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21일 서울시내 편의점에서 한 소비자가 ‘희망급식 바우처’ 스티커가 부착돼 있는 도시락을 보고 있다. 
21일 서울시내 편의점에서 한 소비자가 ‘희망급식 바우처’ 스티커가 부착돼 있는 도시락을 보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원격수업 대상 초중고 학생들의 결식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도시락 등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한 서울시교육청의 ‘희망급식 바우처 지원’ 사업이 20일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지난해 도농상생 취지에서 추진된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 사업이 폐기됨에 따라 생산 농가들의 피해가 우려되는 데다 친환경 및 급식 단체들도 교육청의 행정편의적인 행태를 비판하고 나섰다.
 

▲원격수업 받는 학생들, 편의점에서 도시락 살 수 있다=희망급식 바우처 지원 사업은 코로나19 장기화로 매일 등교하지 않고 원격수업에 참여하는 서울시 내 초중고 학생 약 56만명 중 희망자에게 1인당 10만원의 제로페이 모바일 포인트를 지급하는 사업으로, 급식 지원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된다.

신청 학생 또는 학부모의 핸드폰으로 제공되는 포인트로 편의점 6곳(GS25, CU,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씨스페이스, 이마트24)에서 도시락 등을 구입해 급식을 대체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취지다.

서울시 초중고 학생 85만명 중 매일 등교하는 초등 1,2학년, 고등 3학년, 특수학교, 소규모 학교, 긴급돌봄 참여 학생을 제외한 56만명이 대상자다. 전체 학생의 66%(2/3) 수준이다.

이를 위해 교육청은 앞서 10일 한국편의점산업협회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희망학생 신청 절차를 밟아 해당 사업을 20일부터 본격 시행하고 있다.

교육청은 편의점의 뛰어난 접근성에 힘입어 ‘사각지대 없는 촘촘한 급식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식품 안전과 영양 불균형 지적 등에 대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영양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의 심의를 통과한 도시락, 제철과일, 흰 우유, 두유, 야채 샌드위치, 과채쥬스, 김밥 등 10개 군의 식품만 구입 허용하고, 인스턴트, 카페인 음료, 탄산음료, 삼각김밥 등은 구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바우처는 7월 16일까지 사용할 수 있다.

“조리 불편 학부모 민원 많고
급식 단가 1인당 4000원 불과”
교육청, 편의점 선택 이유 설명


▲친환경 꾸러미 사업 폐기, 교육청의 결정 배경은=지난해 상반기 코로나19 확산으로 등교 중단에 따라 학교급식이 차질을 빚으면서 지자체와 소비자들의 호응 속에서 서울 등 전국적으로 추진됐던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 사업은 희망급식 바우처 사업 추진으로 사실상 폐기됐다.

폐기 이유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은 7일 별도의 설명 자료에서 “꾸러미의 구성과 식재료 부패 등에 있어 학부모들의 불만과 민원이 많았다. 꾸러미를 원하지 않아 다른 종류의 사업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20일 서울시교육청 급식기획팀 관계자는 “원격수업을 받는 학생들이 식재료(친환경 농산물)를 받아서 요리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식품, 특히 도시락을 배달해줬으면 하는 학부모들의 요구들이 많았다. 이런 부분이 많이 반영됐다”고 덧붙였다.

이에 더해 예산 문제 등 현실적인 제약이 교육청의 결정 배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업은 56만명에 10만원씩 제공돼 총 예산은 560억원 소요되며, 교육청과 서울시, 자치구가 5:3:2로 각각 부담한다. 교육청 몫은 280억원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사업 예산은 교육청과 서울시, 자치구가 5:3:2로 각각 부담을 하는데, 학생 급식 1식(끼)당 책정 예산은 인건비를 제외하면 약 4000원 정도에 불과하다”며 “가용 예산 범위 내에서는 편의점 도시락이 가장 최적의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편의점 도시락도 10% 할인이 이뤄졌기 때문에 가격 면에서 가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예산이 풍부했다면, 이보다는 선택지가 많았을 것이라고 본다. 희망급식 바우처 사업은 이번만 시행하는 한시적인 사업이며, 2학기부터는 전면 등교 방침이기 때문에 학교급식이 정상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꾸러미 사업 폐기 하면서
친환경농민·급식 단체 등
관계자들과 ‘불통’도 문제


▲교육청의 행정편의적인 발상 지적 잇따라=서울시교육청의 설명에도 이번 교육청의 결정이 행정편의적인 발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해당 사업의 만족도 역시 편의점 업체들의 ‘안전하고 품질 높은 도시락’ 제공 노력에 전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번 사업에서 서울시교육청의 사후관리 및 감독 역량 등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먹거리 관련 단체의 한 관계자는 “학교급식은 교육적·공공적 기능을 갖고 있다. 한 끼 급식을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고 있는 이들의 현실적인 수고로움에 비해 교육청의 결정은 지극히 행정편의적”이라며 “결식 학생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더 세심한 고려와 노력이 필요했다. 또한 사업 만족도를 높이고 꼼꼼한 사후관리를 해야 할 교육청의 역할 역시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친환경농업협회도 17일 성명에서 “이번 사업이 보호자가 없어 요리가 어려운 학생의 결식 해소가 목표라면, 학생들의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친환경 농민과 급식업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도시락 공급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의점 이용 바우처 지급은 행정편의적인 발상이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청의 ‘불통’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관련 주체들과 논의가 부족했다는 얘기다.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와 서울먹거리연대는 18일 성명에서 “서울시교육청은 학부모, 학교당국, 친환경생산자, 급식전문가 등 급식 관련 주체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했는가”라며 “교육부에서 등교하지 않는 학생들에 대한 탄력적인 급식 방안을 검토한 바는 있지만 교육청에서 급식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 교육 주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없었다는 점은 분명한 문제”라고도 짚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친환경 또는 먹거리 단체들과 협의는 하지 않았다”고 인정하면서도, “해당 사업과 관련된 관계자들, 영양교사, 학교자문위원회, 급식위원회 등과 관련 협의가 있었다. 친환경 또는 먹거리 단체들과는 협의 자리를 갖지는 않았지만, 그분들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친환경농업협회 등 비난 쇄도
꾸러미 준비 농가도 ‘망연자실’

▲뒤늦은 소식에 꾸러미 농가 ‘망연자실’=희망급식 바우처 사업 추진 발표 이후에야 뒤늦게 친환경 꾸러미 사업 폐기 소식을 전해들은 친환경 생산 농가들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와 광주광역시 학교급식에 친환경 쌀을 납품하는 전남 해남의 생산 농가는 “올해는 학교급식이 일부 이뤄지고 있지만, 정상화되지는 않고 있어 재고 물량이 많다. 혹시라도 공공급식이 정상화될지 몰라서 납품 계약 물량, 코로나 이전 평년 물량 1800톤을 준비해두고 있는데 올해 반절도 못 들어가고 있다”며 “언제라도 급식이 재개될 수 있기 때문에 납품 계약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정 물량을 항상 갖고 있어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농가는 이어 “꾸러미 물량도 준비해놓은 상황인데 서울시에서 친환경 꾸러미 사업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갑작스럽게 듣고 이도저도 못하고 있다”며 “지난해는 꾸러미 사업이 많이 시행돼 큰 도움이 됐는데, 올해는 지자체에서도 꾸러미 사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걱정이 크다. 판로 확보 차원에서 가격을 싸게 공급하더라도 쿠폰이나 바우처 등의 사업이 많이 추진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와 관련 농림축산식품부 친환경농업과 관계자는 20일 “지난해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 사업 추진 당시에는 지자체 요청으로 협의가 있었는데, 희망급식 바우처 사업은 뉴스를 보고 추진 사실을 알았다. 학교급식 관련 사무는 지방위탁사무로, 중앙정부가 관여하거나 또는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면서 “지금으로서 농가 피해 방안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 정부는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친환경 농가들에게 영농지원바우처 사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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