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개혁 기본…과감한 청년정책·사회적 일자리로 풀어야”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ㆍ이기노 기자] 

한국농어민신문은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지난 12월15일 본사 6층 회의실에서 '농업
한국농어민신문은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지난 12월15일 본사 6층 회의실에서 '농업·농촌을 둘러싼 위기 진단과 농정의 방향'을 주제로 <20대 대선 : 농민의 선택 토론회>를 개최했다.

20대 대선이 두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5년마다 치러지는 대선기간은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분출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담론과 개혁의제가 공론화되는 시기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인 농업·농촌 문제도 반드시 공론의 장에서 의제화되어야 한다. 이에 한국농어민신문은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12월 15일 ‘농업·농촌을 둘러싼 위기 진단과 농정의 방향’을 주제로 <20대 대선 : 농민의 선택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현재 농업·농촌이 당면한 위기로 낮은 농업소득의 고착화에 따른 농가의 빈곤화, 농촌을 지킬 사람의 부재, 농지제도 문란과 농지 잠식, 기후위기 등을 꼽았다. 여기에 비효율적이고, 비민주적인 농정추진체계와 한국사회에 만연한 농업·농촌에 대한 무관심이 더해져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따라서 20대 대선 국면에서 농업위기의 본질에 다가서는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 농정 의제가 차기 정부의 중요한 개혁의제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하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주제발표 / 농업·농촌 위기 진단과 새정부 농정 방향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산업화 농정 궤도 수정…건강한 중소가족농 육성을”

투입비용 상승에 농업소득 제자리
청년경영주, 농가인구 1%도 안돼
태양광까지 가세해 농지잠식 가속

◆농업·농촌 위기의 진단=농업·농촌이 당면한 위기 가운데 가장 첫 번째는 농가 살림살이의 ‘빈곤화’다. 농업소득이 낮다는 것. 그 자체가 한국 농업과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낙관하기 어렵게 만든다. 2019년 농가소득 약 4118만원 중 농업소득은 1026만원. 2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할 것은 농업 총수입이 계속 올라갔는데도 농업소득이 제자리라는 점이다.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농사를 짓는다는 얘기로, 인건비나 농자재 등 투입비용이 갈수록 상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농업소득 전망이 회복되지 않는 상태에서 농가들은 자의든 타의든, 크게 네가지 경로로 이행한다. 먼저 전업화·규모화다. 규모화와 자본집약적인 방식의 농업을 통해 농업총수입을 계속 증대해 일정수준의 소득을 유지하려는 선택이다. 또 어떤 농가는 힘든 농사 대신 농외소득활동에 주력한다. 이 경우 국가적으로 농업생산성이 저하되고, 휴경지가 늘어나는 ‘농업열화’ 현상이 나타난다. 가장 바람직한 건 농외소득과 농업소득이 동시에 올라가면서 균형 잡힌 가족농이 유지되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도저도 답이 없을 때, 양쪽 소득이 다 줄면서 ‘빈곤화’의 길로 간다. 현재 한국 농가의 상당수가 ‘빈곤화’의 길로 들어섰고,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두 번째 위기는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청년 경영주가 1만, 1%도 안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매년 새롭게 농업에 진입하는 청년의 숫자가 2500명 남짓으로, 장래를 생각하면 전망은 더욱 암울하다. 이같은 ‘사람 없음’은 주민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 감소로 이어지고, 수요 감소는 일자리 감소를 낳아 다시 인구가 유출되는 악순환이 구조화됐다.

또 하나의 위기는 농지다. 지난 30년 사이 전국 농지의 25%가 줄었다. 최근 농지 감소 추세는 더 가팔라져서 1년에 1만5000~2만ha가 없어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식량자급률 20%에 불과한 나라에서 이토록 빠르게 농지가 사라져도 괜찮냐고 걱정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태양광 시설의 획기적 확충을 위한 농지 전용 압력이 거세다.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선 500GW 수준의 재생에너지가 필요하며, 그 중 태양광 몫으로 300GW를 가정하면 적어도 30만ha의 토지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체 농지 157만ha 중 논 면적이 84만ha인데, 과연 30만ha 면적에 태양광발전 시설 설치가 가능할까. 식량안보에는 정말 문제가 없을까.

마지막으로 기후위기 문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농업도 변해야 한다는 데는 당연히 동의한다. 하지만 ‘가해자/피해자’ 논쟁은 지나치다. 산정방식에 미흡한 부문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농업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은 2.9%에 불과하다. 반면 포항제철 한곳에서 나오는 온실가스가 11.3%에 달한다. 따져봐야 할 것은 오히려 막대한 면적의 농경지가 탄소흡수원으로서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저탄소농업’이라고도 말하는 영농상의 변화가 필요한데, 아직 구체적인 방법이 정립되지 않았고 농법의 전환도 매우 어렵다.

현실과 어긋난 임대차 문제 풀고
사회적 공유재로서 농지 지켜야
지역사회와 연계한 청년정책 설계
농정에 사회적경제 전략 결합도

◆농정방향에 대한 제언=오늘의 농업·농촌 문제는 대부분 ‘땅’과 ‘사람’의 문제로 소급된다. 우선 농지제도 개혁이다. 하나는 농지 소유 및 이용에 관한 것으로 ‘농지 임대차’ 문제를 푸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야 직불금 부정 수급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세대의 농지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농지 보전의 문제다. 논은 농업인 개인의 생산수단이기도 하지만 먹거리 보장과 환경보전 측면에서 사회적 공유재다. 농지 전용에 제동을 거는 장치가 있어야 하고, 농지는 농사에만 쓰자는 ‘농지농용의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부각된다.

두 번째는 산업화 지향의 농업정책 궤도 수정이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과도 맞물려 있다. 농사짓는 방식이 변하면서 농약, 비료, 비닐, 연료, 포장재, 전기, 난방 등등의 자재 및 에너지 투입과 물류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있고, 불행히도 그렇게 늘어난 투입재의 기초 원료는 대부분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연료다. 고투입을 전제로 한 농사 방식을 고집해서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어렵다. 따라서 농정당국은 기후위기 대응 측면에서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농민농업, 즉 ‘건강한 중소규모 가족농 집단’을 육성하는데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기울여야 한다.

세 번째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 혹은 선택형 직불제의 확대다. 농민들이 농사 방식을 전환하고 환경을 보전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하려면 충분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공익직불제가 도입됐지만 선택형에 대해선 손을 놓고 있고,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도 시늉만 하고 있는 게 문제다. 이를 확대하고 기후위기 등에 대처하는 공익적·사회적 활동을 일종의 ‘사회적 일자리 정책’으로 구상해 볼 것을 제안한다.

넷째 청년 정책사업은 지금보다 더 과감하게 추진하되, 농촌 지역공동체 활성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금은 여행사가 손님 모집하듯 개인들에게 현금을 나눠주다 보니, 시골에 온 청년들이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아니라 지원금을 집행하는 군청 공무원만 쳐다보고 산다는 말이 나온다. 지역사회가 참여하는 방식의 정책 개발이 필요한 이유다. 예를들면 읍·면마다 지역사회의 공적 의제를 풀어가는 마을만들기 조직이나 사회적 경제조직을 만들고, 이 조직을 통해 청년들이 지역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지역사회와 보다 긴밀하게 결합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농정에 사회적 경제 전략을 결합할 것을 제안한다. 아무리 훌륭하게 정책을 설계한들 농촌 주민의 자발적 참여와 협동 없이는 그 어떤 농정도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농촌에서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하되, 그 일자리가 농촌 지역사회의 필요에 부응하는 활동이 되게 하는 전향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일본이 10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지역부흥협력대’ 사업이나, 아일랜드의 ‘농촌 사회적 일자리사업’ 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덧붙여, 민간 부문에 인건비성 공공재정을 전달하는 것에 인색한 재정당국의 관행은 과감하게 고쳐야 한다. 공공부문이 할 일을 사회가 대신할 때 그 댓가를 지급하는 것은 당연하다. 관료제적 규제 혁파가 시급하다.

 

 

종합토론

토론자

강마야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서용석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
이문호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황영모 전북연구원 연구위원
황종규 동양대학교 교수
이상길 한국농어민신문 논설위원(좌장)

▲이상길(본보 논설위원)=우리 농업·농촌이 처한 위기의 실체가 무엇인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새 정부의 농정 방향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말씀해주셨다. 김 박사님이 제시한 쟁점과 과제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 부탁드린다.

농촌내 다층적인 혁신주체 주목
‘친환경 전환’ 실천적 동기 부여해야
먹거리 전담 특임장관 신설 필요


▲황영모(전북연구원 연구위원)=김 박사님의 제안과 고민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몇 가지 의견을 덧붙이고자 한다. 관행적으로 다뤄왔던 기존 농정공약의 틀로는 현재 농업농촌이 처한 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우선 사람의 문제다.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는 문제를 전업적으로 농업 생산을 담당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틀로만 보면, 해답을 찾기 쉽지 않다. 현재 농업인력은 귀농인, 귀촌인, 겸업농가, 계절노동력, 외국인 인력, 농작업 대행조직 등 다층적인 주체로 재구조화 돼가고 있다. 이같은 농민층의 분화와 농촌 주민의 다양화는 결국 농민이 변화한 시장과 정책에 대응해 온 결과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다양한 주체들에 주목하고, 이들이 실제로 농업 생산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귀농과 귀촌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혁신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사회적 경제 방식의 다양한 활동공간을 만들자는 제안을 드린다. 홍성 장곡면의 사례에서 보듯 이렇게 지역사회와 교감한 활동가들은 종국적으로 농업후계자의 트랙으로 올라탈 것이라고 본다.

세 번째, 탄소 중립과 관련 우리 농업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의 굴레를 쓰고 있다. 농업분야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탄소중립을 위해선 결국 친환경으로 전환을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실천적 동기 마련이 어렵다. 재정적·조직적 지원 없이 가치만 갖고 따라오라고 하는 건 안된다. 농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대응전략이 필요하다.

주제발표 중 언급되지 않은 사안 중 하나가 ‘먹거리’ 문제다. 전 국민 먹거리 기본권 보장을 기치로 공공급식의 조달체계 개편, 취약계층에 대한 먹거리 돌봄, 지역 먹거리 순환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하다 못한 국가 먹거리 종합전략 수립은 물론, 부처간의 분절을 해소할 특임장관 신설이 대선공약이 돼야 한다.

비효율적 농정추진체계 개편 우선
보조사업 중심 칸막이 행정 바꿔야
정확한 농정데이터 구축도 필수


▲강마야(충남연구원 연구위원)=앞서 제시한 내용들이 실현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농정 추진체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중앙정부로부터 시작해 광역 및 기초단체, 읍면, 다시 마을로 이어지는 정책추진체계 때문에 지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행정의 보조사업은 농민을 단순 보조사업자로 전락시켜 주체성과 자발성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읍면사무소 산업계가 대부분의 농정보조사업을 집행하는데, 보통 2~3명이 근무하면서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수백개의 사업을 집행한다. 직영이 아닌 민간위탁사업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성행하는 것도 문제다. 이런 위탁기관은 직접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다시 하청업체에 재위탁, 직접 책임지는 자가 모호해지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읍면 사무소가 최종 사업을 집행하면서 마을 이장들이 핵심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아무 권한은 없다.

이같은 칸막이 구조, 깔대기 구조는 지방정부 추진체계 개편에 걸림돌이 될뿐더러 수십개의 위원회와 상위계획만 양산, 민관 협치도 어렵게 하고 있다. 정확한 현실을 보여주지 못하는 농업 데이터도 문제다. 농지정책을 추진하면서 실제 임대차 비율을 조사해 본적도 없고, 농업경영체수는 매년 고무줄처럼 늘어나고, 실제 가동되는 농업법인 수가 정확히 얼마인지 아무도 모르는 게 현실이다. 기존 정책과 사업, 조직과 인력에 대한 대대적 개편이 필요한 이유다.

우선 시한이 다한 사업은 일몰하고 유사중복사업은 통폐합하되, 개별사업 단위가 아니라 프로그램 단위로 집행방식을 변경해야 한다. 또 전문직위제를 확대해 순환보직의 폐해를 줄이고, 협업과제를 추진할 수 있는 통합전략팀을 신설, 칸막이 행정을 극복해야 한다. 성과평가와 보상제도 개선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정확한 실태 파악을 위한 농정데이터 수집과 분석도 시급하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사실 지금 농업·농촌이 점점 홀대 받고,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원인 중 하나가 교육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농업과 농촌의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 유치원, 초중등 정규 교과과정에 농업과 농촌 교육과정이 포함됐으면 좋겠다.

기술혁신 등 산업측면 접근도 필요
추가적 ‘인센티브형’ 직불 추진을
비용만 더 늘리는 보조사업 손봐야


▲이문호(경남연구원 연구위원)=김 박사님의 제언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농촌사회의 부작용을 치유하고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으로 나아가기 위해 개인보다는 공동체가 더 중시되는 방향으로 농정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주장으로 읽힌다. 어찌보면 세계 곳곳, 그리고 우리나라 지역 곳곳에 분포해 있는 공동체 마을이 지향하는 가치, 또는 운영방식과 일부 유사한 측면이 있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술혁신이나 4차산업혁명, 스마트팜 등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5%의 농업인구가 나머지 국민을 부양해야 한다는 점에서 경제적·산업적 측면의 접근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씀하신 ‘경영자형 농업’과 ‘농민 농업’을 절충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농업의 온실가스 대응과 관련해서는 농업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얼마나 되며,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선택형 직불이나 가산직불과 관련 친환경·저탄소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에 대한 추가적인 인센티브형 직불이 추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촌을 생산 공간이자 생태·환경교육 및 문화적 공간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경남에서는 ‘다랑논 공유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다랑논을 매개로 지역 공동체가 활성화되도록 다양한 혁신적 접근을 시도 중이다.

강마야 박사님이 말씀하신 농정추진체계 개편 주장에도 공감한다. 경남의 농정 예산이 한 해 약 6000억 원 정도 되는데, 그 중 실제 경남도가 자체 예산을 들여 추진하는 사업은 20%가 채 안된다. 수 백가지의 사업 중 선심성으로 만들어진 것도 많고, 전체적인 정책 연계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체계 개편이 꼭 필요하다.

또 한 가지는 보조금 문제. 500만원대에 살 수 있는 농기계에 보조금이 지원되면 1000만원으로 뛰는 게 현실이다. 과다하게 비용이 소요되는 농업에 정부의 책임도 일부 있다는 생각이다. 이 부분도 반드시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고령농 은퇴 사회보장시스템 구축
청년농업인에 농지 확보 길 터줘야
4050 세대도 소외 없도록 살피길

◆서용석(한농연중앙연합회 사무총장)=한농연은 이미 29개 농정공약을 내놓은 바 있지만, 사실 중장기 미래보다는 현실 문제 대응에 급급한 게 현실이다. 농지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 문제, 쌀값 하락과 시장격리 문제, RCEP 비준에 이은 CPTPP 가입 문제, 기후변화에 따른 재해 빈발의 문제, 요소수 품귀로 촉발된 요소비료 수급불안 문제 등 현안이 계속 쏟아진다.

공익직불제 도입 당시 쌀 목표가격 폐지에 대한 우려가 높았지만, 정부는 적정한 가격유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고, 그래서 양곡관리법에 방출과 격리를 담은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쌀 가격이 높은데 굳이 해야 되냐고 한다. 농민들이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CPTPP에 가입한다고 하는데 농업부문 피해가 어느 정도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그렇다고 피해지원을 위한 예산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 같지도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요소수 사태에서 보듯 식량 해외 의존의 위험성을 국민들이 어떻게 인식하도록 할 것이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농촌의 미래를 생각할 때 가장 큰 화두는 ‘청년’이다. 청년들이 가장 어려운 게 농지, 특히 우량농지를 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 농촌에서는 아흔이 넘는 어르신이 직불금을 수령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이 적정 연령에 은퇴를 할 수 있는 사회보장시스템을 만들어야 청년들에게 농지가 돌아갈 수 있다. 또 하나 청년농이나 후계농 육성자금 지원조건의 개선이 시급하다. 현재 5년거치 10년 상환조건인데, 3억원을 대출받을 경우 5년 후에 연간 3000만원씩 상환을 해야 한다. 불가능한 구조다. 최소한 20년, 30년 중장기로 쓸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앞서도 지적이 있었지만, IT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농업관련 통계가 너무 불확실하다. 개선이 시급하다. 외국인 인력 부족 문제도 당장의 현안이다. 농촌인력 수급대책과 함께 밭작물 기계화, 밭기반 정비 등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한 가지. 최근 2030을 강조하다보니 농업 현장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4050세대가 역차별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책에서 소외되는 분들이 없도록 살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대선서 농업문제 국가 의제화하려면
사회적 소통으로 국민 공감대 얻어야
핵심 열쇠는 ‘면단위 지방자치’ 복원


▲황종규(동양대 교수)=한국사회는 지난 60년 동안 개발의 시대, 성장의 시대, 효율성의 시대를 살아 왔다. 그 시대의 언어와 그 시대의 문법이 여전히 큰 프레임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다보니 농업·농촌은 위기고 곧 망할 것 같은데, 이 방을 벗어나 다른 논의의 장으로 가면 우리 사회는 굉장히 밝고 희망적이다. 90년대 초 우루과이라운드(UR) 반대시위를 할 때 우리는 나라가 곧 망하는 줄 알았지만, 한국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그걸 딛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러한 간극에 대해 이제는 농업계도 고민해 볼 때가 됐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다.

오늘 김 박사님 말씀을 들으면 농업의 위기와 농촌의 위기는 분명히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 정책의 영역에서 농업의 문제와 농촌의 문제는 같이 다뤄지지 않는다. 정책 문제 정의도 다르고 목표도 다르고 담당하는 정부 부처도 다르다.

두 번째, 농업·농촌의 위기는 누구의 문제인가. 우리는 흔히 농민의 문제다, 피해자도 농민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게 한국사회에서 설득되고 공감되는 이야기인지, 누가 설득되고 누가 설득되지 않는지 구체화시켜 볼 필요가 있다.그 다음 농업·농촌이 망하면 국가가 위기에 처하거나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는데, 국민들은 그걸 전혀 피부로 느끼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이런 측면에서 대선이라는 선거 국면을 활용해 농업·농촌의 문제를 국가적 의제로 정책 의제화하려면, 오늘 제안된 여러 대안들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고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 이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은 주체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소통을 끌어낼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제 생각에 농촌 문제를 푸는 데 중요한 열쇠 중 하나는 면단위 지방자치의 복원이다. 한국농촌의 위기는 1961년 읍과 면의 지방자치를 폐지하면서 구조화됐다는 게 제 생각이다. 면을 정치단위로 복원시켜내는게 진짜 지방자치고 민주주의다. 농정추진체계의 문제는 돈을 받아서 집행하는 현장의 농민의 수, 마을의 숫자보다 돈을 기획해서 집행하는 상부구조가 훨씬 거대하다는 점이다. 거기서 생기는 부작용과 비능률과 무능이 오늘날 농촌을 망쳤다고 본다. 면을 되살리고, 농정 자체를 분권화시키는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다.

다양한 농촌체험·교육프로그램 구상
농민-도시민간 접촉면 확대 필요
“농업 문제는 온 국민의 문제” 인식을


◆신수경(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28년째 재단에서 일하고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농업·농촌은 중요하고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기본 명제가 흔들리고 있음을 느낀다. 도시의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생협도 이용하고 나름 가치 지향적인 소비활동을 한다는 사람들조차 ‘좋은 농산물을 소비하는 것’ 이상의 사고를 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재단이 그동안 농민과 소비자간 접촉면을 늘리는 다양한 체험사업을 꾸준하게 추진해 온 이유다. 실제 농촌체험마을이나 목장에서 농민들과 같이 체험활동도 하고, 먹거리에 대한 강연도 들으면서 1박2일, 2박3일 지내고 난 후 다시 설문조사를 하면, ‘농업·농촌이 중요하다’는 응답이 99%에 육박한다.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해 세금을 부담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당연히 해야 한다고 답한다. 온도차가 거의 없다. 그만큼 공감을 위해선 접촉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앞서 교과과정에 농업·농촌에 대한 교육이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일본처럼 일정기간 의무적으로 농촌체험을 하도록 한다든가, 호주 멜버른 콜링우드팜의 ‘영파머’ 프로그램처럼 반드시 농민이 되지 않더라도 일정기간 농업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농업·농촌에 대한 지지세력으로 남게 되는 프로그램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재단에서 미래 농업리더 장학생 양성사업을 위해 면접을 해보면,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농업은 대부분 스마트팜, GMO 등이다. 재단은 이 학생들이 2년간의 과정을 통해 농업·농촌의 가치에 대해 인식하고, 나와 분리된 곳이 아니라 나를 위해 꼭 필요한 곳이라는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 이러한 역할을 정부에만 맡길 수는 없고, 우리와 같이 제3섹터에 있는 재단 등이 연대해서 협력하는 부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특히 미담 보다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민간부문 활동가들의 인건비 말씀을 하셨는데,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활동가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농업·농촌의 문제를 온 국민이 나의 문제로,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면 계몽 하듯, 야단치듯 해서는 안된다. 야단맞는 느낌이 되면 방어기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좀 더 세련되게, 친절하게, 소비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해봤으면 한다.

▲이상길=시민사회와의 접점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이를 통해 농업 진영이 안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국민적인 의제로 만들 것인지 큰 숙제가 놓여 있는 것 같다. 토론자들의 이야기에 답변이 필요한 부분, 말씀해 달라.

▲김정섭=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놓치고 있었던 것 중 하나가 지방분권의 문제다. 농정에 관여하는 많은 분들이 농정의 지방분권을 재정분권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재정분권이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아래로부터의 자치분권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 지점에서 특히 황종규 교수님이 강조한 읍면 수준의 자치분권시스템이 중요하다. 차기 정부의 굉장히 중요한 과제다.

이문호 박사님이 경영자형 농업과 농민농업의 ‘절충’을 이야기하셨는데, UR 이후 한국의 농정은 25년 넘게 ‘경영자형 농업’에만 집중해왔다. 말로는 중소가족농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농민 농업’ 쪽에는 왜 투자를 안하냐는 얘기다. 이건 절충이 아니라 균형의 문제다. 최소한 농업인력 육성과 관한한 선택과 집중의 논리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마야 박사님이 말씀하신 농정체계시스템에 대해 덧붙이자면 농지제도 개혁과 농업경영체 등록 정비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통계상으로는 100만 농가인데 농업경영체는 160만이 넘는다. 쉽지 않겠지만 손을 대야 한다. 정부의 모든 보조사업의 절차와 내용이 담긴 농림사업시행지침도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담당 사무관마다 시행지침 몇 개씩 움켜쥐고 공모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안된다. 지방으로 내리면서 유연화하고, 아래로부터 기획이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소비자가 아니라 ‘시민’과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한국사회에서 소비자는 그냥 ‘왕’이다. 근본적으로 안바뀐다. 같은 사람이라도, 소비를 부르는 것과 시민을 부르는 건 다르다. 한국사회에서 외면당하고, 무시당하는 농업문제를 좀 더 공공의 의제로, 사회 전체의 문제로 가져가려면 농업생산자들이 소비자와 연대하는 차원이 아니라 농민을 포함한 농촌 시민들이 도시에 사는 시민들과 연대하는 프레임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선아·이기노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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