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에게 재난지원금을… <1> 겨울수박 농가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2800만원 받았던 하우스 7동 포전매매가가 단돈 180만원에 거래된 이후 이봉년 씨(사진) 남편은 술로 밤을 지새우며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났다. 이 씨는 현재 하우스를 지키며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아픔을 감내하고 있다.

남편 상을 치른 지 일주일도 안 된 어느 날, 이웃 주민과 함께 기자가 찾아왔다. 말할 기력도 없을 만큼 지치고 아팠지만, 그동안 담아두기만 했던 억울하고 답답한 속마음이라도 알려야 할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선 돌아보고 싶지 않은 날들도 떠올려야 했다. 지난달 초 유통인이 찾아와 1년 전 2800만원에 거래된 수박 하우스 7동을 180만원밖에 줄 수 없다고 했다. 코로나19로 겨울수박 주 출하처인 웨딩홀, 뷔페, 유흥업소, 행사장이 문을 닫는 등 수요처가 막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았다. 가장인 남편은 심정이 어땠을까. 남편은 혼자 술을 마시며 아픔을 삭혔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했다. 평소에도 일에 치여 성한 몸은 아니었지만 회복되는 중이었던 남편은 이번 일로 몸이 완전히 망가졌고 이제 쉰아홉, 한창 일할 처지에 결국 병원에 입원, 하루 만에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다. 

너무 억울했다. TV에서 유흥업소를 비롯해 자영업자, 소상공인에 대한 재난지원금 지원 등 여러 대책을 강구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남편과 나는 울분을 삭힐 수밖에 없었다. 오늘에서야 가슴 속에서만 외쳤던 질문을 기자에게 토해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까. 우리 농민은 정부에 어떤 존재입니까.”
 
▶관련기사 (함안 수박단지 르포) 

 

주 수요처 막혀 ‘재난 직격탄’
거래가 평년비 1/20로 뚝
다음작기 농사 가능할까 막막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하면서
농가 고통은 외면 “억장 무너져”
산지 상황 최악 치닫고 있지만
농정당국자 한 명도 안 찾아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산지에서 정부 ‘재난지원금’ 지원 차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화원은 재난지원금을 받으면서 화훼 농가는 받을 수 없고, 유흥업소는 지원되면서 수박 산지는 나 몰라라 하는 정부 대책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막심한 피해를 입은 농가들은 코로나19가 소상공인 못지않게 농민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큰 ‘재난’이었다고 토로한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배달 업종은 성하고, 오프라인이나 외식업체 등은 위축되는 등 업종별로 희비가 갈리듯 농산물에서도 품목, 부류별로 큰 차이가 난다는 것. 특히 겨울수박, 화훼, 체험 농가 등은 어느 업종보다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실제 판로가 꽉 막힌 겨울수박은 한때 밭떼기거래가 평년의 20분의 1밖에 안 되는 수준에서 거래가가 형성됐고, 조금 회복된 이후에도 평년의 4분의 1 수준으로 생산비에도 한참 못 미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비대면 졸업식과 결혼식 축소 등 행사가 줄며 꽃 소비가 급감한 화훼농가의 고통도 출구 없이 이어지고 있다. 산지에선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지경으로 다음 작기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푸념 섞인 하소연도 나오고 있다.  

이들 농가엔 어느 업종보다 ‘재난지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 지원은 농가를 외면하고 있다. 언론보도를 통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재난지원금 지원 소식을 접하고, 또 그들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달될 때 농가들의 상처는 더 아리다.

현장에선 농림축산식품부의 무관심한 행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속에 산지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지만 농식품부의 시선은 산지를 향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함안 겨울수박 단지에서 만난 한 농민은 “상황이 이런데도 현장을 찾은 농정당국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니 대책이 나올 리 만무하지 않나. 언론도 관심이 없긴 마찬가지”라면서 “정말 숨 쉬기도 힘든 상황인데, 이 아픔을 누구에게 호소하고 대책 마련을 요구해야하는지, 너무나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