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 ‘농어업회의소법 제정 전문가 좌담회’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지난 8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농어업회의소법 제정 전문가 좌담회’를 열었다.

‘농어업회의소’ 법제화 논의가 빨라지고 있다. 그동안 “여건 미성숙” 등을 이유로 미온적 태도를 보여 왔던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가 최근 법안 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인 이개호(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식품부의 의견이 반영된 ‘농어업회의소법’ 제정안을 발의한데 이어, 지난 8일에는 농식품부가 직접 ‘농어업회의소법 제정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 주요 쟁점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이날 참석한 전문가들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던 ‘옥상옥·관변화’ 우려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지난 10년간 축적된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농어업회의소가 현장 농어민들의 의견을 대의하는 공적기구로 자리잡을 수 있는 방안을 공유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1998년 법제화 시도 첫 실패
19·20대 국회서도 번번이 무산
21대서 여야 총 4건 재발의
미온적이던 정부도 적극 나서

◆농어업회의소법 추진경과=농어업회의소 법제화가 처음 시도된 것은 국민의 정부 때인 1998년이다. 당시 법안을 마련해 공청회까지 열었지만, 농업계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무산됐다. 중앙단위가 주도하는 하향식 조직화가 실패로 끝나자, 이후 시·군에서부터 상향식으로 추진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었고, 농식품부는 2010년부터 11년째 시·군 공모를 통한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현재 설립돼 운영되고 있는 회의소는 17개이며, 23개 지자체에서 회의소 설립을 추진 중에 있다.

국회를 중심으로 입법 논의도 꾸준히 이어졌다. 19대 국회 때는 박민수·신성범 의원이, 20대 국회 때는 김현권·이완영·손금주 의원이 농어업회의소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여건 미성숙, 옥상옥, 관변화” 우려 등이 제기되며 번번이 무산됐다. 21대 국회 들어 다시 제출된 법안은 모두 4건.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20.6)을 시작으로 국민의힘 홍문표 의원(’20.11),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20.12)과 이개호 의원(’21.1) 등이 각각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4개 법안 비교=농어업회의소 조직 구성과 설립요건, 회원 구성 등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유사하나, 설립인가·사업범위·경비지원 등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먼저 ‘기초·광역·전국회의소’ 설립요건을 보면, 기초회의소의 경우 신정훈·홍문표·위성곤 의원안은 ‘500명 이상’이면 설립이 가능하지만, 이개호 의원안은 ‘1000명 이상’으로 문턱을 높였다. 전국회의소의 경우에도 신정훈 의원안은 ‘기초·광역 20개 이상’, 홍문표·위성곤 의원안은 ‘기초·광역 40개 이상’이지만, 이개호 의원안은 ‘기초·광역 1/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대표성 확보를 위한 것일 수 있지만 설립 자체를 어렵게 할 수도 있는 만큼 농촌의 인구추세를 고려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업범위를 가장 폭넓게 규정한 것은 신정훈 의원안으로, 정책자문건의, 농지이용, 증명·검사 등 15개 사업이 명시됐다. 홍문표 의원안은 정책 자문·건의 등 7개, 위성곤 의원안은 정책자문·건의, 삶의 질 향상 및 복리증진 등 8개, 이개호 의원안은 정책과정 참여 등 8개 사업을 담았다. 경비 지원의 경우 신정훈·홍문표·위성곤 의원안은 국가 및 지자체가 지원하도록 되어 있으나, 이개호 의원안은 지자체 경비 지원만 명시했다.

농식품부 최정록 농촌정책과장은 “농어업회의소법 법제화와 함께 개별 법령에 업무위탁 근거를 마련한 후, 업무수행 역량이 갖춰진 회의소를 중심으로 국가 및 지자체 업무 위탁을 추진할 계획”이라면서 “회의소의 안정적인 설립·운영 지원을 위해 중앙단위추진위원회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0여년 시범사업 토대로
축적된 성공·실패 경험 공유
농민의 목소리, 농정에 반영할 
한국형 회의소 모델 고민해야

◆전문가들의 의견은=2012년부터 경남 거창군농업회의소 사무국장으로 활동해왔던 김훈규 경남농어업정책센터장은 “자치와 분권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이어졌지만, 여전히 지방의 농정거버넌스는 행정으로부터 위촉받은 일부 농업계 인사들이 위원회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면서 “농업회의소라는 추진체계를 통해 현장 농민의 의견이 광범위하게 수렴되고, 그 의견이 실제 농정에 반영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일각에서 여전히 여건의 미성숙을 이야기하지만 지금의 농촌 실정을 보면 설립여건은 해마다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지난 10년간 시범사업을 추진하면서 현장에 축적된 수많은 성공사례와 실패사례를 바탕으로 한국형 회의소 모델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농업회의소가 왜 필요한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나 정보, 관점이 공유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들이 많다”면서 “오해의 거품을 먼저 걷어내야 합리적인 논의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지방농정심의회가 있어 주민들의 의견을 듣도록 되어있지만 대부분의 심의회는 형식적 회의에 그칠 뿐 거버넌스로 작동하지 않는다”면서 “농업회의소는 아무도 대변해주지 않는 보통의 농민들의 의견이 지방농정에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자는 것”이라며 평창군 농업회의소를 예로 들었다. ‘8년간 농정관련 회의건수 150회, 누적 참석인원 4500명, 회의 등을 통해 수집한 정책 건의안 800여 건, 분과위원회를 통해 공식 제안한 건의안 300건, 그 중 농정에 반영된 제안 108건.’ 그는 “이같은 수치는 평창군 농업회의소가 그동안 농업인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공적인 대의기구로서 충분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옥상옥’ 우려에 대해 “정말 기초지자체 수준에서 집을 하나 더 올릴 옥이 존재하는가”라고 묻고, 정부 지원을 받으니 관변화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농업회의소는 공적인 기구이고, 공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운영경비를 지자체 또는 정부가 조달하는 것은 매우 정당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최상한 자치분권위원회 부위원장은 “행안부가 전국 626개 읍면동에서 시범사업으로 실시 중인 주민자치회의 경우, 전담 공무원의 민간개방형 직위 채용이 가능하고, 사무국장과 그에 대한 인건비, 운영비 등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 “행안부와 비교하면 농업계의 논의가 많이 뒤처져 있다. 농어업회의소와 주민자치회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법안 심사과정에서 농업계의 의견을 충분한 개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