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

[한국농어민신문] 

행정·용역사가 계획 수립 좌지우지
준비과정 소외된 주민들은 비협조적
사업 완료 후 사후관리는 나몰라라  

최근 지자체마다 눈에 띄는 현수막이 있다. “○○시·군 농촌 신활력플러스사업 선정, 국비 50억 확보”, “○○시·군 농촌협약 선정, 국비 300억+α확보”등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자체별로 공모사업을 통한 국비 확보를 홍보하는 현수막이 유난히 눈에 띈다. 비단 농림축산식품부 공모사업이 아니더라도 국토교통부 도시재생뉴딜사업, 해양수산부 어촌뉴딜 300, 보건복지부 커뮤니티케어 등등 대규모 공모사업 유치는 지자체장의 주요한 업적으로 활용된다. 공모사업 유치에 기여한 행정 내부 담당팀과 팀원들은 업무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성과를 챙기게 된다.

국비 유치를 위한 공모사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지역리더들은 어떠한가? 공모사업이 완료된 지역의 리더 다수는 사업을 통해 상처와 부담만 안게 되었다고 소회를 밝힌다. 최근 국비 공모사업 대부분이 주민참여와 주민주도성을 강조하면서 사업추진과정에서 주민위원회(사업별로 추진위원회, 주민협의체 등 다양한 명칭 사용 중) 구성이 필수적이다 보니, 행정에서 이장, 또는 주민자치위원회, 어촌계장, 개발위원회 등 지역리더 중심으로 사업추진을 제안하고 몇몇 리더그룹을 중심으로 주민조직이 급하게 조직된다.

지역에 따라 면 소재지 4개 마을 이장중심으로 예비계획을 수립하고, 기본계획 수립과정에서 인원이 적다는 지적에 따라 이장들이 참여자를 추천하여 확대하기도 하고, 읍면 소재지 2개 마을 중심으로 참여하다 1개 마을을 추가하여 주민위원회 인원을 확대하는 방식 등 결국 행정의 의견에 따라 주민조직이 구성되고 있다. 일부 지역은 지역사회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를 위해 30여명으로 주민위원회를 구성했는데, 행정에서 11명으로 줄이는 것이 효율적이겠다는 제안이 있어 축소하기도 했다.

공모사업 계획 수립과정 역시 주민주도성보다는 행정과 용역사의 주도성이 여전히 과제이다. 지역리더들은 공통적으로 계획수립 과정에서 행정과 용역사는 “기존 시설을 리모델링하는 것으로 내용을 넣어야 선정 시 유리하다”, “우선 선정된 뒤 주민의견을 반영하여 수정할 수 있다”고 리더들을 설득한다.

그러나 막상 사업에 선정되면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주민자치센터의 소유권을 주장하여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게 되고, 준비과정에 소외되었던 주민조직들은 사업추진에 비협조적이거나 자신들의 몫을 주장하게 된다. 사업선정 후 주민의견 수렴과정에서 도출되는 사업은 예비계획과 너무 내용이 다르거나, 지침 또는 규제 등으로 반영할 수 없게 되면 주민 간 갈등이 본격화된다.

우여곡절 끝에 사업이 추진되어도 그 과정이 녹록치 않다. 야외무대를 설치했지만 스피커와 앰프 등 관련 기자재는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빨래방을 설치했는데 설치된 세탁기를 가동하면 전력이 차단되어 결국 설치된 3대의 세탁기 가운데 1대만 가동할 수 있다. 주민들은 시공업체의 설계도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고 공사가 완료된 이후에야 문제를 알 수 있다. 사업 완료 후 행정과 자문교수들은 시설 운영관리의 주체는 주민들이니 자생력을 키우라고 한다. 사업 완료 후에는 행정과 용역사, 자문교수 등 누구도 사후관리를 주도하지 않는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고보조금은 1000여 개 사업에 86.7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앙정부 총지출 대비 16.9%에 달하는 금액이다. 국고보조금은 2020년 기준 지방세입 예산의 3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 많은 국고보조금이 지역사회 활성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알 수 없다.

행정이 주도하고 행정의 칸막이 틀에 얽매여 지역사회에서 연결되지 않는 국고보조금은 정책의 성과로 연결되지 못한다. 지역사회의 문제는 그 원인이 복잡하고 지역의 역사적·사회적·경제적 특성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농촌지역에 청년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청년들의 주거, 일자리, 문화·복지, 아동돌봄 등 청년을 둘러싼 사회적 과제 해결을 위해 정책적 연계가 불가피하지만, 그동안 중앙부처 국고보조사업은 중앙부처에 대응하는 지자체 부서와 관련 주민조직까지 운영체계를 공고히 해 왔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행정안전부는 최근 의미 있는 실험을 추진 중이다. 주민과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지역사회활성화계획을 수립 후 지역과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부처별 사업을 제시하면, 관련 부처와 협약을 통해 다년도 다부처 패키지 형태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단일과제에 단일부처 공모사업 방식을 개선하고, 행정주도의 공모사업 대응방식을 전환하기 위한 것이다.

이 사업은 기존 사업과 달리 대규모 하드웨어 사업보다 지역사회단체 간 협력을 통해 공동으로 지역과제 해결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업을 우선 지원한다. 이를 통해 그동안 부처별 사업추진체계 따라 분열되어 있던 지역사회를 연결하고, 지역의 미래를 주민 스스로 결정하도록 결정권을 부여한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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