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농촌주민들이 겪고 있는 생활상의 문제나 인구감소 대책 등에 관해서는 면 지역마다 구성돼 있는 주민자치회나 주민자치위원회가 연대해서 목소리를 낸다든지 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농업·농촌과 관련해서 조직돼 있는 다른 조직들이 움직여도 좋다. 

ㅣ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난방비 폭탄’이라는 뉴스가 언론을 뒤덮고, 정치권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도시지역에서 사용하는 가스요금이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촌에서는 이미 ‘난방비 폭탄’을 맞고 있었다.  

농촌지역의 많은 단독주택에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도시가스를 쓸 수도 없고,  난방을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농촌가구가 등유 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는데, 2배 가까이 뛰어오른 등유 가격으로 인해 작년 가을 이후 난방비 부담이 급증했다. 

면 지역의 단독주택에 사는 필자만 하더라도, 작년 12월 중순에 1년 전보다 2배 가까운 돈을 내고 등유를 구입해서 보일러를 돌리고 있다. 이러다보니 보일러를 돌릴 때마다 부담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농촌가구가 이렇게  ‘난방비 폭탄’을 이미 겪고 있는데도 별 반응이 없던 정부와 정치권이 도시지역에서 ‘난방비 폭탄’이 현실화되자 급하게 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이런 뉴스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씁쓸함을 느낀다. 대한민국에서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소수자다. 

인권 담론에서, ‘소수자(minority)’란 숫자만 가지고 따지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정치적 의사결정구조에서 소외돼 있거나 차별받는 사람들을 ‘소수자’로 보기 때문이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농촌의 ‘면(面)’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숫자로도 소수자다. 전체 인구의 10%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정치적 의사결정구조에서 소외된 것도 분명하다. 심지어는 군청에서도 인구가 적은 면 지역의 문제는 소흘하게 다룰 정도이다. 

난방비만이 문제가 아니다. 도시지역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농촌의 면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데도 정치권이든 언론이든 관심이 별로 없다. 필자는 연초에 경북의 한 농촌지역 주민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의료폐기물소각장을 추진하는 업체로부터 소송을 예고하는 편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업체는 ‘환경오염을 안 시키는데도 소각장을 계속 반대하면 로펌을 선임해서 거액의 손해배상청구를 하겠다’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물론 말도 안 되는 내용의 편지이다. 주민들이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반대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다. 그리고 진짜 환경오염을 안 시키고 안전하다면, 대형병원이 있는 도시에 지으면 될 일이다. 대한민국 의료폐기물의 절반 이상은 도시의 대형병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업체는 아무 관련없는 조용한 농촌마을에 와서 소각장을 짓겠다고 한다. 그리고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이런 식의 편지까지 보내고 있다. 만약 도시에서라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을까? 얼마나 농촌마을 사람들을 무시하면 이런 식의 행태를 보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충남의 한 농촌지역에서는 중학교에서 불과 200미터 내외인 곳에 지정폐기물매립장이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매립장 부지가 학교에서 200미터 이내인지 바깥인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200미터 안이든 바깥이든, 학교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지정폐기물매립장이 들어서도 괜찮은 것일까? 만약 도시에서라면 학교 옆에 지하를 40미터 이상 파고 유해성이 강한 폐기물을 매립하겠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외에도 일일이 다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례들이 있다. 도시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다. 인구가 적고 고령화돼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는 이유로 농촌주민들은 무시당하고 있고, 정치권이나 언론의 관심에서도 소외돼 있다. 

역사를 보면,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는 방법은 연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힘을 가진 쪽에서는 주목하지도 않고 경청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농촌주민들은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다 보니 한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 농촌이기 때문에 겪는 공통의 문제와 어려움들이 있지만 연대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면 지역의 심각한 인구감소 문제와 부족한 생활인프라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고, 농촌을 파괴하는 각종 난개발과 환경오염시설들에 대응하기도 어렵다. 

상상을 한 번 해 본다면, 농촌주민들이 겪고 있는 생활상의 문제나 인구감소 대책 등에 관해서는 면 지역마다 구성돼 있는 주민자치회나 주민자치위원회가 연대해서 목소리를 낸다든지 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농업·농촌과 관련해서 조직돼 있는 다른 조직들이 움직여도 좋다. 난개발이나 농촌·환경파괴 사업과 관련해서는 농촌마을 곳곳에 조직돼 있는 주민대책위들이 한 목소리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농촌이 부딪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촌주민들의 연대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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