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성 시설농가들 ‘호소’

[한국농어민신문 이장희 기자]

정부와 정치권이 외국인 노동자의 비닐하우스 내 주거시설 폐지조치와 고용허가 중단을 논의하고 나서자 안성에서 시설농업을 하고 있는 6개 작목 반장들이 일죽농협 조합장실에 모여 농촌현실을 무시한 처사라며 대책을 숙의하고 있다.

지자체, 기존 시설 면밀히 점검
안전성 문제 등 해결한 뒤
지도·감독 강화하면 될 일


“비닐하우스 내 주거시설 폐쇄 조치와 고용허가 중단만이 능사가 아니다. 어느 정도 유예기간을 두고 기존 비닐하우스 내 주거환경 시설을 더 정비하고 안전성 문제를 해결한 후 지도·감독을 강화하면 된다.”

“정부는 인권단체와 방송언론에서 떠든다고 농촌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비닐하우스 주거시설도 예전보다 많이 개선됐다. 포천 외국인 노동자 사고가 마치 전 시설하우스 농가의 문제 인양 매도하는 것은 분명 잘못됐다.”

지난 1월 13일 경기 안성시 일죽농협 조합장실. 지역 80여 시설 농가를 대표하는 6명의 작목반장이 모여 정부의 ‘농촌지역 외국인 노동자 주거환경 개선’ 추진에 불만을 토로하며 향후 대책을 숙의했다.

이날 농민들은 정부가 비닐하우스 내 주거시설 사용 중단과 마을 빈집 등을 리모델링하고, 원룸·빌라, 단체기숙사 등의 지원 방안은 농촌현실을 모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건물주, 외국인에 임대 꺼리고
출퇴근 안전사고 발생 등 우려
숙박비 부담도 버거운 상황


농민들은 “빌라와 원룸 건물주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임대를 안 준다. 지저분하게 사용하고 관리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들을 폄하하고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실제 그렇다. 농촌에는 원룸과 빌라도 없다. 설령 임대를 얻었다 해도 농장까지 출퇴근 하려면 오토바이 등 교통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안전사고 발생 시 신원보증을 한 농장주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농장주가 매일 출퇴근시키기도 힘들다. 또 농장 내의 숙식도 관리가 어려운데 외부 숙박 시에는 더 관리가 안돼 친구 및 지인들과 다니며 사고발생 위험도 높다. 실제 외국인 노동자들도 마을 내 주거나 빌라·기숙사 생활을 주변 눈치가 보여 원치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또 “내국인은 자기 돈 내고 숙박비와 임대·관리비 등을 해결하고 있는데 외국인노동자는 농장주가 다 해주는 줄 알고 있다. 이들에게 건물 임대·관리비와 숙박비 등을 부담시킬 경우 월급으로 부담하기가 버거울 것이며 한국에 안 들어온다. 결국 외국인노동자가 없으면 농사짓기 어려운 실정인데 정부가 현실과 괴리된 주거시설 개선 대책을 추진한다면 이는 농업말살 정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들은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려면 고용노동부 한국산업인력공단에 거처하게 될 숙소, 쌀과 부식 제공, 임금 등을 모두 서약한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비닐하우스 내에 숙소 만들 때 방에 장판 깔고 도배하고 환풍기와 화장실, 세면대, 싱크대, 정수기, 냉장고, 냉·난방기, 가전도구 등의 주거시설을 새로 다 해준다. 하지만 몇 달이 아닌 며칠도 못 간다. 싱크대 주변과 벽지 등은 기름때가 범벅이고, 청소 관리를 제대로 안해 시설이 엉망이다. 전열기구 등도 부주의하게 사용하고, 농장주가 수시로 살피고 관리를 해줘도 개선이 안 된다. 처음부터 열악한 주거 환경은 아닌데 방송과 인권단체들이 악덕 농장주로 몰아가는 게 분노가 치민다”라고 하소연 했다.

현재 일죽면의 시설농가 90% 이상이 임대농이다. 지난해 저온 피해와 긴 장마, 태풍 등에 이어 코로나19 등으로 농가들이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 외국인 노동자 주거환경 타격까지 겹치게 되면 농가들은 더 이상 살길이 막막하다고 한다.

“코로나로 외국인력 수급 난항
현실 괴리 대책에 살길 막막”


농민들은 “지난해와 올해 코로나19로 외국인력 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기존 외국 인력의 계약연장도 안 되고 사용허가도 안 해주면 양쪽 다 피해자가 된다. 정부는 실제 현장 농업의 애로사항을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방송 언론에 나온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안일한 대책만 추진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들은 “지금 농장주는 외국인 노동자를 잘 모셔야 한다. 소홀하게 하면 대들고 일도 안하고 다른 곳으로 야반도주한다. 최저 임금도 해마다 올라 돈 벌어서 그들에게 월급 주고 나면 크게 남는 것도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날 농민들은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 지방자치단체가 기존 농장 내에 주거시설을 면밀히 살피고 점검한 후 부족한 부분은 개선시켜 주거시설로 적합하다고 판단될 경우 사용 허가를 내주고 양성화시켜 수시로 관리·감독하면 될 것”이라며 “농장주도 더욱 철저히 주거환경 대책을 마련하고 안전사고 예방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된다. 농업현실을 감안할 때 무조건 폐쇄 조치와 고용허가 중단이 합당한 대책은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안성=이장희 기자 leejh@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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