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사업구조 개편, 진단과 과제 <중> 저조한 경제사업 성적표 무엇 때문인가

[한국농어민신문 이병성 기자]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가 2012년부터 9년 동안 시행됐지만, 매년 사업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서 평가 점수가 하락하는 실태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사업 결과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책임에 대한 언급도 실종돼 있는 상황이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 9년 동안 진행된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는 낮은 점수로 마무리됐다. 농식품부 평가결과 2019년 100점 만점에 농업경제 72.2점, 축산경제 64.1점에 그친 것이다. 처음 수립된 사업계획 자체가 현실적이지 못했던 보고서가 나올 정도로 첫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이같은 원인은 농협 내부적으로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와 함께 사업실패에 대한 책임회피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업평가 점수 매년 하락

농협 경제사업 평가점수 하락
농업경제 2013년 88.3점→ 
2019년 72.2점으로 떨어져
축산경제는 83.1→ 64.1점으로


농식품부의 농협 경제사업 평가점수가 매년 하락 추세를 보였다. 농업경제의 경우 2013년 88.3점에서 2019년 72.2점으로 떨어졌고, 축산경제도 같은 기간 83.1점에서 64.1점으로 추락한 것이다.

농식품부의 사업평가는 판매농협 실현(사업목표 달성 60점, 신규투자 추진실적 10점, 협동조합 원칙실현 10점)이 80점으로 가장 비중이 높고, 경제사업 활성화 목표관리(전략기획 이행, 생산성향상, 성과관리체계) 10점, 개선권고 사항(조직혁신, 유통지원자금, 주요사업 성과평가) 10점 등의 지표로 구성돼 있다. 이는 농협법 제161조 규정에 따른 것으로 농식품부가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한 ‘농협 경제사업평가협의회’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평가 점수가 하락한 원인은 농협 사업구조 개편의 궁극적 목적인 농축산물 책임판매 실적이 목표 대비 크게 모자라기 때문이다. 실제 연도별 사업목표는 2012년 25조4000억원에서 2020년 46조8000억원을 잡는 등 연차적으로 높여나간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실제 사업 실적은 2012년 24조3000억원, 2015년 25조5000억원, 2019년 27조7000억원 등으로 완만한 증가에 그쳤다. 이로 인해 사업목표 달성률도 2012년 95.6%, 2015년 73.3%, 2019년 62.2%로 매년 하락을 반복했다. 가장 많은 배수가 배정된 사업량을 끌어 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전국 지역농축협(회원조합)과 농민 조합원들이 사업구조 개편과 경제사업 활성화 성과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농식품부가 회원조합과 농민을 대상으로 사업구조개편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2018년 기준 회원조합들이 평가한 점수는 51.8점, 농민은 56.7점으로 매우 낮았다. 농업 현장에서 사업구조 개편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업구조 개편 성과내기 급급
시장 상황·실행 가능성 등 외면
체계적 계획 수립부터 어긋나

유통환경 변화 반영 못하고
과거방식만 고집 ‘시간 낭비’
계열사 사업경쟁력도 낮아 

천문학적 자금 투입 불구
‘사업 실패’ 평가 나오지만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아
농식품부도 농협도 뒷짐


◆현실 외면…예견된 결과

농협 경제사업 목표가 처음부터 현실을 감안하지 못한 ‘이상적인 수치’라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지난 2011년 국회예산정책처는 ‘농협 사업구조 개편의 예산상 쟁점’ 보고서에서 ‘농협의 과거 경제사업 실적 및 우리나라 농업생산액 규모와 비교해 물량계획 및 투자계획이 과다하게 산정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또 2020년 ‘농협 경제사업활성화 평가’ 보고서에서도 저조한 경제사업 활성화 성과에 대해 ‘사업목표를 설정할 당시 시장상황이나 실행가능성 등을 감안하지 않은 과다한 목표 수립과 계획된 사업의 지연’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농협의 경제사업 물량은 사업구조 개편 이전 2004~2011년 사이에 연평균 8.5% 성정한 데 비해 2012~2019년에는 1.9% 증가에 그친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학계 등 전문가들도 국회예산정책처와 같은 맥락의 진단을 내렸다.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2012년 사업구조 개편 1년차부터 시행 성과를 내야 했기 때문에 각 부문별 사업을 억지로 만들어 낸 측면이 있다”며 “부서별 또는 사업간 체계적인 계획이 수립되지 못했고 부문별로 투자가 획일적으로 분산되면서 사업목표가 할당되는 등 처음부터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성재 GS&J 시니어이코노미스트(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도 “농협이 세웠던 경제사업 계획은 이미 일반 사업체 등 기업들과 치열한 시장경쟁 구도 상태였다”며 “농협의 계획은 시장을 바꾸겠다는 것으로 기존의 방식으로 사업목표 달성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업여건 파악도 못했나

소비지 유통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과거 방식을 고집하다 시간만 낭비했던 사례도 지적된다. 대표적으로 소비지 대규모 유통매장을 확대 출점하는 방안이 사업구조 개편 수년 동안 검토됐던 것이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대형유통업체들은 포화된 대형마트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며 온라인 등으로 새로운 유통채널에 투자를 강화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농협은 내부적으로 대도시에 대규모 하나로마트 점포 여러 곳을 설치하는 계획을 추진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수년간 논의만 반복하다 끝내 계획을 백지화했는데, 그러는 사이 경쟁 상대인 유통업체들은 온라인유통 등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사실상 농협이 ‘낙오’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업 투자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된 사례도 있다.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양곡사업활성화의 경우 2012~2020년 5400억원의 투자 계획이 추진됐다. 이 과정에서 지역의 모 양곡업체에 400억원을 출자하는 방안이 검토됐었다. 농협경제지주가 잡곡 유통물량 확대를 현금출자 이유로 설명했지만, 안성에 위치한 양곡유통센터의 잡곡 중계 사업량에서 해당 업체와 거래비중이 당시 40% 정도를 점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현금 출자 없이도 충분한 거래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사례는 경제사업 활성화 계획이 체계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 같은 사례 외에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투자계획들이 발목을 잡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농협 계열사 사업실태 적신호

농협 경제사업의 손발 역할을 하는 농협경제지주 계열사들의 사업경쟁력이 낮고 전략도 미흡하다는 분석이다. 본보가 입수한 지난 2018년 농협중앙회의 경제지주 계열사 실태분석 내부 자료를 보니 유통자회사를 비롯해 농협홍삼, 농협식품, 농협무역, 농협양곡, 목우촌 등 대부분의 계열사들이 각 분야별 시장 대비 사업성과가 낮은 것으로 분류돼 있다. 유통자회사 5개사(하나로유통, 농협유통, 충북유통, 대전유통, 부산경남유통)의 경우 경쟁사 대비 원가 경쟁력이 낮은데다 점포 운영의 비효율성, 진부한 매장 형태 등의 문제가 노출됐다. 특히 5개 유통자사회가 각각의 사업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는 점도 효율저하 원인으로 지적됐다. 

또한 농협식품의 경우 농협 내부 사업 중첩과 시장 지향적 사업 전략이 부재한 것으로 진단됐고, 농협홍삼은 성장보다는 수익 중심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됐다. 농협양곡에 대해서는 양곡에 대한 전문성과 인프라가 미흡하고, 수탁 사업 모델로 인한 수익 증대 한계와 낮은 재정 자립도가 문제라는 판단이었다.

농기자재 사업에서 남해화학은 사업 규모는 크지만 효율성과 전문성이 떨어지는 조직 형태가 문제였다. 농협사료 또한 높은 인건비 대비 낮은 생산성과 현행 사업체계로는 시장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이처럼 농협경제지주의 계열사 대부분이 사업효율이 낮은 것으로 진단됐다. 경제사업 활성화에 상당한 제약이 따르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이에 대한 근본적 개선대책은 제시되지 않았다.

◆사업실패 책임 ‘오리무중’

농협중앙회는 사업구조 개편과 경제사업 활성화 이행계획을 농식품부와 체결하면서 추진방향으로 ‘사업의 전문화·효율화 및 경제사업 활성화를 통한 판매농협 구현’을 설정했다. 책임경영도 강화하는 농협 내부 규정도 도입했다.

하지만 전문성을 강화하고 사업 성과와 책임을 명확히 하겠다는 당초 방침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9년 동안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하고도 낮은 성과로 ‘실패’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농식품부와 농협에서는 사업책임에 대한 후속 조치가 없는 상태다.

양승룡 교수는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 사업이 2020년까지 1단계가 마무리됐지만, 사업 결과에 대한 문제의식이 실종됐고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며 “당사자인 농협 내부만 보더라도 임원 경영평가에서 경제사업 활성화 실적이 낮게 반영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성재 박사는 “사업성과가 미흡했던 것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성과와 책임을 연결해 평가가 진행됐어야 한다”며 “책임을 묻지 않고 넘어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병성 기자 leebs@agrinet.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