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위원·농정전문기자

지난해 10월. 유기농 벼 수확을 앞둔 농민 A 씨는 지역 친환경인증기관의 전화를 받고 아연실색했다. A 씨의 논에서 채취해 간 시료에서 농약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말도 안돼요. 내가 이 지역에서 처음 유기농을 전파한 사람인데 그럴 리가 없잖아요?”

유기농업의 선구자로 널리 알려진 그였다. 뿌리지도 않은 농약성분이 검출됐다고 인증취소가 되는 사례들이 있다고 들었지만, 막상 자신이 당하고 보니 억울함과 분노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 봤다. “내가 농약을 쓰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주변에서 비산됐거나, 그것도 아니면 인증기관 검사과정에서 오염된 것 아닐까?” 그래서 한 달 동안 비산 가능성이 있었는지 주변 농가들에게도 알아보고, 인증기관도 다녀오고 했지만, 결국 대응을 포기하고 말았다.

“인증기관 측에서 주변 농가들을 전수 조사하겠다고 하는데, 그러면 혹시 다른 농가의 피해로 연결될 수 있잖아요. 지역사회에서 민폐를 끼칠 수가 없었어요.”

그렇다고 인증기관 검사 과정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 “분석 장비를 제대로 세척하고 소독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인증기관이 아니라면 그만이죠. CCTV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난데없는 유기농 인증 취소는 그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았다. “수확한 벼가 아직 그대로 창고에 쌓여 있어요. 경제적 피해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유기농에 열정을 다한 제 자존심에 상처가 너무 크게 남아요.”

친환경 농가들은 이렇게 불가항력적(비의도적)인 이유로 농약성분이 검출될 경우,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는 한, 인증취소라는 행정처분을 받는다. 생명을 살린다는 신념으로 친환경을 실천했지만, 한 순간에 범법자가 되고, 사회적 낙인이 찍히고, 판로는 막힌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행정 처분으로 인증 취소된 건수가 2020년 2479건, 2021년 3968건이다. 이렇게 인증 취소가 많아진 것은 검사 기술이 점점 더 좋아지고 정부가 기준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증 취소된 농가 중에는 본인 잘못도 있겠지만, 많은 농가들이 억울하게 당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우리나라 친환경, 유기농업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로 생산과정은 무시하고 농약성분이 검출되면 인증을 취소하는 친환경 인증제도를 꼽는다.

“친환경 농산물에서 농약이 검출되면 인증 취소가 당연한 것 아닌가?” 보통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한 발짝 더 들어가야 진실이 보인다.

친환경농산물에서 검출되는 농약은 대부분 그 생산자가 뿌린 것이 아니다.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의 ‘친환경농산물 인증심사방법론의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2018)’에 따르면 농약검출로 행정처분을 받은 친환경농가 가운데 직접 농약을 뿌린 경우는 8.9%에 불과했고, 살포하지 않았지만 잔류농약이 검출된 경우가 73.2%였다.

뿌리지도 않은 잔류농약이 검출된 경우는 이웃 농가가 뿌린 농약이 날아 들어오거나(39.5%),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34.9%)가 가장 많고, 오래 전 사용된 농약이 토양에 잔류한 경우(14%), 항공방제(4.7%), 물이나 자재 속에 농약성분이 들어 있었던 경우 등이 원인이다.

이미 오염된 환경에서 이것은 농가 잘못이 아니다. 예컨대 2017년 무항생제 방사유정란에서 40년 전 사용된 DDT가 검출돼 농장을 폐업한 것이 농가 잘못인가? 이는 바다에서 잡은 어패류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는 것이 어민 잘못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에서는 ‘피할 수 없는 잔류농약’은 인정하고 있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코덱스) 유기농업 기준에는 잔류농약의 검출여부에 대한 기준이 없어 생산과정만을 평가할 수 있다.

외국의 유기농 인증은 제품 자체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심사원이 농장을 방문, 작물, 동물, 주변 환경, 토양, 온실, 퇴비, 종자, 사료, 모종, 물, 장비 등 유기농 생산과정을 확인한다. 많은 돈을 내고 실험실 검사의 농약 검출여부로 친환경 인증을 결정하는 결과 중심 인증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이다.

이시도르연구소의 유병덕 소장은 “피할 수 없는 농약검출을 문제시하는 현행 인증제도는 어려운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 농민에게 불명예와 정신적 충격, 경제적 피해를 주는 인권 차원의 문제”라면서 “결과주의 인증을 폐지하고 과정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2020년 기준 전체 경지면적의 5.2%인 친환경농업 면적을 2025년 10% 수준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건강한 농업생태계라는 친환경농업의 목적과 전면 배치되고, 친환경 농가를 옥죄는 악법인 친환경인증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이 문제는 친환경농업의 문제일 뿐 아니라 농민의 인권차원에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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