정은 쌀은 최소시장 접근에 따라 의무적으로 수입하고, 수매자금과 수매량은 강제로 감축해야 하는, 우리나라에매우 불리한 내용인 것이다. 이같은 이행계획에 따라 우리나라는 95년분 의무수입량 35만석을 인도산 가공용(인디카, 장립종)으로 수입했고, 이어 96년분 44만석은 당초 약속을 깨고 식용으로 중국산을 도입했다.그리고 우리정부는 이 과정에서 수입관리에 치명적인 허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인도산 가공용쌀은 막걸리나 떡으로도 가공할 수 없는 것을 수입했고중국산 식용쌀도 수입과정에서 품위가 떨어지고 병해충이 발견돼 훈증소독까지 하는 난리를 겪었다. 재고관리를 위해 MMA물량외에 추가수입 검토설도나돌았다.이런 이유로 쌀의 수입관리대책과 UR후속협상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쌀의 경우 비교우위론적인 경쟁력주의로 설명할 수 없다는게 중론이다. 쌀재배면적이 평균 2ha에도 못미치는 나라가 평균 2백ha가 넘는 나라들과 생산비 경쟁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난 6월 조달청이 실시한 입찰에서중국산은 톤당 4백37달러, 미국산이 톤당 5백49달러, 호주산이 5백44달러로응찰한 것을 비교하면 생산비 논리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금방 알게 된다. 중국산의 경우 달러 환율을 1달러당 8백원으로만 환산해도 우리돈으로80kg당 3만5천원에 불과하다. 우리쌀의 산지가격을 13만원(조곡)으로만 쳐도 수입미가 현미라는 것을 감안하면 1/5에 그치는 것이다.따라서 오는 99년말로 종료되는 UR협정에 따라 2000년부터 재개되는 다자간 협상에는 지난 UR협상때 처럼 정부가 주먹구구식으로 임해서는 안된다는지적이 강하게 일고 있다. 새로운 다자간 협상에서는 관세화 예외조치 등철저하게 수입국으로서의 식량주권을 관철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 이전이라도 미국이나 호주 등의 압력에 밀려 SBS제도(업계간자율거래제도; 현재 쇠고기 수입제도로 국내 업자들에게 기본쿼터의 일부를 배정, 정부개입없이 직접수입하는 제도, 일본은 쌀의 의무수입분에 대해 도입)를 도입하는등의 실수는 없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정부는 내부적으로 관세화 유예기간이 끝나기 3~6년전부터 이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를 채택할 경우 유통업체나 요식업자들이 직접수입에 참여, 소비자들에게 판매함으로써 국내산 수요가 줄어들고 국민들의입맛을 급격히 변화시킬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미국 호주 등이 우리나라에 대해 자국산 쌀 수입을 강력히 희망하는 것과 관련해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특히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자칫 쇠고기에 이어 쌀마저 미국과 호주에게 주도권을 내주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쌀의 경우 수입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쌀농가의 소득보장과 농지의 효율적인 관리를 통해 자급을 이뤄내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 약속대로 UR 협정에 의한 의무수입분은 가공용으로 사용함으로써 국내 시장과 격리하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전문가진단> 김성훈 중앙대교수지금 세계 쌀시장은 우리 국민이 잘 먹지 않는 안남미 계통(인디카, 장립종)의 쌀이 85%를 점유하고, 자포니카 계통은 겨우 미국.호주에서 주로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지역의 수출가능물량은 여타 국가들의 것까지 포함해보아야 1백50만톤에 불과할 뿐더러 물 부족과 기상조건때문에 더이상증산의 여지도 크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해도 연간 5백40만톤의 쌀이있어야 한다.쌀시장이 완전히 개방될 경우 땅값이 미국.호주보다 50배나 비싸 생산비가3.5배나 높은 우리나라 쌀생산농가들은 차례로 쓰러질 것이다.이 때 무역가능한 전량을 수입하더라도 국내쌀 수요를 메꾸기에도 부족할것이고, 쌀값은 다섯배, 열배로 치솟을 것이다. 쌀 무역을 주도하는 다국적기업들이 우리 국민을 위해 계속 싼값으로 공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지난 73년 세계 식량파동때와 80년 우리나라의 흉작때 경험한 바다.국민식량의 안정적인 확보라는 측면에서 함부로 주곡인 쌀의 자급문제를자유무역주의에 맡길 수는 없다. 따라서 오는 99년말로 종료되는 UR 농산물협정에 따라 2000년에 재개되는 다자간 협상에서는 식량수입국의 안전보장과 주곡의 자급권리를 관철하는 협정이 만들어져야 한다.<이상길 기자>발행일 : 97년 1월 2일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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