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전략기획경영본부장

[한국농어민신문] 

디지털 접속-아날로그 현실 어우러져야
비로소 완성되는 스마트농업 혁신
충분한 현장중심 검토 이뤄지나 살펴야

작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는 농업은 본질적으로 수익은 낮고 혁신의 주기는 매우 긴 특징이 있다. 자연환경과 생명체가 가지는 불확실성과 비표준성, 개별성 때문이다. 대신 한 번 정립한 혁신의 성과물은 아주 오랫동안 현장의 선택을 받기도 하고, 반대로 완성도가 조금이라도 부족한 혁신의 성과물은 현장으로의 진입 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농민이 새로운 품종이나 혁신 기술을 선택 할 때 아주 작은 실수라도 범하게 되면 작기(作基) 전체의 실패와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농민의 선택은 보수적이고 신중함을 넘어 답답해 보이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혁신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슘페터(1883~1951)’의 이론도 농업 혁신에서는 예외가 되는 경우가 많으며, 일반경제학에서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다양한 이론과 사례를 농업경제학에서는 많이 찾을 수 있다.

전통농업에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스마트농업은 농업의 혁신 방정식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우선 전통농업의 경우에는 품종, 재배기술, 방제 등과 관련한 생물화학기술이 혁신의 중심이었다면, 스마트농업은 센서, 데이터, 솔루션, 자율동력 등 물리기계적인 요소가 혁신의 중심이 되고 있다. 혁신 성과물이 농업 현장에 확산되는 경로도 전통농업이 기초연구, 응용연구, 실용화, 산업화를 거치는 선형방식이었다면, 스마트 농업은 단계구별 없이 해결해야 할 현장문제의 답을 마련하기 위해 각 단계가 동시에 개입하는 원샷 방식이 적용된다. 필요기술의 위치도 전통농업에서는 농업계 내부에서 직접 개발해서 사용하는 빌게이츠형 인벤션(invention)방식 이었다면, 스마트농업에서는 농업계 외부에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농업에 맞도록 변형해 도입하는 스티브잡스형 통합(Deployment) 방식이 주류가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혁신의 핵심 인력도 농업계 내부 보다는 외부에서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농업계 내외부의 협업이 중요해 지고 있다. 혁신의 방향성도 예전에는 신기술의 성능이 현장의 혁신을 견인하는 기술주도형(Tech Push)이었다면, 이제는 농업현장에서의 수요가 외부의 기술을 불러오는 수요견인형(Demand Pull)방식으로 진화중이다. 농업에서의 수익 원천과 무게중심도 이동 중인데, 과거에는 농업의 전방산업인 농식품이 혁신의 주요 대상이었던 반면에, 이제는 농업의 후방산업인 농기계, 농자재, 작물보호제, 데이터 솔루션 등 투입재의 혁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 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스마트농업은 디지털 공간의 접속과 아날로그 현실의 접촉이 어우러져야 완성되는 혁신이다. 그래서 연구실인 랩(lab)과 현장인 필드(field) 에서의 실험과 실증의 균형이 중요하지만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스마트 농업에서 랩은 수단이고, 목적은 현장인 필드이기 때문에 언제나 필드가 혁신정책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의 우리나라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농업으로의 혁신 정책이 충분히 현장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아니면 첨단기술이라는 명목으로 랩과 연구자 중심으로 자원배분과 연구과제 수행이 반복되고 현장과는 계속해서 멀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면밀히 살펴보고 교정해야 한다. 랩에서의 성공적인 실험이 필드에서 성공을 보장하지 않으며, 랩에서 입증된 기술일지라도 현장에서 사용하려면 값싸고 쉬워야 하는데 이 조건을 맞추는 것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마트농업 일수록 랩에서 좋은 기술이 개발되면 경로와 과정은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현장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는 추상적 접근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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