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공고 외 시험범위서 문제 출제
동일한 답안에도 채점 들쭉날쭉
일부 응시생 ‘억울한 불합격’ 
산업인력공단 행정소송 제기


지난해 치러진 제6회 손해평가사 자격시험에 심각한 오류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며 일부 시험 응시자들이 국가기관(한국산업인력공단)을 상대로 최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한 응시자들은 2차 시험에서 △시험 범위 외 출제 △시험 문제 자체의 오류 △단순 과실 수준 이상의 오채점 등의 문제가 곳곳에서 확인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재해보험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인사들이 문제 출제와 채점을 맡고 있기 때문이라고 의심했다. 

이에 따라 국가자격시험인 손해평가사 시험의 신뢰성과 전문성이 손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험생의 억울한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한국산업인력공단, 농림축산식품부, 농업정책보험금융원(농금원) 등에 수차례 이의제기를 했지만 책임 회피에만 급급해 소송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했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함께 피해 구제, 제도 개선 등을 바라고 있다. 이번 행정소송을 주도한 시험 응시자 박범규 씨(35)를 만나, 이들이 말하는 손해평가사 시험의 문제점을 들어봤다.


◇손해평가사 시험은

손해평가사는 농어업재해보험법에 따라 농작물(가축)재해보험에 관한 피해사실 확인, 보험가액·손해액 평가 등을 하는 전문 인력이다. 손해평가 업무는 국가정책보험인 농어업재해보험에서 재해보험 사고 후 보험금 지급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농식품부가 2015년 자격시험을 도입, 지난해 6회 시험이 진행됐다. 시험은 1차 객관식, 2차 주관식(단답형, 서술형)으로 나뉜다. 1·2차 시험을 합격하면 손해평가사 자격이 주어진다. 1차(3개 과목)와 2차(2개 과목) 모두 일정 점수 이상을 얻어야 하는 절대평가 방식(과목 40점 이상과 전 과목 평균 60점 이상)이다. 

농식품부는 자격제도 운영 관련 사무를 농금원에, 자격검정 업무를 산업인력공단에 각각 위탁했다. 이에 따라 시험 문제 출제 및 채점 관련 사항은 산업인력공단이 맡고 있으며, 응시자들이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행정소송에 나선 응시자들, 왜?

이번 소송에 참여한 응시자들은 2020년도 제6회 손해평가사 2차 시험을 문제로 삼고 있다. 지난해 11월 2차 시험 결과가 발표된 이후 불합격 사실을 확인한 응시자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다른 수험생들과 정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시험 출제문제의 오류와 일관성 없는 채점 등을 확인했다는 것이 이들의 얘기다. 논란이 되는 지점은 크게 3가지다.

▲출제범위 오류=공단이 공고한 시험 범위가 아닌 곳에서 시험문제가 출제됐다는 것이 첫 번째다. 공단은 2020년 3월 손해평가사 시험의 시행계획을 공고하면서 2차 시험과목으로 ‘농작물재해보험 및 가축재해보험의 이론과 실무’, ‘농작물재해보험 및 가축재해보험 손해평가의 이론과 실무’(이하 통틀어 수험서 또는 업무방법서)를 출제 범위라고 알렸다. 보험계약자에게 제공되는, ‘약관’의 언급은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수험서 내용에 관여하는 농금원이 홈페이지에 시험 교재를 게시하면서 함께 첨부한 ‘약관’을 ‘첨부자료’로 기재해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약관’을 수험서의 보충자료 정도로만 인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시험에서는 출제범위로 명시하지 않은 ‘약관’을 기초로 풀어야 하는 문제들(11번, 16번)이 출제됐다. 박범규 씨는 “애초 시험 공고와 달리 약관 내용이 문제로 출제됐다는 점에서 신뢰성 문제가 지적된다”며 “특히 이뿐만 아니라 약관의 경우 업무방법서 내용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어 그럴 경우 업무방법서 내용대로 적는 것이 원칙이고 약관을 참고하라고 했기 때문에 정답 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출제문제 오류=이렇다보니 출제 문제 자체를 둘러싼 논란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손해평가 금액의 절사(잘라서 없앰) 여부에 대해 수험서(업무방법서)에 따를 경우 품목에 따라 절사 문구 유무 및 절사 단위가 다양해 일률적으로 절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9번 문항에서 절사하라는 지시 문구가 없었음에도, 절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5점 배점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7점을 감점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18번 문항 ‘고추의 종합위험 생산비보장방식’ 내용도 마찬가지. 사고일자 확인을 두고 업무방법서와 약관의 내용이 달라 하루 차이가 생긴다. 하지만 하루 차이에 따라 보험금과 손해평가액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 업무방법서는 사고일자 당일(초일)을 포함시키고 있는 반면 정답은 이를 반영하지 않은 ‘약관’ 내용으로 돼 있다. 

박범규 씨는 “NH손해보험사에서도 실무상 초일을 산입하고 있고 농금원 담당자도 그렇게 얘기했다”며 “초일 불산입 시에는 농어민인 계약자에 불리한 계약이 되기 때문에 농어업 종사자를 보호하고 농어업 경영의 안정과 생산성을 제고하는 법령의 입법 취지에도 반한다. 이는 명백한 출제 오류”라고 주장했다.

다른 오류도 있다. 농업수입보장보험의 경우 수확기 가격이 기준가격보다 낮을 때 발동하는데, 17번 문항은 수확기 가격이 기준가격보다 높게 명시돼 있어 출제 취지에 맞지 않는 내용이라는 지적이다.

▲채점 오류=소송에 나선 이들이 가장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부분이다. 주장을 요약하면, 동일한 답을 적어냈는데도 수험생마다 점수가 다르다는 것이다. 주관식 시험에서는 채점 시 부분 점수가 제공되는데, 부분 점수가 기준이나 원칙 없이 ‘들쭉날쭉’이어서 단순 과실 이상의 오채점으로 의심하고 있다. 

박범규 씨는 응시생 9명 대부분이 본인 답안을 열람해 서로 대조한 결과를 보여주며 “철저한 진상 조사가 필요하며, 조사 결과에 따라 억울한 피해는 구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송에 참여한 응시자들은 시험에서 일부 점수를 받지 못해 평균 60점을 획득하지 못해 불합격했고, 이 중 1명은 총점 1점 차이로 불합격했다. <박 씨가 공개한 ‘같은 답지를 제출한 인원의 배점 현황’ 자료 참조>

최근 시험 합격인원 566명
6번 치러진 시험 중 가장 많아
시험 ‘난이도 조절 실패’ 도마

출제·채점자 전문성 의문
관계기관 등 책임 회피 급급


◇매번 논란이 끊이지 않는 시험

제6회 손해평가사 시험 합격 인원은 566명이다. 지금까지 6번의 시험 중 가장 많은 합격자를 배출했다. 응시자도 많았지만, 시험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있다. 손해평가사 시험을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손해평가사 수험생들이 모여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앞선 2019년도 제5회 시험의 20번 문항 오류를 언급하며 문제 출제자의 자질을 의심하는 글도 있었다. 업무방법서(수험서) 내용의 오기와 오자를 비웃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전반적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눈에 띈다.

이번 소송에 참여한 이들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특히 전문성 부분을 강조했다.

박범규 씨는 “농어업재해보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을 하고 있어 부당한 점수가 부여됐다는 의심이 든다”며 “약관과 업무방법서가 부딪히는 내용들은 가급적 출제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런 검토를 하지 않는 것은 전문성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시험을 위한 시험이 아니라 농어업재해보험제도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도록 손해평가 업무의 전문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자격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채점 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국가기관의 적극 행정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박범규 씨는 “공단을 비롯해 농식품부, 농금원, 고용노동부, 청와대 국민청원 등에 문의했지만, 다들 책임을 회피하는 데에만 급급했다”면서 “이 부분이 손해평가사 시험 논란들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했고, 승소 여부를 떠나서 국가기간의 행태와 시험의 불공정성 문제를 알리기 위해 이번 소송에 나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 산업인력공단 홍보실 관계자는 “현재 행정소송이 진행 중으로, 행정소송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제 출제 및 채점 기준 등을 확인하기 위한 취지의 한국농어민신문 서면 질의에 대해서도 공단은 비공개 정보라는 이유를 들어 공개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5일 서면으로 알려왔다. 

공단은 답변서에서 “손해평가사 출제(채점)기준에 의거 공정하고 정확하게 출제(채점)했음을 알려 드린다”며 “내부 규정 등에 채점(출제) 기준, 채점위원(구성, 숫자) 위촉기준을 갖추고 있으나 채점(출제) 기준·채점위원 위촉기준 및 채점(출제) 프로세스는 공개될 경우 공정한 업무수행에 지장을 줄 수 있어 ‘공공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 제5호’에 따라 비공개하고 있는 사항”이라고 밝혔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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