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정부·국회가 직접 나서야 한다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심각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 내국 인력의 농업노동 기피로 고질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농촌에서 이제 ‘외국인 노동자’는 농업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주거 환경 등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연말 포천의 한 농장에서 발생한 캄보디아 출신 여성노동자의 사망은 이같은 논란을 다시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여론이 들끓자 고용노동부는 당장 1월 1일부터 외국인 노동자 숙소기준을 강화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농가에 대해서는 고용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하지만 농민들은 유예기간도 없이 갑작스레 시행된 조치인 데다 농촌이 처한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당장 농번기를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인구 감소·고령화·내국인 기피로
농촌 일손 공백 메우는 외국인
남성 경우 일당 15만원까지 뛰어  

◆외국인 노동자 고용, 싼 인건비 때문이 아니다=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현재 농가의 평균 가구원수는 2.2명이다. 전체 농가의 75.5%(76만 가구)가 1~2인 가구로, 대부분 농번기 등에 활용할 수 있는 가족노동력이 남아 있지 않다는 얘기다. 여기에 70대 이상인 농가경영주 비중은 45.8%. 심각한 고령화로 해마다 농가 수가 2만여호 씩 줄어들고 있어 이제 마을에도 일손을 내어줄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외부에서 내국인 인력을 고용하는 일도 쉽지 않다. 고된 육체노동을 기피하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데다, 소득이 불안정한 농가 입장에서 내국인이 만족할만한 고용 조건을 제시하기도 어려운 형편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 공백을 외국인 노동자들이 메우고 있다. 

실제 2017년 9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외국인 근로자 고용농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가장 큰 이유로 농가들은 ‘안정적인 고용력 확보(58.82%)’를 꼽았다. 외국인 근로자의 성실성이라고 응답한 농가(29.41%)가 뒤를 이었고, 내국인 대비 인건비 절감 효과를 꼽은 농가는 7.84%에 불과했다. 

이는 외국인 노동자 인건비(일당) 상승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코로나19로 일손 부족 문제가 더 심각했던 지난해 외국인 여성의 인건비는 보통 8만~9만원, 남성은 12만~15만원 선까지 상승, 내국인 여성 일당(6만~8만원)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E-9’ 농축산업 6400명
코로나로 400명 입국에 그쳐 
계절근로자는 전혀 못 들어와
다양한 유형 불법 고용 성행 중


◆외국인 노동자 고용 규모=현재 합법적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경로는 고용허가제(E-9)와 계절근로자제(C-4), 두 가지다.

2004년부터 시작된 고용허가제는 1년 이상 근무 하는 상용근로자가 대상이며 취업기간은 3년이다. 사용자가 요청할 경우 1년 10개월 연장이 가능하다. 연중 고용이 가능한 작물재배업, 시설원예, 축산 등에서 주로 활용한다. 2018년 12월 현재 고용허가제로 들어와 농업 부문에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 규모는 2만30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지난해 입국 예정이었던 ‘E-9 노동자’ 5만6000명 중 농축산업에 배정된 외국인 노동자는 6400명(11.4%)이었지만, 코로나로 400명이 들어오는데 그쳤다.

계절근로자제(C-4)는 기존의 고용허가제가 임시 및 일용근로자 부족 문제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2015년 첫 시범사업을 거쳐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체류기간은 3~5개월이며, 소관부서는 법무부지만 제도 시행에 따른 모든 책임은 기초지자체가 맡는다. 2015년 첫해 19명으로 시작, 2017년 1086명에서 2018년 2176명, 2019년 3612명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 들어오기로 했던 계절근로자 4532명은 한 명도 들어오지 못했다.

문제는 외국인 근로자 공급이 현장 수요에 미치지 못함에 따라 관련 통계에 포착되지 않는 다양한 유형의 불법적 고용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시기를 놓치면 한해 농사를 망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당장 일손이 급한 농민들은 불법 중개업체로부터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찾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숙박시설 없고 대중교통 불편 탓
대부분 농장주가 숙소 제공 중
현재 가설건축물 비중 70% 육박

유예기간 둔다해도 개선 어려워
한농연, 국회 차원의 논의 촉구


◆주거문제, 현실적 해법은=농업 관련 사업장은 지역적으로 산재해 있고, 지역 내에 마땅한 숙박시설이 없는 데다, 대중교통 부족으로 농촌 지역내 이동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가 개인적으로 숙박을 구해 출퇴근하기가 어려운 환경이다. 따라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대부분의 농가들은 근무장소 인근에 숙소를 마련, 직접 제공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실시한 농어업분야 주거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99% 이상이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소를 이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숙소 유형은 가설건축물(컨테이너, 조립식패널, 비닐하우스 내 가설 건축물)이 약 70%를 차지한다. 그 외 일반주택(25%), 고시원·오피스텔 등 공동 주거(2.6%) 등으로 조사됐다. 이 중 비닐하우스 내 가설 건축물이 12.7%이고, 자지단체에 주거시설로 미신고한 경우가 56.5%에 달한다.

가설 건축물이라 해도 냉·난방, 목욕·화장실, 채광 및 환기시설 등은 99%가 구비하고 있어 기본적인 생활여건은 마련되어 있었지만, 잠금장치가 없거나 소화기·화재경보기가 없는 경우도 일부 있어 사생활 보호나, 화재위험에 취약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최범진 대외협력 실장은 “고용노동부가 이번에 숙소기준을 강화하면서 주거시설로 신고필증을 받은 가설 건축물에 대해서는 예외조항을 뒀으나, 대다수 외국인 근로자 숙소시설이 농지에 축조된 데다 사전에 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미허가 시설임을 고려할 때, 현행대로라면 기존 숙소를 헐고 농지 전용 후에 가설 건축물 축조 신고를 하고 나서 다시 숙소를 지어야 하는 상황으로 농가 입장에서는 전혀 실효성이 없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최근 고용노동부가 농업계의 반발을 고려해 6개월~1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유예기간을 둔다고 해도 그 기간내 미허가 숙소를 양성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본래 고용허가를 취득한 농가에 대해서는 필수시설에 대한 보완을 전제로 기존 숙소를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재 한농연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찾아 국회 차원의 공개적인 논의를 촉구하고 있다. 최 실장은 “농업계가 외국인 숙소기준 강화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정책이라는 게 양면성이 있는 만큼 정책을 밀어붙이기 전에 농가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지 않냐”면서 “국회가 관계부처는 물론 이해당사자들을 다 모아 공개적으로 논의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


■전문가 의견은
“자극적·선정적 방식 접근농업계 매도 분위기 경계해야”

농촌 현실·농민 목소리 배제 심각
외국인 공공파견제 도입 검토 등
농업 노동력 문제 종합적 접근을


전문가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권·인권 차원에서 이번 기회에 열악한 숙소 문제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면서도 “개별 농장주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중앙정부나 지자체 등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관련 이슈를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방식으로 접근, 정작 농촌의 현실과 농민들의 목소리는 배제한 채 농업계 전체를 매도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농촌사회학 연구자로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에 천착해 온 정숙정 박사는 “최근의 논란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제일 컸다”는 말부터 꺼냈다. 정 박사는 “외국인 노동자 인권문제를 다루는 분들은 이게 집이냐, 하시지만 정작 농촌에 가보면 많은 농민들이 농막이나 컨테이너 등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고, 그보다 더 못한 집에서 고령의 빈곤노인들이 살고 있다”면서 “정작 그렇게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 살고 있는 농민들에 대해서는 평소 아무 관심도 없던 언론들이 너무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문제를 다루는 것 같아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이 연일 떠드는 가림막만 쳐놓은 화장실 문제의 경우에도 사실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들판에서 일하는 여성농민이라면 누구나 겪고 있는 문제지만 그동안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문제 아니냐”면서 “어쨌든 문제가 불거진 이상 이번 일을 계기로 주거시설 개선에 나서되, 정말 열악하기 짝이 없는 고령농민들의 주거 환경 문제도 같이 봤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덧붙여 그는 “지난해 코로나 이후 인력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면서 많은 농민들이 친인척을 총동원하거나, 자가 노동시간을 늘려 자기착취를 하거나, 그마저 어려우면 농사 규모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면서 “농촌의 맥락에서 농업노동력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보다 근본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혜경 배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외국인 근로자 숙소 문제는 사실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던 문제로, 관련 지침이 점점 엄격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자꾸 망설이기보다는 이번 기회에 해결 방안을 찾는 게 맞다”면서 “한집 한집 다 따로따로 하지 말고, 지자체나 농협 등 공공기관 차원에서 머리를 맞대고 각 지역마다 지역별 특성에 맞게 공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지난해 농촌의 외국 인력 공급 현황을 살펴보니, 고용허가제와 계절근로자제도가 운영되고 있음에도 불법 인력 중개에 의존한 불법체류자 고용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었다”면서 “이는 기존 외국인력 공급체계가 초단기 인력을 원하는 농가의 수요를 충당하는데 한계가 있고, 영세 소농의 입장에서 근로계약 당사자에게 주어지는 법적 책임이나 숙소제공 의무 등도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라면서 공공기관 책임 하에 초단기 파견근로제 도입 등을 검토해볼 것을 제안했다. 

외국인 공공파견제 검토는 한농연의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최범진 실장은 “지자체나 농협, 또는 공공기관이 외국인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 농가에 파견하는 형태의 공공파견제 도입과 연계해 읍·면·동을 중심으로 한 기숙사나 복지회관 건립이 대안이 될 수 있다”면서 “외국인 근로자에게 안정적인 근로·주거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선 개별 농가뿐만 아니라 공적 영역의 책임과 역할도 확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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