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겨울수박 농가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겨울수박이 무너졌어도, 또 빚내서 봄수박을 준비하는 게 우리 농민들입니다.” 함안 수박농민 김판준 씨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최근 정식한 봄수박 생육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입춘을 하루 앞둔 지난 2일, 기자가 찾은 국내 최대 겨울수박 단지인 경남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봄의 문턱에 들어서는 2월 초, 예년 같으면 겨울수박을 마무리 짓고 봄수박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로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쳐야하지만, 코로나19는 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가정용 소비가 이뤄지는 여름수박과 달리 겨울수박은 주 소비처가 뷔페를 비롯한 음식점과 유흥업소, 행사 등인데, 코로나19로 이곳 수요가 급감하자 매기가 끊기고 시세가 급락한 것. 여기에 정부의 무관심까지 더해져 봄으로 접어드는 2월 초 현재 수박농가들은 울분을 토하고 있다. 

“숨을 쉴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하우스 한 동에 400만~500만원하던 매매가가 20만~30만까지 떨어졌어요. 그냥 폐기 비용 지불한 겁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무엇을 했나요. 우리가 많은 것을 지원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소상공인 정도의 대우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1월 초 한 동 400만~500만원
한 달새 20만~30만원으로 폭락
‘사주기 운동’에 소폭 회복됐지만
생산비 350만원 턱 없이 모자라

뷔페·음식점·행사 등 주 소비처 
코로나 탓 수요 줄어 시세 급락

“40년 넘게 농사 이런 적 없어
자영업자 정도 대우는 해줘야”


겨울수박 농가의 어려움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한참 출하되던 1월 초엔 400만원에서 500만원에 거래되던 하우스 한 동의 매매가가 20만~30만원으로 급락했다. 최근 지역에서 수박 사주기 운동 등을 전개, 조금 회복됐다고 해도 여전히 80만~100만원 선으로 생산비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 채 출하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적어도 농가들은 겨울철이라는 특성상 하우스 1개 동당 생산비가 350만원 이상 든다고 추정한다. 

7동의 시설하우스 수박을 재배하는 김판준(68) 씨는 “겨울철 1기작 수박 출하를 마무리 짓고 막 봄철 수박 정식을 마쳤다. 겨울수박은 한 동당 300만원에서 400만원 정도 밑졌지만 그럼에도 밭을 놀릴 수 없어 빚을 내 봄수박을 정식했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만난 농가들은 정부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 

김 씨의 부인 주재흠(66) 씨는 “40년 넘게 농사지으면서 이런 적이 없었다. IMF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며 “TV에선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등이 힘들다고 재난지원금을 주고, 또 그들의 목소리도 생생히 전달해주는데, 우리 농민들에겐 그런 게 하나도 없어, 요즘엔 TV도 안 보게 된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하우스 7동을 180만원에 거래한 이봉년(59) 씨는 최근 남편을 떠나보낸 아픔까지 더해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봉년 씨는 “남편이 몸이 좋지 못했지만, 병원에서 회복되는 중이었다. 그런데 수박 값이 폭락하고 팔리지 않으니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결국 병원에 재입원해 하루 만인 지난주 월요일 유명을 달리했다”며 “하우스 한 동에 400만~500만원 하던 게 20만원 대로 떨어져도 가장이라고 티 한 번 제대로 안 내고 혼자 술로 삭혔다”고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씨는 “정말 숨을 못 쉴 지경이다. 농민은 이렇게 아파도 정부에선 조금도 알아주지 않아 너무 섭섭하고 억울하다”며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지 정부에 되묻고 싶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농가들을 더 아프게 하는 건 올해 작황이 상당히 좋아 고품위 수박이 출하되고 있다는 것. 더욱이 면적은 줄어들어 코로나19만 아니었으면 어느 해보다 높은 가격대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주재필 한국농업경영인 함안군연합회장은 “고령화에 인건비 상승, 인력 부족 등으로 매년 수박 면적이 줄어들고 있고, 올해 품위는 좋아 겨울수박을 기대하는 농가가 많았는데 코로나19로 값이 폭락해 버티기 힘든 지경”이라며 “월촌리는 웬만한 면단위보다 인구가 많아 550호에 1400여명 되며, 이 중 230호 정도가 수박 농사를 짓고 있는데 이 농가들 모두 한마디로 초상집 분위기”라고 현재 상황을 전했다. 

농가들은 정부에 많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처럼 적어도 농사를 이어갈 수 있을 정도의 정부 관심을 바라고 있다. 그래야 농사에서 손을 놓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 회장은 “월촌리는 함안 중에서도 수박 주산지로 유래가 200년이 넘는데 올해 사상 유례 없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정식조차 포기하는 농가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농가가 큰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하우스 한 동당 300만~400만원의 적자를 보고 있는데 적어도 10분의 1 정도는 지원해줘 어떻게든 농사는 지을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그는 끝으로 “수박 농가들이 생산량이 늘었다거나, 맛이 없다거나, 수급 조절에 실패했다는 등의 이유로 가격이 하락했으면 겸허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수박농가가 어찌할 수 없는 재난이자 재앙이었다”며 “국가에서 재난 피해를 본 농가에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처럼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 적어도 현장 조사 정도는 하며 농민 목소리를 들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매시장에도 수박 산지의 아픔은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 

김규효 가락시장 서울청과 경매사는 “농가, 아니 다른 직군을 포함해도 올겨울 가장 힘든 곳이 수박 산지인 것 같다. 웨딩홀, 호텔, 주점, 행사장이 문을 닫는 등 아예 수요처가 꽉 막혀 시세가 급락했다”며 “함안 지역 농가를 중심으로 종잣값도 못 받는 경우가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수박 담당 경매사로서 마음이 착잡하다”고 전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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