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입법조사처 ‘식량자급률 목표 재론 : 쟁점과 과제’ 보고서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목표치 달성기간 연장하거나
목표 자체 하향조정 빈번
실제 자급률도 40.5%로 급락

목표 자체에 함몰되지 말고
농지정책 등과 연계 추진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일관된 정책 시그널 줘야

정부가 여러 차례 수정을 거듭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달성된 적이 없어 아무도 그 실현 여부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수치가 있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 목표치’다. ‘식량주권 확보’를 국정 과제로 내세운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식량자급률 목표치는 하향 수정됐다.

이 같은 식량자급률 목표치의 잦은 수정은 “자칫 정부가 관련 사안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 인상을 주고, 나아가 식량자급률 목표 자체를 형식적이고 자의적인 수치로 보이게 만들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에 곧 확정될 ‘제5차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에서는 당위적 방향성과 합리적 근거에 입각해 식량자급률 기준과 목표를 정확히 제시하되, 이후로 목표치의 잦은 변경은 지양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6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식량자급률 목표 재론(再論) : 쟁점과 과제(김규호 입법조사관)’ 보고서를 발간했다.

 

2027년 목표치도 상향된 게 아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식량자급률 목표는 초기에는 식량자급률 60%, 곡물자급률 32%까지 목표치가 상향 설정되기도 했지만 2013년 이후로는 목표치 달성 기간을 연장하거나 목표 자체를 하향 조정해왔다. 실제 자급률도 2006년 52.7%에서 2021년 40.5%까지 떨어졌다.

보고서는 농식품부가 지난해 12월 22일 ‘중장기 식량안보 강화방안’을 발표하면서 제시한 2027년 식량자급률 목표(55.5%) 역시 이 같은 하향 추이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진단했다. 수치 자체는 2022년 목표(55.4%)보다 오른 것처럼 보이나, 올해부터 정부가 ‘식량자급률 산정기준’을 바꿔 자급률 수치가 기존보다 2~3%p 이상 높게 나오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식량자급률 계산시 서류품목에 ‘건체중(완전 건조 중량)’을 적용해왔으나 올해부터 수분을 포함한 ‘생체중’을 적용하는 것으로 바꿨다. 보고서는 “새로운 산식으로 계산하면 기존에 40.5%였던 2021년의 식량자급률이 44.4%까지 높아진다”면서 “2027년 자급률 목표치가 기존의 2022년 목표치보다 상향돼 보이는 것은 일종의 통계적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식량자급률을 둘러싼 세가지 쟁점

식량자급률을 둘러싸고 그동안 제기돼 왔던 쟁점을 살펴보면 먼저, 식량자급률 제고가 ‘식량안보’를 위한 필수과제인가 하는 점이다. 실제 일각에서는 식량 확보에 중요한 것은 ‘국내 생산’이 아니라 ‘외화획득 능력’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보고서는 “현실적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인구와 소득 수준을 갖춘 국가 대부분이 국내 생산량 제고와 유지에 신경을 쓰고 있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OECD 38개 회원 국 중 우리나라보다 곡물자급률이 낮은 나라는 5개국(포르투갈, 코스타리카, 네덜란드, 아이슬란드, 이스라엘)이며, 이 중 인구가 2000만명 이상인 국가는 한 곳도 없다는 것이다. 이에 “도시국가가 아닌 이상, 적정 수준의 식량 국내 생산과 외화 획득은 취사 선택과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함께 추구되는 정책목표”라고 강조했다.

둘째, 현실적으로 달성가능한 식량자급률 수준이 얼마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들어 ‘식량자급률 100% 달성’은 앞으로 농지면적이 더 이상 감축되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불가능한 목표다. 2021년 현재 우리나라 농지 면적은 약 155만ha로 최근 5년간 연평균 1.2%씩 감소해왔다. 보고서는 “국내 농업여건상 자급률 제고에는 물리적·환경적 제약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결국 실현가능한 식량자급률 목표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농지면적이 될 것”이라고 봤다.

셋째, 쌀과 그 외 작물의 자급률 격차 문제다. 공동화돼 가는 농촌에서 고령화된 경영주(평균 67.2세)가 쌀 이외 작물 재배에 선뜻 나서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보고서는 “타작물의 자급률을 제고하려면 쌀 생산만큼의 효용을 기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책이 섬세하게 설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단순히 쌀 생산을 다른 작물 생산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는 전체 식량자급률 제고는 어렵기 때문에, 생산된 국산 농산물이 기업이나 가구에서 수입농산물을 국산 농산물로 대체해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도 덧붙였다.

 

향후 과제

먼저 곧 확정될 제5차 기본계획에서 식량자급률 기준과 목표를 정확히 제시하되, 이후로 목표치의 잦은 변경은 지양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예를 들어 밀과 콩의 자급률 목표는 현 정부 들어서만해도 밀이 7,0→7.9→8%로, 콩은 37.9→40→43.5%로 바뀌는 등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둘째, 자급률 목표 자체에 함몰되기보다 관련 계획을 유기적으로 연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개별법이나 정책사업에 근거한 품목별 계획이 상호 중복, 혹은 간섭 및 대체 효과 등을 낳기도 하기 때문이다. 생산뿐만 아니라 판로와 소비, 재고대책 등도 보강해야 한다. 넓게 보아 농가 경영안정 정책과 농지 정책 등도 모두 ‘자급률’ 관리 측면과 연결지어 추진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셋째.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일관된 시그널을 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통한 의지 표명도 제안했다. 예를들어 ‘양곡관리법 시행령’ 상의 공공비축양곡인 밀과 콩을 쌀처럼 상향 입법해 법에 규정하는 방안이나, 기본법에 규정된 국가와 지자체의 농지보전 및 유지 의무를 자급률 목표와 연계하도록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행 ‘밀산업 육성법’을 개정, 맥류나 ‘전략작물’ 전반을 포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보고서를 집필한 김규호 입법조사관은 “적정 수준의 식량자급률 유지는 주권국가의 사회·경제적 안정에 밀접히 결부된 사안으로, 이를 위한 첫걸음은 식량자급률 목표가 시장에 속한 플레이어 그 누구도 그 실현을 진지하게 추구하지도, 예상하지도 않는 유명무실한 숫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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