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영농철에 농민이 농협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면 이 IMF시대에 어디서영농자금을 마련해서 농사짓습니까?” IMF 구제금융으로 인한 금융시장의경색으로 금융기관들이 자금난에 시달리던 지난 2월 일부 지역농협이 이런저런 이유로 신규대출을 일시 중단하자 곳곳에서 농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정부와 농협이 연리 6.5%의 농업경영자금을 늘려 공급했지만 그것만으로는농민들이 유류 등 폭등하는 농자재 가격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고,16~18%씩 하는 상호금융 일반대출에 수요가 쏠리자 일부 지역농협이 이를감당하지 못했다. 당시 일부 지역농협들은 자금을 확보하고 보려는 금융기관간의 고금리 경쟁에 휘말려 예수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바닥을 드러내자대출을 일시 중단하는 고육책이 나온 것. 다행히 중앙회가 나서서 상호금융특별회계에서 자금지원을 조건으로 ‘농업인 우선대출’을 독려해 문제가해결됐지만, 이번 사태로 농협의 신용사업이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님이 단적으로 증명됐다. 축협의 경우 늘어나는 축산자금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농협에서 도와줘야 하는 형편으로 전락해 있다.
농민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신용사업을 영위하는 협동조합이 농업금융 수요에 제때 맞추지 못한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사태는 신용사업 의존도가 각각 75%와 67%에 달하는 농축협의 구조상 금융시장의 어려움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농수축협이 과연 앞으로도 “신용사업에서 벌어 경제사업과 지도사업을 지원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지 이 시점에서 확실히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금융전문가들은 물론이고 농수축협 스스로도 지금은 회원조합의 상호금융이나 중앙회 신용사업이 최대의 ‘위기’라는데 공감하고 있는게 오늘 농수축협이 처한 현실이다. 이같은 신용사업의 위기는 금융시장의 변화에서 현상적인 원인이 주어지고 있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협동조합 금융이라는 본질적 측면이 퇴색하고 있다는데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신용사업에 의존하는 불건전한 경영구조는 금리자유화와 IMF 사태속에서위험분산기능을 상실한채 고스란히 경영압박을 가중시키고 있다. 경제성장률 둔화, 통화 및 재정긴축, 단기적 금리상승으로 기업과 근로자의 도산이증가함에 따라 신용사업의 입지가 급속히 좁아지고 있다. 특히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 비율)를 맞추기 위해 벌어지는 고금리경쟁은 협동조합 금융을 파탄지경으로 몰아가고 있다. 회사채 금리가 30%를 웃돌고, 일반금리가 20%대를 바라보는 금리경쟁으로 예대마진은 급격히 축소되고, 신용사업때문에 적자를 보는 사태를 불러오고 있다.
여기에 재정수입 증대를 위해 신용사업에 대한 세금혜택이 점차 줄어들면서 수익구조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상호금융의 경우 비과세 예탁금이 총예금의 70% 가까이 되고 있어 세금혜택을 유지하기 위한 협동조합의 노력은필사적이다. 더구나 IMF 사태로 대출금 회수가 어려워지는데다 총체적인 경제난으로 부실채권이 급증하고 있어 협동조합 신용사업은 거의 비상구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그동안 고성장의 경제구조에 편승해 경제사업보다는 손쉬운 돈놀이를 택했던 협동조합 신용사업의 현주소다.
뿐만 아니라 농수축협의 신용사업은 이미 조합금융으로서의 기본성격마저잃고 있다. 농수축협의 상호금융은 원칙적으로 조합원간의 호혜금융이자 조합금융으로서 농어촌 자금시장의 골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농협의 경우조합원 예수금 비율이 30%, 축협은 24%에 불과할 정도로 조합원의 이용률이낮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농축협이 신용사업을 영위하는지도 불분명 해진 것이다. 기업경영의 잣대로 평가해도 농수축협의 신용사업은 전문성과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신용사업(중앙회)의 생산성은 일반은행에 비해 전반적으로 낮다. 95년 직원 1인당 총수신은 농협 1천4백51만원, 수협 1천36만원, 축협 1천2백75만원인데 비해 시중은행 평균은 2천3백26만원, 지방은행 평균은 1천5백13만원으로 농수축협모두 노동생산성이 낮다. 1인당 업무이익도 농협 3천4백만원, 축협 2천2백만원인데 반해 시중은행은 4천1백만원이다. 수협은 아예 마이너스 1백만원으로 분석됐다. 점포당 총수신도 농수축협 모두 시중은행, 지방은행에 비해낮다.
이런 상황은 현재의 농수축협 신용사업이 기존 체제를 가지고 과연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안된다’는 대답이 나오게 하고 있다. 변신하고 개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물론 농림부를 비롯한 정책당국이나 협동조합 스스로도 이 사실을 인식하고 나름대로의 대안을 마련중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개혁안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용사업 역시 협동조합의 원칙에 입각해개혁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영철 건국대 교수는 “조합의 상호금융이든 중앙회 일반금융이든 협동조합 신용사업은 농민의 참여도 제고, 조합원에 의한 의사결정의 담보, 경영의 효율성 추구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지적했다. 신용사업이 “망할 경우” 정부도, 중앙회도, 조합도 책임을 지지 않으며, 불쌍한 농민들만 피해를 보기 때문에 당장 사업의 효율화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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