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하락과 소비둔화로 팔지 못해 쌓여있는 쌀 창고에서 김제시의 김재영씨는 수매가 인하의 부당성을 호소했다.

☞ “차라리 농사짓지 말라고 해라”오랜만에 영상의 기온을 되찾은 5일, 광활한 평야의 김제지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을씨년스러워 보였다.지난 4일 정부가 48년 추곡수매가가 실시된 이후 처음으로 2% 인하 결정을 발표하면서 하루사이에 대부분 쌀 농사를 짓는 이 지역의 농민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정부의 이같은 발표이후 이 지역 농민단체들은 더욱 강경한 투쟁을 서두르고 있는 것 같다고 농민들은 전했다.김제에서 28년째 쌀 농사를 짓는 김재영(47)씨는 “정부의 추곡수매가 2%인하는 한마디로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말고 농업을 포기하라는 얘기”라며 강력하게 정부를 성토했다.추곡수매가 인하는 앞으로 지속적인 쌀값 하락을 부채질, 농업 포기는 물론이요 농업이 붕괴될 수 있다고 그는 예단했다. 김씨는 “쌀 농가의 소득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수매가를 인하하는 것은 2004년 쌀 완전개방을 전제로 의도적인 가격 하락을 조장, 농민들을 농촌에서 내모는 꼴”이라고 주장했다.그는 계속해서 정부를 쏘아붙였다. “정부가 그동안 농민들을 위해 올바르게 해 준 것이 뭐하나 있습니까, 농가부채를 해결했습니까? 소득보전 차원의 논농업직불제가 농민들의 성에 찹니까? 농민들은 해마다 정부를 상대로 쌀 생산비 보장과 쌀 대책을 마련하라고 얼마나 많이 목소리를 높였습니까? 정부가 이 나라 농민들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해서 생겨난 일 아닙니까?” 김씨는 끝없이 반문했다.김씨는 농협에서 만든 쌀 생산비 분석 자료를 불쑥 꺼내들었다. 1200평(1필지)에서 쌀 농사를 지을 경우 종자대를 비롯 육묘관리, 자재대, 농약대 등 각종 비용을 제외하고 나면 자신의 농지 소유자는 187만원 정도의 수익이 나지만 임차농의 경우 8만원 정도의 소득이 발생, 농사를 지어봤자 적자만 누적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기자를 인근 정미소로 안내했다. 쌀값 하락과 쌀 소비 둔화로 쌀이 팔리지 않아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며 농민은 물론 농관련 종사자 모두가 연쇄 파탄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달 말경부터 논갈이를 해야 하지만 아무런 생각이 없다며 농사를 포기하고 차라리 이번 기회에 업종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상당수 농민들이 이농을 생각하고 있어 농촌은 공동화의 우려 속에 더욱 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지 모른다는 분위기가 감돌았다.■현장의 목소리△박종열(여주군 점동면)=생산비는 오르는데 수매가를 내리는 것은 쌀 산업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면세유·농기계 구입(운영)자금 지원 확대와 농가경제 지원대책부터 선행하라.△경기도 지자체 공무원=정부의 근본 대책 없는 수매가 인하도 문제지만 결국 중앙정부의 책임을 지자체가 떠 안게 돼 열악한 재정살림에 큰 부담이 우려된다.△김익섭(철원군 동송읍)=수매가는 적어도 3% 정도 인상 요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2%를 인하한 것은 정부가 주곡 자급화를 포기하는 것이다.△김춘길(양구군)=농촌의 실질 생활비가 매년 10% 이상 증가하는 현실에서 쌀수매가 2% 인하는 농업인들의 이농을 부추기는 발상이다.△이창근(고성군)=지난해 태풍 루사의 복구도 끝나기도 전에 쌀수매가를 인하하는 것은 농촌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의 전형이다.△유승도(청원군 가덕면)=수매가 2% 인하대신 직불예산을 800억 늘렸다고 하는데 그것은 전체 쌀생산소득의 2% 인하치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농민을 바보로 여기는 것이다.△조관호(청원군 낭성면)=자꾸 가격을 낮춰서 경쟁력을 키운다는 것은 허구다. 정부는 실제 국내 쌀가격을 수입산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고 판단하는지 궁금하다. △이당우(보령군 주산면)=농민들은 엄청난 농가부채에 힘겨워하고 있는데, 농가 소득보전책 없이 수매물량 감축에 이어 수매가 마저 인하한다면 이는 농사를 포기하라는 처사다.△김장식 연기군농민회 사무국장(동면 내판리)=국내 시판 쌀값의 기준이 되고 있는 정부수매가를 인하할 경우 쌀 시중 가격이 대폭 인하돼 농가 경제에 막대한 타격이 예상된다.△우상완 한농연서산시연합회 부석면회장(부석면 봉낙리)=외국보다 상대적으로 농기자재값이 높은데도 이를 감안하지 않고 수매가를 인하하는 것은 농민을 죽이는 행위다.△이재석(진주 이반성면)=정부가 2004년 쌀 개방을 전제로 WTO 쌀재협상시 쌀 포기의 구실을 만들고 있다.△서철진(의령군 가례면)=쌀생산면적 감축, 쌀생산조정제 실시에 이은 수매가 인하는 젊은 임차농을 고사시키는 고엽제에 다름 아니다.
양민철yangmc@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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