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둥이 엄마, 글쓰기 속에서 ‘생의 맛’ 찾다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이유경 지음, 도서출판 꽃고래책다방, 2020년 11월 30일 발행, 1만4900원.

마흔 문턱 넘은 1981년생 작가
네 자녀 키우며 쓴 ‘성장일기’
소소한 재미와 행복 담긴 시선
마음 따뜻해지는 일상 그려내


작가는 1981년생, 마흔 문턱을 넘었다. 서른에 아들 쌍둥이를 낳고, 서른셋에 딸 쌍둥이를 낳았다. 서울 토박이지만, 남편을 따라 울산에 내려가 살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쓰던 흩어진 글들을 모으니 산만한 산문집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글은 서른아홉까지 쓴 글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글의 8할이 육아”라고. 남성인 내가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글의 8할이 육아라고 하는데? 그것도 흔치 않은 ‘겹둥이’ 엄마에다 ‘생의 맛’?

하지만 산문집은 ‘쌍둥이 네 남매의 육아일기’라기보다는 ‘네 아이와 함께 사는, 1981년생 엄마의 성장일기’ 같은 느낌이다. 육아의 고단함이 느껴지지만 주부로서의 일상이 팍팍하지만은 않다. 소소한 재미와 행복을 찾는 작가의 시선과 어우러져 따뜻하고 발랄하다.

작가의 신변잡기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쌍둥이 네 남매’의 엄마가 주는 위대함, 존경심 때문만은 아니다. 작가의 표현대로 ‘8할’은 그럴 수도. 어쩌면, 나머지 2할은 ‘쌍둥이 넷을 키우는 이주부의 글쓰기 여정’이라는 부제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엄마로 다 주고 나니 나는 껍데기만 남았다. 나 여기 살아있다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중략) 그러다 책을 만났고 글을 만났다. (중략) 나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고 들어가 생의 맛을 느끼게 된 것이다.” (프롤로그 중)

아이들은, 엄마지만 여전히 ‘미생’인 한 존재를 일으켜 세운다. 책을 읽게 했고, 글을 쓰게 했다.

“글 쓰는 행위 자체가 주는 위안이 컸다. 헝클어진 머리와 거친 손, 아이들의 침 냄새와 밥풀 묻은 허름한 셔츠도 괜찮았다. 새벽 틈 사이로 새가 울고 해가 뜨면 내가 보였다. 다시 늘어진 잠보로 돌아가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나날이었다.” (21쪽)

가족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얘기, 삶에 대한 애정이 책 곳곳에서 꿈틀거린다. 결혼을 했거나 그렇지 않거나,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마음을 조금만 열 수 있다면 공감하기에 어렵지 않은 내용들이다. 아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에게도 가슴에 와 닿는 지점이 있다.

“특히 형제 많은 집에서 자란 아이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엄마의 과도한 관심이 아닌 세심한 관찰과 성실한 응답, 그리고 홀로 사유할 시간과 공간이었다. 막스 피카르트가 침묵의 상실만큼 인간의 본질을 변모시킨 것은 없다고 했듯이 아이들에게도 생각하고 고독할 기회가 필요했다.” (67쪽)

작가는 엄마와 딸의 경계에서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의 그리움을 추억하고, 편의점에 들러 난생 처음 복권을 사면서 소시민이었던 아버지가 복권을 살 수밖에 없었던 그 심정을 헤아려 본다. 몸이 아프거나 울적한 날, 비가 오는 날이면 홀로 국밥집을 즐겨 찾는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남이 해주는 밥’을 먹으며 쉼표처럼, 찍고 끊어갈 수 있는 여유를 느끼기 위해서란다. 한국표준직업분류에서 ‘주부’를 검색해보는 ‘엉뚱함’도 재밌다.

“멀티태스킹의 강자인 ‘주부’가 직업분류에서 빠졌다니. 주부인 나는 직업이 없다는 것인가. 이렇게 일을 많이 하고 있는데도? 아-또 쉽게 분노하고 말았다.” (162쪽)

그렇게 작가가 느꼈던 ‘생의 맛’은 육아, 주부, 81년생, 중년, 국밥 등 5개의 키워드로 묶였다. 제목에 달린 ‘생의 맛’이라는 구절은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로맹 가리’의 소설 <자기 앞의 생> 서두에 나오는 글귀다.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 ‘서른아홉 생의 맛’이 무엇일까 궁금하다면, 마음 따뜻해지는 에세이집을 찾는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작가의 첫 산문집이다. 온라인 SNS(사회관계망서비스)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후원자들을 모았고, 작가가 활동하는 울산 여성들의 책모임 ‘꽃고래책다방’이 출판했다. (이유경 지음, 도서출판 꽃고래책다방, 2020년 11월 30일 발행, 1만4900원)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