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산다는 것 <6>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변호사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폐기물·송전탑 태양광 등 즐비
자본의 탐욕, 농촌공동체 위협
농민 위한 공익법률단체 필요

기후재해 피해 본 농민 많은데
제대로 된 대책 논의조차 안돼
보험 말고 보상으로 해결해야

지난 3월30일 오후 충남 홍성군 홍동면 운월리 논 밭 사이 공터로 컨테이너 한 채가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이 곳은 바로 비영리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대표 변호사 하승수)의 사무실이다.

이 컨테이너는 하 변호사가 돕던 홍성군 갈산면 오두리 폐기물매립장 대책위가 농성장으로 쓰던 것인데, 이번에 대책위가 농본 사무실로 기증한 것이다. 오두리 주민들은 직접 트럭에 컨테이너를 싣고 와서 지붕도 설치하고 내부 벽면까지 깨끗하게 손봐주고 돌아갔다.

들판 한 가운데에 공익법률센터라니? 과연 공익법률센터 농본은 뭐하는 곳일까? “서울에는 노동, 인권, 환경 등을 위해 활동하는 변호사들과 공익법률단체들이 많이 생겼지만, 농민을 위해 활동하는 공익법률단체가 없잖습니까. 농촌·농민·농사를 옹호하고, 농촌 마을공동체를 지키려는 주민운동을 지원하는 공익법률센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농촌에 오면서 몇 년간 고민을 하다가, 일단 제가 시작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센터 대표인 하승수 변호사의 설명이다.

지금 농촌은 산업폐기물, 송전탑, 대규모 축사, 환경오염시설에 태양광까지 밀고 들어와 마을공동체가 위협받고, 기후위기로 인해 농사피해가 급증하고 있는데, 근본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또 농촌, 농업이 지속가능하려면, 농지문제, 농촌주택 문제 등에 대해서도 대안이 필요하지만, 정치에서는 아예 이런 문제들이 논의조차 되지 않고, 심지어 지자체 관료들의 머릿속에도 농촌과 농민의 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을 풀어나가는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농본'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농본은 단순한 법률적인 지원을 넘어서서, 마을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전략을 함께 논의하고, 무너져가는 농촌 .농민. 농사를 지키기 위한 법제도적인 해결책까지 같이 모색하는 현장밀착형 지원조직을 지향한다는 계획이다.


-사무실 운영하려면 비용 마련이 녹록지 않을 텐데요?

땅 매입 자금은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차입을 해서 마련했습니다. 이 땅은 단체 명의로 등기를 해서, 앞으로 쭉 일종의 공유지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비영리 공익법 운동단체이다보니 후원을 통해 최소한의 운영비를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농촌, 농민, 농업을 살리는 일에 많은 관심과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4월부터는 청년 한 명이 반상근으로라도 일단은 활동을 시작한다고 한다. 앞으로 가능하면 지역에 있는, 앞으로 농촌에 살고 싶은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갈 참이다. 활동가들에게 급여를 주려면 후원을 늘리는 게 관건이다. 앞으로 서울의 공익변호사 중에서 농촌에서 일하고 싶은 분이 있으면 초빙해서 제대로 일 하는 구조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컨테이너를 놓은 땅이 돌아가신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과 인연이 있는 땅이라죠? 김종철 선생님의 빈 자리가 큰데요.

. 이 땅은 김종철 선생이 풀무학교 전공부 교사들에게 후원한 돈으로 마련된 땅인데, 그걸 우리가 쓰게 된 겁니다. 김종철 선생님은 한국의 사상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분이고, 지식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실천가로서도, 사실은 사람들이 잘 모르게 역할을 하신 게 굉장히 많죠. 풀무학교 전공부 같은 경우도 많이 지원해 주셨고요. 선생님의 사상을 어떻게 잘 이어갈지,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그 중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 농본주의라고 생각하는데, 농본주의를 이어갈 수 있는 실천 활동으로 농촌 공익법률센터를 만드는 게 있고, 또 하나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김종철 선생의 사상을 공부해 나가는 작업들을 돌아오는 1주기에 가능하면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요. 김종철 선생이 소개한 외국 사상가도 많잖아요. 이반 일리치, 오다 마코토 라든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그리고 탈성장, 기본소득, 화폐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 추첨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 같은 논의들도요.”

하승수 변호사는 김종철 선생과 녹색당을 창당했고, 녹색평론의 편집자문위원, 김종철 선생이 이사장으로 있던 녹색전환연구소의 기획이사,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공익법률센터 농본은 바로 김종철 선생의 농본주의에서 따온 이름이다.
 

비농민의 농지 처분 강제하고
그린뉴딜, 식량주권이 핵심 돼야
농촌소멸 막으려면 소득 보장을

농촌·농민·농사 옹호 법률센터
‘농본’ 이름도 농본주의서 따와
‘현장밀착형 지원조직’ 지향

-농본의 기획사업에 기후위기 농업피해 대응이 있어요.

농본은 농촌 마을공동체를 지키려는 지역주민운동을 돕는 것과 함께 몇 가지 기획사업을 하려 합니다. 하나는, 기후위기로 인한 농사피해 문제입니다. 작년에 기후재해로 인해 피해를 입은 농민들이 많은데, 제대로 된 대책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작년 11월에 통계청이 쌀 생산량이 6.4%만 감소했다고 발표해서 놀랐습니다. 우리 홍동만 해도 생산량이 20%~30% 줄었고, 조생종 같은 경우 더 줄었다고 농민들이 얘기를 하세요. 제가 통계청에 기초자료를 달라, 정보공개 청구한다고 했더니 자기들 내부적으로 품질검증을 한 뒤에 공개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렇다면 품질검증도 안된 걸 왜 그렇게 서둘러 발표했을까요.

농작물재해보험이 있지만, 저는 기후위기로 인한 농사피해는 보험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온실가스를 대량배출하면서 기후위기를 야기한 기업 등에게 비용부담을 시켜서라도 정부가 농민들에게 보상을 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을 겁니다. 이 문제, 끈질기게 접근해보려 합니다.”

앞으로 기후변화 때문에 농업피해가 더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많은데, 지금의 농업통계나 농작물재해보험으로 문제해결이 불가능 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농업재해는 농민의 책임이 아닌 만큼 농민이 돈 내는 보험이 아니라 일단은 실태를 파악해서, 기후위기 농업피해보상법 이런 걸 만들어야 되지 않겠냐는 게 그의 의견이다.
 

-농지문제가 큰 이슈입니다.

. 농지투기는 LH 직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에서 너무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만연한 문제죠. 그리고 상속이나 이농으로 인해 부재지주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개발사업으로 인한 농지전용문제도 심각합니다. 이 역시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기획사업으로 끈질기게 매달리면서 문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대안도 모색해보려 합니다.”
 

-국회의원들도 다수가 농지를 가지고 있는데, 이제 농지관계법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농지법은 한편으로는 농지법상에 비농민이 농지를 취득할 수 있는 예외조항 같은 걸 없애고 줄이고 하는 작업도 필요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비농민이 보유한 농지도 많아서, 앞으로 취득을 제한하는 걸로는 너무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봐요. 지금 처분명령 제도가 실효성이 없으니까. 기존에 비농민들이 소유하고 있는 농지에 대해서 어떻게든 처분을 하도록 강제하고 유도하고, 그것을 공적으로 매수하든 위탁을 받든 관리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농지법을 국회가 바꾸려면 300명 국회의원의 농지 소유실태를 조사하고 공개해야죠.”
 

-정부가 추진하는 그린뉴딜에 대해 비판을 하고 계십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그린뉴딜이나 그린딜 논의를 우리나라가 참고하는 건 좋은데, 우리하고 다른 점이 그 쪽은 식량 자급이 되는 데잖아요. 오히려 잉여농산물이 나와서 문제고, 우리는 식량자급이 안 되는 데, 이건 엄청난 차이가 나는 조건이죠. 기후위기는 식량위기로 다가올 것을 다들 예측하고 있는 상황에서 식량자급이 안 되는 한국에서 그린뉴딜은 식량주권 확보가 핵심이 돼야 하는 거죠. 지금 전부 전기 에너지에만 집중하는 건 잘못됐어요. 식량주권 확보를 그린뉴딜이라고 본다면, 식량주권 확보는 농지확보가 우선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농지 태양광은 안 되는 거고, 농지가 아닌 곳에서 태양광을 해야죠. 건물지붕을 활용하든 도로변을 활용하든, 활용할 수 있는 데는 다 활용하는 건 좋은데 농지는 건드리지 말아야죠.”
 

-농민기본소득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농촌소멸을 막으려면 기본적으로 농민들의 소득이 보장돼야 합니다. 농민기본소득은 먹거리를 생산하고 환경·경관을 보전하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해 농민들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자는 거죠. 농민기본소득은 전체적인 기본소득 논의하고 약간 구분해서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농가인구가 적기 때문에 농민기본소득은 그렇게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농지만 정확하게 실태 파악 되고, 농민이라는 카테고리만 잘 구분이 되면요.”

하 변호사는 예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홍성에 와서 확실하게 정리한 생각이 읍면주민자치라고 했다. “농촌 읍면 같은 경우는 우리가 많이 주목해야 될 좋은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그렇고 또 마을의 자치의 전통 같은 것도 있잖아요. 그런 게 있기 때문에 지방자치도 도시의 지방자치와 농촌의 지방자치는 달라야 합니다. 사실 5.16 이전에는 읍면자치를 했었고요. 읍면자치를 없애버린 건 박정희의 잘못된 유산이죠.

아직도 농촌에는 가치와 가능성이 남아 있어요. 농촌에 사는 개인의 삶에서도 그렇지만, 마을재산도 공동관리하고요. 최근에는 그걸 잘 관리하려고 마을규약도 만들고, 정비하고, 현대에 맞게 재정리하는 작업들이 이뤄지고 있어요. 사실 자치라는 건 마을단위에서 계속 해왔어요. 이장도 뽑고 마을재산도 같이 관리하는, 공유와 공생이죠.

홍동면만 해도 행정리가 33개인데, 일종의 마을자치, 마을공화국이라고 할수 있는 게 행정리입니다. 읍면의 경우 정치적 공동체로서 지방자치를 할 수 있는 단위입니다. 현재 임명직인 읍면의 자치권을 회복하는 게 농촌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는 면 단위가 전체 국토의 73%인데, 인구는 10% 이하라며 73%를 차지하는 면지역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을 만드는게 균형발전의 핵심이라고 했다. 면 지역이 살기 좋은 곳이 되면 자연스럽게 인구도 분산되고, 주거문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은 나무에 계속 물을 주다 보면 나무가 소생하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기적을 믿으며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보려 합니다.” 농촌을 지키고, 농사를 살리고, 농민과 농촌주민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부패와 관료주의, 자본의 탐욕과 끈질기게 맞서겠다는 하 변호사와 농본의 활약이 기대된다.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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