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마다 쭉정이만 무성…농가 90% 수확포기상태

지난 5일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의 한 농민이 냉해로 인해 미처 여물지 못한 벼를 들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빚 상환커녕 생계도 막막"평년 같으면 기쁜 마음으로 수확에 들어가야 할 황금들녘이 잦은 비로 인해 고랭지 조생종 벼가 제대로 여물지 않아 고개를 숙이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어 농민들을 긴장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특히 전북도내 산간지역인 남원을 비롯해 순창, 진안, 장수, 무주 등 5개 시·군의 벼는 저온으로 냉해를 입는 바람에 수확을 하지 못하게 되자 특별재해지역 선포를 요구하는 농민들의 목소리가 들녘을 메아리치고 있다.잦은 재해…농가빚 평균 1억이상'특별재해지역 선포' 요구 메아리5일 남원시 운봉읍 들녘은 쭉정이만 앙상하게 붙어있는 채로 꼿꼿이 선 벼들만이 농민들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가을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이 지역은 지리산 자락 해발 450m로 일찍 찾아오는 겨울 날씨 탓에 평야지보다 한달 가량 빠르게 모내기를 해 매년 전국에서 제일먼저 첫 수확의 소식을 전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수확을 한 농가를 찾아 볼 수 없다. 추수가 예년보다 15일가량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운봉지역은 올 여름 잦은 비와 일조량 부족, 저온현상 등이 겹쳐 1500ha의 벼 재배면적중 90%정도가 피해를 입어 제대로 수확할 수 있는 농가는 10%정도도 안될 만큼 냉해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40여년 동안 논농사를 지어 왔지만 이렇게 심한 냉해는 기억에 없습니다. 알맹이가 충실한 벼를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아요".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 남궁정현(50)씨는 술과 농가부채만 늘어 죽고 싶은 심정뿐이라며 살아있는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울먹였다. 그는 대학생 둘의 자녀를 두고 있다.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모두 휴학계를 내고 군대나 지원하게 했다며 자식이 무슨 죄가 있냐고 한숨만 내쉬었다. 8000평을 임차해 농사짓고 있는 그는 1억여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임차비는커녕 콤바인 삯도 안나오는 벼를 무슨 재주로 수확하냐며 벼에 불을 지를 생각이라고 말했다.1만5000평을 경작하고 있는 운봉읍 준향마을 소대권(47)씨는 "겉으로 보기에는 황금빛을 띠어 잘 된 벼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알맹이가 차지 않은 채 쭉정이만 무성해 80%이상 피해를 입고 수확을 포기해야할 상황"이라며 "지난해 벼 850가마(조곡 50kg)를 수확했는데 올해는 150가마도 건지지 못할 것 같다"면서 하늘을 원망했다. 미질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말란다. 이 수확량도 싸라기가 대부분을 차지할 거란다. 농가경영비, 임차료는 상상도 못하고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데 생계를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막막하다며 정부정책을 믿고 따랐지만 해마다 농가부채만 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정준상 시의원(운봉읍)은 "이 지역은 10년에 걸쳐 태풍, 냉해, 한해 등으로 모두 6번의 재해를 겪는 바람에 농민들은 대부분 1억여원 이상의 빚을 지고 있어 파산상태에 직면했다"며 "진정으로 농민을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정부는 하루속히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하고 이번 기회에 농업재해보상특별법을 제정,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민철yangmc@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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