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모 전북연구원 연구위원

[한국농어민신문] 

돌봄 필요한 취약계층 ‘먹거리 불안’ 직면
코로나 재난서 미·유럽도 식품지원 늘려
먹거리 돌봄 공공의 책임·역할 키워가야

지난 달 우리는 또 한번, 안타까운 일을 마주하였습니다. 수원시에서 급격한 생활고와 암투병에 시달렸던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것입니다. 생계를 책임지던 가족이 죽자, 경제적인 사정 탓에 치료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최소한의 끼니도 해결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체계가 달라졌을 줄 알았습니다. 우리 사회의 민낯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적인 영역에서 복지와 돌봄 체계를 촘촘히 갖추어 간다 해도, 사각지대는 늘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지역사회와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웃의 어려운 현실을 함께 고민하고 알게 해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공성’은 근대의 산물이지만, ‘돌봄’은 인류 역사의 결과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돌봄’을 정부 지원의 사회 서비스와 같은 ‘공공재’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높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 다양한 돌봄 주체들의 활동을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돌봄의 사회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정부 중심으로 표준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의 돌봄은 ‘개인’을 지역사회로부터 이탈하는 결과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과 가족이 담당해 왔던 돌봄의 책임을 사회로 넓히고, 시혜적인 재정지원을 넘어 지역사회의 역량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이른바 ‘사회적 돌봄’입니다.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취약계층만 돌보는 수준’에서의 ‘수동적’인 태세로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현대사회에서 돌봄은 ‘삶의 전 과정에 걸친 보편적인 욕구로서 포괄적인 시민권 차원에서 삶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것’으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돌봄 서비스’는 ‘잔여적이고, 시혜적이며, 특수적인 차원’이 아닙니다. ‘보편적 복지와 시민권 차원’에서 접근하고 영역을 넓혀가야 합니다(Daily & Lewis).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충격이 ‘사회적 불황’의 그림자를 깊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 신체적인 이유, 사회적인 이유 등으로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이웃이 늘고 있습니다. 배가 고파 먹을 것을 훔치는 ‘코로나 장발장’, 가족 병수발로 끼니도 채우지 못하는 ‘청년 간병인’ 등이 바로 그러한 가슴 아픈 사연들 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돌봄이 필요한 취약계층의 어려움은 가장 먼저 ‘먹거리 불안’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소득수준이 낮은 (1분위)계층에서 식비 부족자 비율은 55.7%, 결식경험 비율은 61.6%나 됩니다(2019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생애주기의 특정 기간인 고령자에게만 국한되지도 않습니다. 20대~50대 연령의 결식률이 60대 이상의 고령자보다 높습니다. 여기에 영양 불균형까지 고려하면 먹거리 불안의 양상은 더욱 중층적입니다. 절대적인 끼니를 거르는 문제로 단순화할 수도 없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먹거리 불안은 반드시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수준에서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가족 부양을 담당하는 사람의 사정에 따라 그 가족의 먹거리 불안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먹거리 불안을 개인 소득수준이나 고령자 중심으로만 접근하여 지원하는 정책은 반드시 소외를 동반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코로나19라는 사회적 재난의 상황에서 ‘비상식품 지원, 보충영양 프로그램, 임산부·영유아 영양 프로그램, 코로나 긴급지원’ 등 저소득층에게 ‘푸드 스탬프’를 지급하는 정책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정부가 먹거리와 식재료를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해 오고 있습니다. 임산부와 영유아에게는 ‘친환경 농식품’이 지원되고 있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건강과일 바구니와 초등돌봄 과일간식’ 등이 공급되고 있습니다. 고령자 대상으로는 ‘영영관리+영양플러스’ 사업 등이 있습니다. 시범사업이기는 하지만 저소득층 대상으로 ‘농식품바우처 사업’도 정책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농림축산식품부는 취약계층 등에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식품지원을 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를 지난해 말 마련하였습니다(농업농촌식품산업 기본법 개정). 모두 사회적 돌봄의 관점에서 먹거리 돌봄에 특화한 공공의 역할과 책임을 늘려가는 정책입니다. 이를 통해 사회적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먹거리에 있어 차별받지 않는 여건을 조금씩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최근 정책 당국의 판단은 이런 기류와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내년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안)에 ‘임산부 친환경농식품 지원사업, 초등돌봄교실 과일간식 지원사업’은 전혀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저소득층 농식품바우처 (시범)사업’도 농협으로 재원부담을 넘겼습니다. 먹거리 돌봄 관련 정책 여건이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높습니다. 그렇다면 그 책임과 역할을 지역사회가 온전하게 떠맡아 갈 태세를 갖춰야 하겠습니다.

경제적 불황과 사회적 불황 등이 겹친 변화와 혼란의 시기입니다. 어떻게 사회적인 문제와 고립을 줄여갈 수 있는지, 우리는 설득력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방안을 마련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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