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골든타임’은 아니고 ‘실버타임’쯤 될 것 같은데.”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이하 청탁금지법) 시행령상 농축수산물 선물가액을 현행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긴급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날인 14일, 신문사에서 농산물 유통 분야를 7년 넘게 취재해온 선배 기자는 ‘결정 시점이 어떤 것 같아 보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유통업계는 ‘명절 한 달 전’을 선물 수요가 가장 많은 때라고 본다. 물량 준비와 택배 발송, 배송기간을 감안하면 선물세트 구성이 완료되는 ‘명절 한 달 이전’이 단체 주문 수요가 몰리는 ‘골든타임’이라는 의견이 많다. 대형유통업체들은 올해 설에 대비해 지난해 12월 말부터 선물세트 사전 예약에 돌입했고, 중간 성적까지 내놓은 상황이다. 올해 설은 2월 12일이다.

농축수산물 선물 가액을 20만원으로 올린 지난해 추석은 어땠을까. 변경 지침은 추석(10월 1일) 20일 전인 9월 10일부터 10월 4일간 한시적으로 적용됐다. 당시 상향 결정이 늦은 감이 있다는 얘기, 변경 이후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농축수산물 매출은 전년 대비 7% 증가해 생산 농가에 큰 위안이 됐다.

같은 날 저녁, 한 방송사의 유명한 ‘팩트체크’ 코너에서 농축수산물 선물가액 상향 논의와 관련한 내용이 다뤄졌다. 지난해 추석 선물가액을 10만원에서 20만원까지 풀어준 것이라면 이 가격대 선물 매출이 가장 늘었어야 하는데, 이와 관계없는 5~10만원, 또 20만원이 넘는 고품질 선물 매출이 더 많이 늘어났다며 가액 상향이 농산물 매출 증가로 이어진다는 논리가 빈약해 보인다는 지적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집계한 지난해 추석 농식품 선물 매출액에 따르면 가격대별로 5~10만원은 17%, 10~20만원은 10.3%, 20만원 초과는 20% 각각 증가해 20만원 이상이 가장 높았던 것은 방송사의 지적대로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액 상향 효과가 온전히 발휘될 수 있었던 ‘적기’였는지 더 따져 들어가 봐야 할 부분들이 있다. 수치에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상향 결정이 일정 정도 농축수산물 매출에 기여한 점이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코로나19 여파로 고향에 가지 않고 대면 접촉을 줄이는 대신 고품질 선물을 선택한 이들이 많았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고려할 부분은 또 있다. 농축수산물은 공산품과 달리 수급 여건과 품위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크다.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현행 10만원 상한으로 고정할 경우 농축수산물 수요가 다른 수요로 대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농산물 도매시장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이상기후로 산지 작황이 최악이었다. 올 설 사과·배 등 주요 선물용 과일 시세가 예전보다는 오를 것으로 보이는데 현행 10만원으로 가액을 묶어 놓으면 공산품으로 선물 수요가 돌아설 수도 있다”고 했다. 청탁금지법 시행이 농축수산물 소비 감소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특권과 반칙을 잡기 위해 사회적 공감대 속에서 탄생한 ‘청탁금지법’이 한국 사회의 부정적인 관행을 바꿔나가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명절 기간 한시적으로 농축수산물의 선물가액을 상향하는 부분을 ‘법 흠집 내기’, ‘법 정신 훼손’ 등으로 치부하는 것은 농업 분야의 열악한 현실을 더 힘겹게 만드는 인식이다. 

청탁금지법의 지배력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행되고 악용되는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 등의 비리가 여전히 사회 구성원을 아프게 하고 있다. 동시에 청탁금지법 규정 속에서 농업인의 속도 타들어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국민적 공감대 속 절충점을 논의해 볼 시점이 아닐까 싶다.

국민권익위원회가 15일 긴급 전원위원회를 열고 이번 설 명절 기간 농축수산물의 선물 가액을 20만원으로 상향하기로 결정했다. 쉽지 않은 결단이었지만, 박수를 보낸다. 설 기간, 농축수산물이 부정청탁의 온상처럼 잘못 비춰지지 않도록 청탁금지법을 악용하는 사례에 더욱 예의주시해야 될 것 같다.   

덧붙여, 국민권익위에 따르면 청탁금지법은 부모, 형제, 친지 등 일반 국민 간 주고받는 선물은 규율하지 않으며, 직무관련성이 없는 공직자에게는 5만원 초과 선물도 100만원까지 가능하다. 제도 이해도를 높이는 홍보 부분도 제도의 적용 못지않게 중요해 보인다.  

고성진 농업부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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