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재난 상황에서는 대도시가 더 취약한 면들이 많다. 그렇다면 진짜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이고, 대도시들이다. 따라서 지금은 ‘지역소멸’을 얘기하면서 농촌지역을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에서부터 ‘대한민국 소멸’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ㅣ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지역소멸’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주로 비수도권 농촌지역과 중소도시의 인구감소와 고령화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을 들으면 상당히 불편하다. 소멸대상으로 거론되는 지역을 대상화한다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울이나 수도권,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지역소멸’과는 무관한 것이고, ‘남의 일’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지역소멸’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소멸위기에 놓여 있다고 본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위기상황에 부딪힐 경우, 농촌보다는 서울과 대도시가 더 소멸위험에 놓여 있다고 본다. 왜 그렇게 보는지 살펴보자.

우선 세계적으로 ‘소멸’같은 단어는 기후위기와 관련해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멸종저항’이라는 단체도 활동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멸종’을 낳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2018년 출발한 ‘멸종저항’은 2019년 영국 런던 시내 곳곳의 건물과 도로 등을 점거하고 2주간 시위를 펼쳤다. 기후위기라고 하는 인류 역사상 초유의 위기에 영국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시위였다. 이 시위가 일으킨 반향은 컸다. 영국 정부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기후 시민의회를 구성해서 기후위기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기후위기’와 ‘소멸’이라는 단어가 연관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린란드 바이킹같은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천여년 전에 그린란드에 정착해서 살던 바이킹족이 있었다. 이들은 한때 번성했지만, 유럽이 소빙하기를 맞으면서 추워지는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 사라졌다. 물론 이들이 사라진 이유는 단지 기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린란드 바이킹족의 지배층이 다가오는 위기에 대비하지 않고 허송세월을 했기 때문에 ‘소멸’을 맞은 것이다. 이 얘기는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이 쓴 <파란하늘, 빨간지구>에 나오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운명이 그린란드 바이킹처럼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날로 심해지는 가뭄과 산불뿐만 아니라, 들쭉날쭉한 기후로 인해 농사가 입는 피해가 날로 커지는 상황이다.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국내도 그렇다. 그리고 국제정세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르고, 세계적인 분쟁과 갈등은 더 격화될 조짐이다. 이것은 에너지와 식량 수급의 위기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곡물자급률이 20% 밑으로 떨어지는 상황이다. 삼면이 바다이고 위로는 북한이다. 에너지와 식량을 외부 수입에 의존하는 대한민국같은 나라는 최소한의 생존기반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코로나19 때 마스크가 부족해서 혼란이 일어나고, 중국에서 수입되는 요소수가 부족해서 난리가 난 경험은 앞으로 다가올 재난에 대한 일종의 징조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말 위기 상황이 왔을 때, 농촌이 더 위험할까? 도시가 더 위험할까? 서울같은 대도시는 에너지와 식량을 외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재난 상황에서는 대도시가 더 취약한 면들이 많다. 그렇다면 진짜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이고, 대도시들이다. 따라서 지금은 ‘지역소멸’을 얘기하면서 농촌지역을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에서부터 ‘대한민국 소멸’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겪고 있는 수도권 집중현상도 근본적으로 보면 농업과 농촌을 홀대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농촌인구가 도시로 빠져나가고, 지방의 중소도시 인구가 대도시로 빠져나가고, 지방 대도시의 인구가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흐름이 형성되어 온 것이 수도권 집중현상이다. 그리고 농촌의 인구가 빠져나가는 이유는 농촌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기반인 농업이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존중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사를 지어도 농산물 가격이 떨어져서 소득이 보장되지 않고, 생산비 상승과 이상기후 등으로 농사짓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농민은 고령화되고,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농촌지역의 경제활동은 침체하고 있다. 게다가 난개발과 환경오염도 심각하고, 의료같은 생활인프라는 열악한 상황이다.

이런 흐름의 ‘역전’을 가져올 방법은 간단하다. 농업과 농촌, 농민을 존중하는 것이다.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도록 농민들의 소득을 보장하고,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농촌의 생활인프라를 개선하며, 농지와 농촌환경을 보전하는 것이다. 여기에 국가정책의 최우선을 둬야만 ‘대한민국 소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소멸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치ㆍ행정엘리트들이 그린란드 바이킹 지배층의 과오를 따르지 않기 위해 해야 할 것은, 농업ㆍ농촌ㆍ농민을 지키고 살리는 것을 국가의 최우선과제로 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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