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고성진 기자]

한 온라인몰에서 19만원대 수입과일 세트가 대거 올라와있는 화면을 캡처했다. 청탁금지법 선물 가액 한도가 20만원으로 높아진 직후다.

대형 유통업체 온라인몰 
11개 과일선물세트 중
7개가 수입산으로만 구성

농업계 법개정 취지 퇴색 우려
불매운동 등 비판 목소리 높여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농산물 소비 감소와 이상기후에 따른 자연재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어민을 보호하기 위해 농축수산물에 한해 설 명절 청탁금지법 선물허용 가액이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일시 상향조정됐다. 하지만 이를 악용, 유통가에 20만원에 근접하는 수입과일 선물세트가 넘쳐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농업계에선 상향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불매운동 등을 언급하며 유통업체에 자제를 촉구했다. 

국무회의에서 설 대목 청탁금지법 선물 가액 인상을 골자로 한 청탁금지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이 의결된 지난 19일 오후, 국내 한 대형 유통업체 온라인몰에 들어가 선물 금액 한도를 20만원에 맞추니 20만원, 19만9500원, 19만9000원 등의 수입과일 선물세트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과일 선물세트 중 20만~19만5000원 가격대의 선물세트가 모두 11개였고, 이 중 7개가 수입과일로만 선물세트가 구성돼 있었다. 

같은 날 방문한 모 소셜커머스 업체 사이트도 상황은 비슷했다. 10만원 중후반대 수입과일세트가 화려하게 구성돼 고객들을 유혹했다. 수입과일 이외 와인 등의 수입 가공품도 10~20만원대 선물세트 시장에서 눈에 띄었다. 

국내 과일업계에선 자칫 시행령 개정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고 문제를 지적한다. 또 농가 보호라는 취지에 맞게 ‘국내산 농축수산물’을 시행령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연순 한국과수농협연합회 전무는 “수입과일을 10만~20만원 상품으로 대거 활용하는 건 이번 선물허용 가액 상향 조정 취지에 너무 어긋난다. 농어민 보호가 다른 나라 농어민을 보호하라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코로나19 사태 속 어려운 농어민들의 간절한 바람으로 이뤄진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 의미가 자칫 퇴색될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황의창 한국포도회장은 “단가가 높고 생산량도 급증한 샤인머스켓 농가들은 청탁금지법 선물 가액이 상향돼 큰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수입과일이 이 혜택을 누리려고 해 상당히 우려스럽다”며 “농축수산물 선물 한도를 높인 건, 어려운 국내 농어민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이에 맞게 ‘국내산 농축수산물’을 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축수산물 소비 확대를 위한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 촉구 건의문’을 발표하는 등 이번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에 힘을 보탠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개정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농어민위원장인 이원택(전북 김제·부안) 의원은 “설 명절 농축산물에 대한 청탁금지법 일시적 완화는 코로나19와 기후위기에 따른 자연재해로 인해 농민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우리 농민들을 조금이나마 돕기 위해 일시적으로 선물가액을 상향 조치하게 된 것”이라며 “유통기업들이 우리 농산물을 이용해 선물 상품 등을 구성해 우리 농가에 힘을 보탤 수 있도록 해야 이번 취지를 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탁금지법 선물 가액 상향 조정에 앞장선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등 농민단체 역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학구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은 “이번 시행령 개정은 코로나19 장기화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축산업계를 돕기 위해 내려진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며 “하지만 일부 유통업체들이 수입 농산물로 프리미엄 선물세트를 판매해 아쉬움이 크다” 밝혔다. 

이학구 회장은 “한농연은 국내산 농축수산물 수요가 증가할 것이란 기대에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으나 일부 유통업체의 몰지각한 행태로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시행령 개정 취지와 상생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이제라도 국내산 농축수산물 판매 활성화에 힘써야 한다. 만약 일부 유통업체가 이대로 농가 어려움을 외면할 시 농업계도 불매운동 전개 등 대응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경욱·고성진 기자 kimkw@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