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모 전북연구원 산업경제연구부장

[한국농어민신문]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지금은 고인이 된 故 김주혁 배우가 주연을 한 2004년에 개봉한 영화입니다. 시골 마을에서 서른 살의 반장이 동네의 허접한(?) 일을 도맡아서 하며 일어나는 일을 그린 코미디 로맨스입니다.


생활돌봄에 주목하는 시대

요즘 동네의 궂은일을 찾아서 무엇이든지 척척 알아서 잘하는 ‘홍반장’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경남 사천시 동서동에서는 지역사회보장협의회 돌봄분과위원들로 구성된 봉사단이 ‘우리동네 홍반장’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동네의 홀몸 어르신을 매월 한 번 직접 찾아뵙고, 쌀과 김치 등을 전달하고 안부를 확인하는 말벗 서비스 등의 봉사활동도 펼치고 있습니다. 돌봄이 필요한 대상자에게 생활 속 안전 지킴이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19로 동네 회관에 모이기조차 어려운 현실에서, 그야말로 ‘밤새 안녕하신지, 생활은 잘 하고 계신지’ 사회적으로 챙겨야 할 때입니다.

굳이 코로나19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농촌지역은 생활속에서 크고 작은 다양한 필요와 요구가 높습니다. 절대적인 복지 인프라가 부족하고 이를 보완할 시스템이 충분치 않아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충족 수요’는 돌봄과 의료 영역에서 공통되게 논의되어 온 주제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른바 ‘생활상의 돌봄’은 개인과 가족에게 전가되어 왔습니다. 최소한의 (수급)기준에 따라 최저 수준을 지원하는 공적 부조 방식으로는 한계가 큽니다. 이제는 공적 부조 방식의 사회복지 서비스가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사회가 적극 개입하여 ‘미충족 돌봄’을 채우기 위한 세밀한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농촌지역 생활돌봄, 왜 필요한가

농촌지역의 고령화율은 도시지역보다 2배 이상 높아, 농촌에만 약 146만명 이상의 어르신들(65세 이상)이 살고 계십니다. 이들 어르신 중에서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느끼는 잠재적인 돌봄 수요자는 약 40만명으로 추정됩니다. 그 중 22만명은 노인장기요양보험과 노인맞춤돌봄서비스 등 공적 돌봄 대상자입니다. 문제는 나머지 18만명입니다. 이분들은 신체기능과 인지기능이 경계상태에 있어 돌봄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공적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다문화 배경의 결혼 이민자와 귀농·귀촌자 등과 같은 ‘이주민’ 또한 지역사회의 관계망에서 상대적으로 배제되어 있습니다. 사회적 취약계층인 것입니다.

지역사회는 본질적으로 취약성이 있어 불완전한 개인들이 서로 협력하는 것을 의무화한 사회규범이 작동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민의 생활은 지역사회 전체가 담당’한다는 사회규범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는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회적 취약계층이 많고 상대적으로 사회적 배제의 어려움에 처한 농촌주민이 최소한의 생활돌봄을 받을 수 있는 공적 부조 방식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생활돌봄 방안’을 구상하고 실험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농촌지역 생활돌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관점에서 농촌지역 생활돌봄 방안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첫째, 농촌 생활돌봄 ‘대상을 확장’해야 합니다. 공적 부조 돌봄 서비스 전달체계가 포괄하지 못해 사각지대에 놓인 농촌주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정해야 하겠습니다. 둘째, 생활돌봄 ‘내용을 구체화’하여 정해야 하겠습니다. 받고 싶으나 받지 못하는 생활 서비스가 많습니다. 신변활동, 가사생활, 생활·정서지원 등의 돌봄 서비스 외에도 ‘말벗, 이동세탁, 장보기, 병원동행, 주택관리’ 등 미충족 돌봄 수요가 그것입니다. 셋째, 생활돌봄 ‘담당인력을 지역화’해야 합니다. 생활돌봄은 생활에서 체감하는 관계망이 높을 경우 수준과 효과는 달라집니다. 일정 자격을 갖춘 외부 전문인력이 맡는 공적 부조와 달라야 합니다. 넷째, 생활돌봄 ‘제공방식’을 혁신적으로 정해야 합니다. 개인이 맡기보다 주민공동체 조직(사회적경제 조직 등)이 담당할 때 사회자본과 역량도 커질 수 있습니다. 다섯째, 생활돌봄과 ‘청년 일자리’를 연계해야 합니다. 사회적경제 조직과 주민공동체 조직이 (귀농·귀촌)청년을 직접 고용하여 돌봄 사업·활동을 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이 그것입니다. 행정안전부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사업 등 관련 정책사업을 개편해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읍·면의 행정조직(주민자치센터)에 생활돌봄 수요에 대응하는 담당인력으로 (귀농·귀촌) 청년을 고용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를 거점으로 동네에서 생활돌봄을 담당할 활동가를 파트타임으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 1월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전망에서도 ‘농촌 공동체 돌봄’을 주요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농촌에 살기 때문’에 돌봄을 받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게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지역의 공동체 조직이 생활돌봄 주체가 되어 청년 일자리를 연계하는 방식의 정책제안에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최근 ‘홍반장’ 영화를 드라마로 리메이크한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농촌마을과 지역사회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 불편함을 해결’해주는 ‘우리 동네 홍반장’을 만드는 혁신적 정책 실험을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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