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국농어민신문] 

식량 3/4은 해외서 들어오는 게 현실
생산능력·조달능력 높이는 게 관건
위기상황 대비 국민 공감대 확산해야

‘세계의 빵 공장’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과 미국 중서부와 캐나다, 아르헨티나 곡창지대의 심각한 대가뭄으로 인한 작황부진이 겹치면서, 밀과 옥수수를 중심으로 식량위기 우려가 심화되고 있다. 호주의 풍작과 비축분 출하로 글로벌 생산총량에는 큰 차질이 없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지만, 코로나 봉쇄로 인해 중국마저 파종시기를 놓치면서 전 세계 식량 상황은 당분간 위태로울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식량가격 폭등까지는 아니지만, 농산물발 식탁물가 상승이 가파르다. 사료가격은 더 심각해서 끝을 모르는 고공행진 중이며, 봄철 국내 조사료 파종까지 차질을 빚으면서 올 하반기 축산농가의 사정은 더욱 나빠질 것이 분명하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기존 언론사들은 물론이고 ‘삼프로 TV’ 등 신개념 언론사에서도 식량안보와 농업을 재조명 하는 특집을 연일 기사화 하고 있다. 전에 없는 농업에 대한 관심이 반갑고 고맙지만, 식량안보와 농업에 대한 곡해가 많아지고 단편적으로 접근하고 있어서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식량안보는 우리의 상식보다 아주 복잡한 다차원 함수다. 지구촌 식량수급은 한편으로는 거대한 농업 인프라와 시스템의 경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솜털처럼 섬세한 정보전이다. 세계 규모의 식량생산과 물류, 선물과 현물의 균형, 가격의 책정과 자금의 흐름을 다루는 곡물 메이저들은 자신들의 정보인프라가 웬만한 나라의 첩보기관을 능가한다고 자랑할 정도다.

식량안보를 논하면서 일반인이 가장 쉽게 오해하는 것은 식량자급과의 혼돈이다. 그러면 당연히 국내생산 확대로 결론이 난다. 하지만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고, 산업구조 고도화로 2차, 3차 산업이 탄탄한 우리나라는 기회비용과 토지비용이 높아서 국내생산을 무작정 늘릴 수 없다. 정확한 계산은 어렵지만 경제적 한계비용과 농경지 면적을 고려한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최대 25% 정도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최대한 국내에서 많이 생산하면 좋겠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식량의 4분의 3은 해외에서 들여와야 한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식량안보는 생산능력과 조달능력, 그리고 지불능력의 합이다. 우리나라 경제규모를 고려하면 글로벌 식량 위기상황에서도 식량을 수입하기 위한 지불능력은 갖추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식량위기가 와도 돈이 없어서 식량을 수입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고, 우리나라가 식량을 구매하지 못할 정도의 식량위기라면 어느 나라도 안전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 됐다는 뜻이다.

관건은 생산능력과 조달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생산능력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의 직접 생산을 확대하는 것이고, 조달능력은 안정적으로 식량수입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에서는 지속적 품종개발과 비상대응작목 연구·개발 확대, 국토공간비상활용전략 등을 준비해야 하고, 해외에서는 농업분야 국제 협력 사업을 확대하고 해외농업 전문 인력을 열심히 양성해야 한다. 국제적 곡물조달시스템인 곡물엘리베이터 확보와 수입선 다변화 등도 필요하다. 아울러 위기상황 단계별로 일사불란한 대응을 위한 국가식량안보 비상대응체계 매뉴얼도 마련해야 한다.

이 땅에서 국민 모두가 하루 3끼를 큰 걱정 없이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70년 남짓이다. 식량의 안정적 공급이 당연한 것이 아니며, 작은 충격에도 흔들릴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의 작은 위기가 우리 농업과 식량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 언제라도 다가올 수 있는 더 큰 위기상황에 미리 대비하는 국민적 공감대 확산과 점검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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