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주량

[한국농어민신문] 


과거의 규제가 혁신속도 못 따라가
신성장 동력으로 농업 육성하려면
공익규제 준수하되 낡은 규제 정비를

 

토지와 노동에 기반했던 전통농업이 정보통신 기술 중심의 미래형 농업으로 빠르게 전환 중이다. 농업과는 거리가 멀었던 CES에서 조차도 2023년 기조연설자로 세계 최대 농기계회사인 존디어의 존 메이 회장이 선정될 정도로 미래농업을 향한 관심과 기대는 뜨겁다. 미래농업은 생산영역에서는 스마트농업, 소비영역에서는 푸드테크라는 두 개의 축으로 전개되는 양상인데, 최근 농식품부의  조직개편에서도 이러한 변화상은 잘 드러나 있다. 

미래농업을 도약시키고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하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개발이고, 또 하나는 현장에 신기술이 제도적으로 안착될 수 있도록 하는 규제개선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우리나라가 미래농업을 위한 연구개발 노력에 걸맞은 규제개선 논의를 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점검해 봐야한다.

미래농업은 농업이 토지와 노동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처럼 바뀌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1차 산업이 2·3차 산업화 되다 보니 농업생산의 기본원리는 물론이고 농지의 개념과 농민의 정의까지 모든 것이 달라지는 중이다. 스마트팜에서 양액과 인공광으로 작물을 키우는 스마트팜 엔지니어는 농민인가? 제조업자인가? 도심빌딩에서 농작물을 생산하는 인도어팜이 차지하는 공간은 대지일까? 농지일까? 농작업을 전부 대행하고 자기노동은 안하지만 농업경영의 의사결정권을 가진 농장주와 단순히 농작업만 대신해 주는 사람 중에서 누가 농업보조금의 주인이 되어야 할까? 많은 것이 혼돈스러운 상황이 생겨나고 있다.

개념과 정의가 흔들리다 보니 과거의 규제가 농업의 혁신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여러 곳에서 관찰된다. 과거 농업생산 기반을 유지하고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가 이제는 농업혁신의 장애요인이 되는 것이다. 농지측면에서는 현실과 멀어진 경자유전의 원칙이 농지의 효율적 활용과 농업·에너지의 융합 등 새로운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 인력측면에서는 농업인만 임원이나 발기인이 될 수 있는 영농조합법인과 농업회사법인의 기준요건이 비농업계 출신 인재들의 농업진출을 가로막는 벽이 되고 있다. 이 밖에도 과거 전통농업 시기에 맞춰진 크고 작은 규제 뭉치들이 미래 농업혁신을 가로막는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농업계 내부에서 조차 규제개선에 대한 요구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농업부문은 규제와 제도변화에 지극히 보수적인 양면성도 함께 가지고 있다. 새로운 제도변화가 기존 농업인의 기득권과 충돌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법제도 하나라도 바꾸려면 기존 농가나 일부강성 기득권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거나, 집표를 의식하는 지역 정치권의 압력으로 논의가 미궁에 빠지는 경우도 빈번하다.

미래농업을 위한 혁신의 속도를 높이려면 연구개발과 함께 전통농업 시대에 설정된 기존 규제를 제로베이스에서 재정비하는 규제 현행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과학적 연구와 열린 논의를 통해 과거에 설정된 규제의 효과와 비용을 비교해보고 합리적인 규제기준을 재설정해야 한다. 규제 갈등을 방지하고 이행력을 높이기 위하여 과학적 증거를 수집하고 낡은 규제기준은 계속해서 정비하는 행정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OECD의 권고대로 지속가능 농업을 위한 규제내용과 기준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행정력을 뒷받침하는 농업 규제과학 체계 정비도 시급하다. 농업인 또한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는 마땅히 철폐를 요구해야 하겠지만 사익만을 위하여 공익을 위한 규제도입을 외면하거나 합의된 규제의 준수를 가볍게 여기는 문화는 빨리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규제개선과 연구개발은 산업혁신을 이끄는 수레의 양쪽 바퀴다. 조화로운 산업발전은 규제정비와 기술개발이 함께할 때 비로써 가능하다. 지금 우리의 미래농업을 위한 혁신노력에 적극적인 규제개선이 더해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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