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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정책 3.0시대, 정책의 속도가 아니라 방향에 주목해야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

[한국농어민신문]

지역 내 다양한 그룹 이해·고민 바탕
정책분야 간 통합적 접근 이뤄져야
정부 의존하는 시행착오 되풀이 안돼

2~3개월 전 ○○군 농촌공간 전략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컨설팅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농림축산식품부 농촌협약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주민설문조사 시 표본규모를 읍면 인구규모에 따라 1~5% 내외로 설정하되, 읍은 최소한 100개, 면은 50개 이상의 표본을 확보하면 되는데, 당신이 주장하는 다양한 주민들의 의견수렴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냐는 내용이었다.

나는 최소 읍은 100개 설문, 면은 50개 설문만 확보하면 기본적인 의견수렴이 이뤄진 것으로 본다는 내용이 농림축산식품부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에 놀랐다. 며칠 후 내가 참여하고 있는 ○○광역계획지원단 회의에서 위원들에게 이런 내용을 알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광역지자체 담당자는 물론 참여위원 모두 ‘금시초문’이라며, “농촌 현실에 맞지 않는 그런 가이드라인이 어디 있냐”는 반응을 보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어떠한 의도에서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작성했는지 모르겠지만, 대다수 지자체와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컨설팅회사에서는 해당 읍면 이장단과 기관단체장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하면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수치이고, 지금까지 추진되어온 중심지활성화사업 또는 기초생활거점육성사업 기본계획 수립 시 설문조사와 큰 차이가 없다고 느끼고 있다. 오히려 중심지활성화사업이나 기초생활거점육성사업 기본계획은 배후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해서 면지역에서도 100~200부씩 설문조사를 실시하던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일이 수월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2006년 OECD 회원국들은 새로운 농촌패러다임으로 농촌정책 3.0을 제시했다. 농촌정책 3.0의 목적은 기존 농촌정책 패러다임인 도시지역과의 형평성 또는 산업으로서 경쟁력 확보가 아니라, 사회적·경제적·환경적 조화와 통합적 발전을 목표로 한다. 농촌정책 3.0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내용이 두 가지인데 그 첫 번째는 ‘주체’이다. 과거 중앙정부 또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소수의 리더그룹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면, 농촌정책 3.0은 공공부문 간 거버넌스, 기업과 시민사회 등 농촌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 간 거버넌스를 핵심 주체로 상정하고 있다.

OECD 농촌정책 3.0의 두 번째 특징은 정책적 접근방식이다. 과거 농촌정책은 중앙정부 주도의 하향식 정책추진, 또는 지역별 추진전략에 따른 형식적 상향식 추진방식이었다면, 농촌정책 3.0은 다양한 정책분야 간 통합적 접근을 강조한다. 농촌정책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정책분야를 포괄할 수밖에 없다. 농촌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기초생활기반(보건의료, 교육, 문화, 복지 등) 구축, 농업을 비롯한 다양한 산업인프라 확충과 일자리 창출, 생태·환경의 보전과 유지 등 농촌사회가 당면한 과제는 다양한 정책분야 간 통합적 접근이 불가피한 이유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최근 중점사업으로 추진 중인 ‘농촌협약 설명회(2020년 10월)’ 자료에 따르면, 자치분권 강화로 읍·면 소재지와 함께 정주생활권을 구성하는 배후마을 정책기능이 지방으로 이양됨에 따라 새로운 정책 거버넌스가 요구되고, 농촌 공간에 대한 종합적 계획과의 연계성 없이 개별 사업단위의 투자가 반복되면서 농촌정책의 성과목표 달성에 한계가 있어 사업간 연계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려는 범정부 차원의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농촌공간 전략계획 수립 가이드라인에서는 시군은 전략계획 및 농촌생활권 활성화계획의 수립 및 이행을 위한 전담부서를 설치하여야 하며, 이를 지원할 전문자문단을 위촉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농촌협약의 주요 의사결정기구인 농촌협약위원회는 시군단위에서 관련 부서, 관련 전문가, 지역주민 및 지역공동체, 중간지원조직 등이 참여주체로 되어 있다. 농촌협약에서 외부 전문가의 역할은 강조하는 반면, 읍면 농촌사회의 주체인 주민들의 참여와 다양한 주체 간 거버넌스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부분이다.

최근 한 인터뷰 기사에서 20여년간 농촌공간 계획 수립에 참여하고 있는 컨설팅회사 대표는 “스스로 잘못 생각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농촌 지역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관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라며, “사업 공고가 나고 신청을 하면 3개월 안에 추진위원회를 급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지역사회 내에 다양한 그룹들의 충분한 이해나 고민을 바탕으로 해서 기본계획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그렇다 보니 사업추진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당연히 지역 내 갈등이 격화될 수밖에 없었다”고 반성했다.

그동안 수많은 농촌정책 추진과정에서 지자체와 컨설팅회사, 그리고 외부 전문가그룹까지 중앙정부의 가이드라인에 의존하여 평가하고 사업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지난 20여 년간 수많은 예산이 투입된 농촌정책사업에 대한 뒤늦은 반성은 치열한 삶의 현장을 버텨내고 있는 농촌주민들에게는 그저 공허할 따름이다. 2021년 새롭게 추진되는 농촌정책이 과거와 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책의 속도가 아니라, 정책이 담고 있는 방향성을 정확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광역과 기초 지자체, 사업을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과 컨설팅회사, 그리고 주민까지 정책의 방향성을 보고 다음 흐름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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