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기노 기자] 

얼마 전 취재현장에서 ‘요소수 파동 때 농기계가 멈출 뻔했다’는 한 농민을 만났다. 그는 자녀의 도움을 받아 해외직구로 요소수를 구입해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다며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해외직구 비용은 8배나 높은 가격이었지만 한해 농사를 망칠 수 없어 구입을 서둘렀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말미에 이 농민은 요소수 파동을 통해 국민들이 식량자급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희망했다. 요소수가 없으면 자동차와 농기계가 멈추는데 그치겠지만, 식량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위협 받는다는 일종의 경고이기도 했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는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다시금 환기시키고 있다. 2019년 기준 곡물자급률은 21%, 사료용을 제외한 식량자급률은 45.8%에 불과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07년 식량자급 목표치를 설정한 이래 역대 최저치이며, OECD 주요 선진국의 곡물자급률이 100%인 점을 고려할 때 매우 낮은 수준이다.

문제는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의 확산으로 인해 곡물수출이 제한되거나, 기후위기에 따른 식량생산 여건의 악화로 세계적인 식량파동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된 지난해 베트남, 인도, 러시아 등은 곡물 수출제한 조치를 연이어 발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량자급을 걱정하는 국민은 여전히 많지 않고, 식량자급률 향상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지 않다보니 관련 예산확보 등 정책 추진에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되는 이유다.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식량자급 목표를 설정할 때 자급률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설정하도록 ‘노력 의무’를 부과해 주목된다.

물론 식량 수급상황에 따라 조정이 불가피한 점 때문에 강제조항 성격은 아니지만, 2007년부터 2018년까지 4차례에 걸쳐 식량자급 목표를 단 한 차례도 달성하지 못한 농식품부에 최소한의 ‘노력 의무’를 부과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내년부터 농식품부는 2023~2027년까지 5년 단위의 식량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 등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 이번 식량계획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식량안보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농식품부는 결연한 의지로 법에서 정한 ‘노력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야 할 것이다.

이기노 농정팀 기자 leekn@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