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현장에 가보니

[한국농어민신문 이장희·백종운·조성제 기자]

경기도 포천의 한 농가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고용노동부가 ‘농어업 분야 외국인 근로자 숙소기준 강화’ 방침을 내놓은 가운데, 농업현장에서는 농촌의 현실을 외면한 “전형적 탁상행정”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 기준을 따르자면 외국인 근로자 고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농가가 속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일손 부족이 심각하고, 이로 인해 인건비도 계속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유예기간도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의 행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이에 외국인 노동자의 숙소 문제를 둘러싼 현장의 목소리와 해법을 2회에 나눠 살펴본다.
 

안성시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노동자 네팔 출신 라이다누 씨가 농장 내 마련된 숙소에서 주거환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성시 일죽면 시설채소농가 

네팔 출신 여성 라이다누 씨
8년째 시설채소 농장서 일해
숙소에 에어컨·난방 등 구비
“생활하는데 부족함 없어”

“이곳 숙소 생활에 너무 만족한다. 냉·난방이 잘되고 화장실과 주방시설도 최고다. 특히 농촌 시골인데도 와이파이 인터넷이 잘 터져 떨어진 가족들과 수시로 안부를 전할 수 있는 게 무엇보다 좋다.”

경기 안성시 일죽면의 한 시설채소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네팔 출신의 라이다누(여·37) 씨. 그녀는 재입국 특례(성실근로자) 혜택을 받아 올해로 8년째 이곳 농장에서만 일하고 있다.

라이다누 씨는 8년 전 처음 농장에 왔을 때 숙소를 보고 놀랐다고 한다.

“비록 비닐하우스 내 숙소지만 너무 깔끔하고 에어컨과 난방장치는 물론 세탁기, 냉장고, 전기밥솥 등의 전자제품과 수세식 화장실 등의 주거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뿌듯했다”며 “지금도 부족함 없이 편안하게 지내 다른 곳의 일터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 숙소 개선책은 ‘청천벽력’
농장 주변 방 없고 주거비 부담

“일부만 보고 악덕으로 몰아가”
농장주도 불합리 대책 ‘비난’

그런 그녀에게 한국 정부의 농장 내 비닐하우스 숙소 개선대책은 청천벽력이었다.

“숙소 바로 앞이 농장인데 다른 곳에 방을 마련하고 출퇴근 하려면 방값과 교통비 등도 부담되고 불편할 것이다. 더욱이 농장 주변에는 방도 없어 멀리 떨어진 시내까지 나가야 하고 건물 주인이 임대도 안준다. 농장 숙소에서 잘 살면서 일하고, 번 돈으로 네팔 가족들을 챙기고 있는데 이곳에 거주하지 못하면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이곳 농장 주변에는 원룸이나 다세대 주택은 찾기 어려웠다. 2km 이상 떨어진 시내에 임대할 만한 주택은 있었지만 건물주가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방을 임대해 주지 않는다고 한다. 또 출·퇴근길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신원보증을 한 농장주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일죽면의 한 원룸 건물주는 “한 명이 산다고 계약한 후 여러 명이 살거나, 음식과 생활 방식이 다르다 보니 기름때 끼고 청소관리가 엉망이라 외국인 노동자에게 임대를 안준다. 이곳뿐만 아니라 어딜 가나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농장주 김흥영(60) 씨는 “농촌에는 외국인 노동자 없이 농사짓기 힘들다.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비날하우스 내 26.4㎡(8평)의 조립식 패널로 숙소를 만들고, 각종 주거시설은 물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화재감지기와 소화기 등도 다 비치해 놓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들의 이탈 방지를 위해 성심성의껏 숙소를 관리하고 살피며 가족처럼 대해 주고 함께 일하고 있다. 애초에 고용노동부에서도 숙소 내 충분한 주거환경 시설을 갖추지 않으면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은 무시한 채 일부 상황만 보고 전체 농가들을 악덕 농장주로 몰아가는 정부의 안일한 시각과 불합리한 대책에 억장이 무너진다”고 비난했다.

안성=이장희 기자 leejh@agrinet.co.kr

 

인근 모텔 공동숙소로 활용 숙식문제 해결 주목

공동숙박 시설을 마련하기 전에 외국인 계절노동자들이 사용하던 숙소가 지금은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춘천시 우두동·신북읍 일대 

5개월 가량 고용 계절근로자
허가·건축비 쓰는 건 ‘비효율’

지인 운영 모텔에 숙소 만들고
객실 주변 공동주방도 제공
근로자 부담은 한 달 37만원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과 신북읍 일대 농가들은 인근 모텔을 활용해 공동숙박시설을 마련,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식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시내와 인접해 있는 이 지역은 중심지에서 사방으로 자전거로 20분 이내에 하우스들이 집중돼 있어 접근성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외국인 노동자 숙소문제가 가시화되기 이전인 2017년부터 춘천시 농업기술센터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숙소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농업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태조사를 하던 중 이 방안을 찾았다. 숙소는 농업인의 지인이 운영하는 객실 15개를 갖춘 모텔을 이용해 객실 크기에 따라 객실 당 2∼4인까지 이용하고, 주변에 공동주방을 제공했다.

보통 4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 곳을 이용했으며, 숙소 제공과 아침과 저녁에 먹는 식재료를 공급하는 조건으로 외국인 근로자가 부담하는 금액은 30일에 37만원이다. 이렇게 금액을 산정한 이유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농장주가 1인당 최저임금 185만원을 지급하고 숙식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임금의 20%를 근로자로부터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 숙박시설에 대해 농장주와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체로 만족한다는 평가를 내렸다. 노동자들은 다른 나라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을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으며 식사도 자기 방식으로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평가했다. 농장주들도 당시 5개월 정도를 고용하는데 허가비용과 건축비용 등 3000만∼5000만원을 들여 숙소를 마련하고 식사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만들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최근에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 숙소 문제를 현장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현실적으로 마련하자 이곳 농업인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농업의 특성상 농사철에는 대부분의 우리나라 농업인들도 하우스 내에 마련된 시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바쁘게 일하는데 현장의 상황은 무시한 채 획일적으로 규정을 정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업인들은 “우리도 정부가 정한 규정을 충족하지 못하는 집에서 사는 사람이 많다” 며 “농어촌 인력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데, 정부가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외면하고 무리한 숙소규정을 정해 농업인들을 비인권적인 사람들로 몰아가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특히 농장주들은 “정부의 조치가 있기 전부터 여러 노력을 통해 최소한의 접점을 찾아왔다”며 “정부는 제재를 위한 규정을 만든다는 생각을 버리고 농어촌 인력난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국내 배정된 외국인 계절근로자 4523명 중 강원도는 43%인 2173명을 배정 받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단 한명도 입국하지는 못했다.

춘천=백종운 기자  baekjw@agrinet.co.kr


“농장주도 농막서 숙박규제 땐 농사짓지 말란 것”

경북 청도군 청도읍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 시설 딸기농사를 짓는 이모 씨.

 청도군 청도읍 시설딸기농가 

“현실적 대책 마련할 때까지
가설건축물 주거시설 인정을”


“농부가 하우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시설 과채류 농사의 특성상 농장 바로 인근에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숙박시설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서 몇 년 전 수세식 화장실과 샤워시설 등 필수시설을 갖춘 패널 형식의 가설건축물 형태로 소규모 농막을 마련했는데, 정부에서 다른 대안도 없이 이에 대한 규제에 나선다고 하면 우리 보고 농사짓지 말라는 것과 같습니다.”

경북 청도군 청도읍에서 시설 딸기농사 3000여 평을 짓고 있는 이모씨. 이씨는 현재 베트남 출신 외국인 노동자 2명을 영농작업에 상시 고용하고 있다.

이 씨는 최근 고용당국이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소로 이용되는 농지에 건립된 가설건축물에 대한 규제 방침을 밝힘에 따라 이들에 대한 숙소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장기적으로 외국인 인력을 더 이상 확보하지 못해 영농에 막대한 차질이 우려된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 씨에 따르면 시설 과채류는 이른 새벽부터 수확 등을 위해 영농 종사자가 농작업에 투입 되어야 되기 때문에 대다수 농장주들도 영농철에는 농막에 마련된 가설건축물에서 숙박을 하고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외국인 노동자도 농작업 투입 접근성 때문에 그동안 정부에서 농장에 마련된 6평 이하의 휴게시설은 농막으로 인정해주고 있어 그 기준에 맞춰 5평 정도 규모로 수세식 화장실 시설과 샤워시설, 세탁기, 인터넷 시설 등 사는데 필요한 필수시설과 집기 등을 갖춰왔다는 설명이다.

이 씨는 “코로나19로 외국인 입국이 거의 없어 국내에서 이용 가능한 외국인 근로자의 인건비가 대폭 올랐지만 그마저도 쉽게 구하기가 힘든 상황이라 농장에 일할 사람을 데려오려면 그들의 요구조건을 다 들어줘야 해 농장주가 을(乙)이 된 상황이다”며 “여기에 정부마저 외국인 노동자 숙소 개선을 강행하고 있어 농민들에게는 이중고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이 씨는 “숙소기준을 강화하게 되면 농사규모를 절반으로 줄이던지 농사를 포기해야 할 상황인데 큰 비용을 들여 숙소를 개선해도 비용이 증가된 부분을 농산물 가격에 반영해 농산물 값을 올릴 수도 없지 않느냐”며 “숙소 문제로 향후 외국인 근로자 1인당 한 달에 30~40만원의 비용이 더 발생할 경우 농장운영에 막대한 차질이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또한 이 씨는 “시설 농사를 짓는 사람은 가까운 곳에서 숙박하면서 농사지으러 나와야 하는데 멀리 거주하는 외국인 인력을 농장주가 일일이 출퇴근 시켜주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더군다나 읍·면 단위의 농촌 지역에는 도시와 달리 잘 갖춰진 원룸단지가 없어 농장 인근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집을 별도로 구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어 이 씨는 “영세농을 위한 외국인 노동자 공공파견제 도입과 영농 종사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공공 기숙사 시설 등을 마련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농촌 인력수급을 위한 가장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당장 그런 방안이 현실화 될 수는 없는 상황에서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고 제도부터 강화해서 농민들을 궁지로 내모는 정책을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인력 수급을 위한 현실적 대책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기존에 농가에서 운영 중인 필수시설을 갖춘 가설건축물을 주거시설로 인정해 주는 것이 외국인 노동자를 영농에 종사하게 하는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또한 농촌에 버려진 빈집 등을 외국인 노동자들 숙소로 개조해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제도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도 추가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청도=조성제 기자 ch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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