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농림축산식품부가 ‘간척지의 농어업적 이용을 위한 종합계획(이하 종합계획)’을 수립, 고시(2019-45호)한 지 3년이 지났다. 하지만 관련 고시에 따라 농어업적 활용이 승인된 곳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시 이후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 사업계획안 제출시 수억원대의 사업 타당성 조사(연구용역)를 다시 요구하는 비현실적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간척지 어업적 활용 길 열렸지만

농업용으로만 이용되던 간척지를 수산단지 등 어업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이 열린 것은 지난 2014년이다. 2014년 9월25일 ‘간척지의 농어업적 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간척지법)’이 개정·시행돼 간척지를 어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동법 제5조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 장관은 간척지의 농어업적 이용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실태조사 결과를 기초로 5년마다 종합계획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

이에 따라 농식품부는 간척지의 용도별 입지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 2019년 8월29일 종합계획을 고시한다. 고시된 종합계획은 이 법에 따라 최초로 수립된 법정 계획이다. 석문·이원·남포지구 등 12지구 3만529ha를 대상으로 한 토지이용계획이 담겼다. △복합곡물단지 △친환경축산단지 △수출원예단지 △일반원예단지 △종자단지 등 용도별 면적을 간척지구별로 배정했는데, 이 중 수산단지 등 어업적 이용이 가능한 토지는 9개 간척지구 889ha다.

하지만 고시 이후 3년이 지나도록 현재까지 아무런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농식품부가 시행계획을 수립, 간척지활용사업구역을 지정하고 사업시행자의 실시계획에 대한 승인을 해줘야 하는데 후속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임대해 달라는데, 수억원대 타당성 연구용역 왜?

농식품부는 법 절차상 ‘사업시행자가 먼저 어업적 이용에 대한 타당성 조사, 경제성 조사가 포함된 연구용역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간척지농업과 관계자는 “주관부서는 농식품부지만 어업적 이용에 대한 사업계획을 저희 부가 짤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애초 농지 목적으로 조성된 간척지를 타목적으로 이용하려면 타당성 조사가 포함된 기본계획수립 용역을 수행, 제출해야 한다. 그걸 근거로 저희가 사업계획을 수립하는거다. 간척지를 다각도로 활용하기 위해 간척지법을 제정한 것은 맞지만 무턱대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민들은 ‘사업계획’이 아닌 수억원대의 타당성 조사 연구용역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개별 어민들은 접근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가 요구한 타당성 조사 연구용역은 비용만 10억원 이상 들어간다. 그렇게 돈을 투자해서 산업단지처럼 수산단지를 만들 기업도 없거니와 농어민한테는 하지 말라는 규제와 마찬가지다.” 귀어인 20여명과 함께 석문·이원간척지를 활용, 흰다리 새우(대하) 양식장을 조성하고자 사업계획을 준비 중인 K씨(충남 태안)의 호소다.

그는 “쌀 생산 억제정책을 펴면서 정부가 간척지에 침수나 염해피해가 우려되는 타작물 재배를 독려하고 있는데, 그보다는 소득이 농업적 이용의 5~10배에 달하는 어업적 이용을 장려하는 게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서도 맞지 않냐”면서 “간척지는 원래 어민들의 터전이었다. 지적변경이나 형질변경 없이 양식장으로 쓸 수 있도록 어민에게도 임대를 해 달라”고 촉구했다.
 

부처별 칸막이 행정, 비현실적 규제 문제

이와 관련 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의 한 연구자는 “현재로선 법과 상위계획만 만들어놨지 어업관련 법인 등 민간에서 간척지를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세부적인 임대 방안이 전혀 없는 상태”라면서 “결국 농식품부는 해수부나 지자체에서 협의가 들어오면 협의를 받아주겠다는 건데, 모든 부처간 협의가 그렇듯 각자 고유의 영역이 있기 때문에 농업영역에 어업이 들어오는 걸 반기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종합계획 수립을 위해 2016년 해양수산부가 추진한 실태조사에 참여했던 국립수산과학원의 P연구원도 “간척지의 효율적인 이용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에 의해 법률이 개정됐고, 그 법률에 의해 실태조사까지 해서 농식품부와 해수부, 양부처가 협의해 종합계획을 수립, 고시까지 다 해놓고, 다시 어업적 이용이 타당한지에 대한 검토를 또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라고 지적했다. P박사는 “농식품부는 법률 문구대로 절차적 이야기만 계속 하고, 해수부나 지자체는 미온적인 상황이라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규제개혁위원회의 한 관계자도 같은 입장을 내놨다. 그는 “간척지를 어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정부가 법을 개정하고, 토지 이용계획까지 고시했으면, 그 목적에 맞게 토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 되는데, 왜 민간에서 하는 사업에 경제적 타당성 검토까지 요구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예비타당성 조사는 500억 이상 대규모 재정사업을 추진할 때 필요한 것으로, 정부 재정이 따로 투입되는 게 아니라면 사업계획서 검토만으로 충분하다”면서 “분양하는 것도 아니고 어민이 정당한 임대료를 내고 사업계획에 따라 자기 돈으로 사업을 추진하는데, 그 사업의 경제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왜 임대자가 따지느냐”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한편, 지난달 28일 국무조정실은 새정부 출범 80일만에 규제혁신과제 1004건을 발굴, 140건은 개선조치까지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이 중 농식품부는 ‘간척지법’ 시행령을 개정, 간척지 활용사업 용도에 임산물(버섯·밤·잣·대추·호두 등)을 추가, 간척지 임산물 재배·가공을 통한 임업 경쟁력 향상 효과가 기대된다고 홍보했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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