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우리동네의원 원장 임형석

[한국농어민신문] 

‘따르릉따르릉’ 

얼마 전 중년의 정신장애 딸과 함께 사는 노모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딸이 며칠 전부터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한다며 방문 진료가 가능한지 묻는 전화였다. 시간 약속을 하고 모녀가 사는 아파트로 방문 진료를 나갔다. 정기적으로 방문을 하며 건강관리를 해 오고 있던 터라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그 아파트 바로 앞에 서 있는 큰 병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집 앞에 바로 이렇게 큰 의료기관이 있어도 누군가에는 이용이 불가능한 현실이 너무나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사실 방문 진료를 하다 보면 비슷한 사연을 여럿 만나게 된다. 워커를 끌고 힘들게 이동해 근처 병원에서 고혈압 약을 처방받다가도 장마철이나 눈이 내리는 겨울이 되면 혈압 약을 으레 한두 달씩 거르는 장애인 분도 계시고, 병원 이용이 불편한 나머지 며칠을 참다가 결국 맹장이 터져 복막염이 된 일도 있었다. 병원 방문이 어려워 의사의 진료 없이 대리처방만 받는 장애인 분들은 새로운 증상을 호소할 때마다 쌓인 약들로 한 주먹이 되기 일쑤다. 집 앞을 나서면 여기저기 눈에 밟히는 게 병·의원이지만 이런저런 장벽으로 장애인들은 여전히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장애인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고자 2015년 ‘장애인건강권법’이 제정되고 2018년부터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이 시작됐지만, 장애인 건강주치의제는 의료인과 장애인 당사자 모두에게 외면받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을 기준으로 활동 기록이 있는 장애인 건강주치의는 겨우 88명으로 전체 의원급 의사의 0.2%에 불과하다. 

사업 참여에 대한 유인책은 턱없이 부족하고 져야 할 부담은 많은 현실이 의료기관의 참여를 주저하게 하고 있다. 장애인 진료는 비장애인 진료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함에도 이에 대한 보상은 따로 존재하지 않고 방문 진료수가 또한 현실과 괴리가 있다. 

환자 발굴과 상담, 지역사회 관계기관과의 네트워크 구축, 방문 진료 등의 의사일정관리, 행정업무 지원 등을 맡을 코디네이터가 필수적이지만 제도 내에 코디네이터가 포함돼 있지 않고, 결국 이에 대한 부담도 오롯이 사업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의 몫이다. 업무 공간, 방문 진료를 위한 차량 등도 마찬가지로 의료기관의 부담이다. 

의료기관의 참여가 저조하다 보니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에 대한 홍보도 소극적이고 장애인 당사자의 이용률 또한 낮다. 보고에 따르면 중증 장애인 중 0.1%만이 장애인 건강주치의를 이용하고 있고, 상당수의 장애인은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 자체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교육과 상담에 치우쳐 있는 서비스 내용도 장애인 이용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당사자의 필요에 더 부합하도록 방문 작업치료 등의 재활서비스가 제도 내에 포함돼야 하고, 당뇨병과 고혈압에만 적용되는 검진 바우처도 만성 간질환, 만성 신질환, 천식 등 더 많은 질환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장애인에게 진료를 제공하는 의료인에 대한 교육 또한 더욱 강화돼야 한다. 

아직 제도적으로 보완돼야 할 부분이 많지만, 방문 진료를 비롯한 장애인 건강주치의 서비스에 대한 장애인 당사자들의 필요와 욕구는 여전히 크다.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관계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 의료인과 장애 당사자의 책임 있는 참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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