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정부가 ‘경제살리기’의 일환으로 물가안정시책을 펴면서 엉뚱하게 농산물가격을 물가불안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가운데 이런 시책의 근거가 되는물가지수체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행 물가지수체계는 농산물에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만들어져 툭하면 이를 토대로한 농산물값 잡기의 빌미가 되는 만큼 다른 품목과 형평성을 갖도록 개편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물가지수체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 2회에 걸쳐 싣는다.최근 재경원 등 정부 일각에서는 농산물가격을 ‘물가불안의 3대 원흉’이라고 지목하면서 수입량 확대, 관세인하 등 농산물가격 끌어내리기에 골몰하고 있다. 이들은 ‘80년대 3%의 물가안정을 이룬 것은 추곡수매가 동결이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해괴한 논리마저 서슴없이 내뱉고 있다.이같은 주장에 논리적 단서를 제공하는 게 바로 통계청이 조사하는 ‘소비자물가지수’다. 90년 기준으로 지난해까지 사용하다가 올해 95년 기준으로개편된 소비자물가지수의 경우 기준연도인 95년중 도시가계의 월평균 소비지출액중 1/1만 이상의 비중을 갖는 것을 중요품목으로 간주, 이를 조사대상에 넣고 있다. 조사대상품목은 농축수산물, 공업제품, 서비스를 통틀어 5백9개에 달한다.이같이 선정된 품목은 소비지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 곧 중요도가 각기다른데, 이를 물가지수에서는 가중치라고 하며, 1천분비로 표시된다. 쌀의가중치가 27.6이라면 기준연도인 95년 도시가계의 월평균 소비지출액을 1천으로 놓았을 때 쌀의 소비지출액 비중이 27.6 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백분비로 환산하면 쌀의 비중은 2.76%가 되는 셈. 정부는 종종 이러한 가중치를 근거로 쌀 등 농축수산물을 물가인상의 주범으로 몰아 수입량 확대,수매분 방출 등 물가잡기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그러나 우리나라의 물가지수는 농산물의 특성이 일방적으로 무시되고 있다.공산품은 가격이 한 번 오르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반면 농산물은 생산의 계절성으로 인해 수확기와 단경기의 거래량과 가격차가 매우 크다. 그런데도 통계청이 작성하는 물가지수는 어느 한 품목의 거래량이 매월 똑같은물량으로 거래된다고 보고 편제된 것이다. 한 예로 배추의 경우 11월과 12월에 생산 및 출하가 집중되는 만큼 이 시기의 가중치가 다른 시기보다 훨씬 높아야 하는데도 매월 동일하게 작성하고 있다. 이 때문에 거래량이 적은 단경기의 농산물값이 과도하게 물가지수에 반영돼 농산물이 물가상승의주범으로 매번 지목되는 것이다.또한 농산물은 경제발전에 따라 매년 소비지출액중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는 데도 현행 물가지수는 이것을 반영하는 데 극히 인색하다. 이는 쌀과휘발유를 비교하면 단적으로 드러난다. 쌀의 가중치는 90년 기준 53.4에서올해부터 95년 기준 27.6으로 감소했다. 이는 그동안 농민단체들이 쌀에 대한 가중치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해온 것이 다소 수용된 결과다. 그러나 휘발유와 비교하면 이 역시 불합리한 책정임이 드러난다. 휘발유는 90년 8.4에서 95년 22.7로 증가했지만 쌀의 27.6보다 여전히 가중치가 낮다. 휘발유가격이 체감물가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 가를 고려할 때 이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한끼 쌀값이 1백81원 정도에 불과한데 휘발유보다 가중치가 높다니. 이런 불합리성은 다른 식료품도 마찬가지여서 밀가루는 0.2,라면은 1.9, 두부는 1.3, 국수는 0.6, 이유식은 0.7인 것을 보면 쌀의 가중치가 얼마나 높은 지 알 수 있다.농산물과 다른 품목간의 불균형도 심하다. 농산물 가운데 한우고기는 9.9,돼지고기는 8.3, 배추는 3.7, 사과(부사)는 4.7, 수박은 4.3 정도의 가중치를 갖고 있다. 그러나 다방커피 2.7, 콜라 0.6, 소주 2.8, 공동주택관리비6.8, 수도료 5.2, 프로판가스 2.2, 에어콘 0.5, 기성신사복(여름) 2.2, 아동복(여름) 2.5, 미술학원비 3.6, 퍼스널컴퓨터 4.9 등 공산품과 서비스요금은 의외로 낮다. 이것은 실제 물가인상을 선도하는 공공요금, 즉 좌석버스료 2.9, 고속버스료 1.2, 전철료 2.2, 주차료 1.0, 이동식 전화료 2.2,국내우편료 0.1 등에서 더욱 심화된다.이처럼 농산물은 다른 품목에 비해 물가지수에서 과도하게 높게 평가됨으로써 툭하면 ‘민생안정’명목의 칼질을 당해왔다. 이것은 농산물의 특성을무시하고 있는 정부의 물가관이 반영된 결과다.추곡수매가 동결, 정부미 방출, 성수기 농축산물 가격안정대책은 모두 이런 물가관의 소산이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이상길 기자>발행일 : 97년 5월 22일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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