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진 중앙대 교수

[한국농어민신문]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 없지만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정책 투명성·신뢰성 더 높여야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을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말을 한다. 이는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각종 위원회가 많이 활용되고 때로는 과용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정부가 주요 정책을 수립하거나 개정하는 과정에서 각계각층에 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거나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들 간의 의견을 청취하고 반영함으로써 조금 더 나은 정책이 나온다는 측면에서 위원회의 의견수렴 과정은 매우 바람직한 절차라고 생각한다. 물론 정부의 모든 정책들이 위원회의 자문과정을 필요치는 않을 것이고 실제로 자문과정 없이 시행되는 정책도 적지 않겠지만,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일수록 자문회의가 많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은 정부·지자체 또는 공공기관 등에서 이 같은 다양한 의견수렴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청와대나 장관 또는 담당 공무원 몇 명이 주요 정책을 정무적으로 판단해 결정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나 지자체 또는 공공기관은 정책 발표 또는 시행하는 과정에서 정책의 시행 목표만을 발표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정책이 수립되게 된 배경과 과정에 대한 설명을 더욱 보완해야 한다. 정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어떻게 수렴하고 어떻게 결론 내서 시행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소상하게 알리고 설득하는 과정을 보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농림축산식품부 보도자료 중 ‘농식품부, 계란 등 축산물 수급안정 대책 추진’을 보면 대책 수립 배경과 함께 대책마련에 대한 방법만 안내됐을 뿐 어떠한 과정과 절차를 통해 수급안정 대책을 마련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해당 기관장이나 공무원들이 정책을 일방적으로 시행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혹자들은 민주주의 의결 체계를 다수결의 폭력이라고 부른다. 사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다수의 이익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여기서 제외된 소수를 배려하지 않으면 그것이 다수에 의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수에게 이 정책의 결정 과정과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고 구제책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최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으로 많은 산란계가 살처분되면서 계란가격이 폭등하고 있고, 이에 대한 대책 마련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실 공급부족으로 인한 가격급등을 막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수입란을 들여와 공급을 안정화 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고 예측했고 실제로 관세까지 면제돼 수입 계란이 들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계란 수입을 통한 가격 안정화 정책을 결정했고, 관련업계는 방역정책의 실패를 산업계에 떠넘긴다며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쌍방 간의 적극적인 대화가 더욱 필요하다. 왜냐하면 시급하게 계란 가격을 안정화하려면 농림축산식품부가 선택한 공급을 늘리는 것 이외에 다른 효과적인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마땅한 대안이 없는 사안을 놓고 대립할 것이 아니라 수입 계란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과정을 더욱 상세하게 설명하고 지원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

지금 전례 없는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서 정부가 시행하는 여러 가지 정책들 또한 국민들의 불안감과 불신이 그 어느 때 보다 커져 있는 상태이다. 백신접종 계획이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결정 등등 매일같이 주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주요 결정 사항 위주로 보고할 것이 아니라 누구와 어떤 여론 수렴과정과 어떤 자문과정을 거쳐서 의결하게 되었는지 더욱 더 소상하게 밝힘으로서 섣부른 정책결정이 아님을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최근 질병관리청은 백신 접종 계획과 관련하여 자세한 보도 자료를 배포했는데, 정책 결정 과정은 해외사례와 전문가 등과 긴밀하게 논의했다는 간략한 설명만이 포함되어 있다. 사실 이 보도 자료에서 예방 접종의 목표와 순서 등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맞다. 그러나 국민들은 왜 이렇게 순서와 절차가 결정되었고, 왜 이 백신이 결정되었는지 또는 누가 이 중요한 정책을 결정했는지 그 과정이 더 궁금할 수 있고, 이 부분이 명확하지 않을 때 논란의 시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정도의 주요한 사안이라면 적어도 충분한 지면을 할애해서 정책결정 과정에 대한 설명을 포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예컨대 해외사례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몇 건이며, 전문가와 의료계가 어디이고 몇 명이며 필요하다면 누구인지 등 조금은 더 상세할 설명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신뢰성이 높아진다면 정책의 신뢰성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 논란과 괴담 등이 유포되어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수년간 여러 자문회의 등에 참여한 경험에 의하면 정부나 지자체 또는 공공기관 등이 주요 정책을 섣부르게 독단적으로 시행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이 정부를 불신하는 이유는 소통의 문제가 가장 크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만약 정부가 단독으로 주요한 정책을 결정하거나 정무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 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각계각층의 소리를 경청하고 있다면 그 과정과 내용을 더 소상하게 알려 정책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일반 국민들 또한 요약된 언론기사 뿐만 아니라 보도자료도 참고 해주기를 희망한다. 언론에 배포된 보도자료는 담당 부서와 담당자의 이름과 연락처가 기재되어 있고, 그 보도 자료의 신뢰성에 대한 책임을 진다. 그러나 유튜브나 인터넷 괴담은 책임지는 이가 없다. 우리가 어느 자료를 더 신뢰해야할지는 자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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