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호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교수

[한국농어민신문]

우리는 일상에서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자동차를 비롯한 다양한 이동 수단과 수많은 기계와 장비가 등장하면서 편리해진 반면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 더 많이 노출되고 새로운 안전사고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논과 밭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농업분야에서는 폭설·폭염·태풍 등 이상기상과 농기계를 이용한 다양한 농작업으로 인해 안전을 위협받는 크고 작은 사고에 노출돼 있다.

안전에서 다루는 영역은 ‘직업안전’과 ‘공공안전’ 2가지다. 농작업은 사무실, 농장, 들녘 등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다루는 직업안전과 직결되며, 산업화한 국가일수록 사고로 인한 사망이 질병사망을 능가하고 있다. 그만큼 기술이 발전할수록 안전사고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공공안전은 직업 이외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위험을 의미하는데, 일터와 가정이 동일 구역에 함께 존재하는 농수산업은 안전의 개념과 인식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농업분야 산업재해는 1000명당 9건으로 전체산업 평균 4.9건보다 높은 실정이며, 발생원인과 작업환경이 다양해 농작업 안전관리자 육성이 시급해 보인다. 공장 등 작업장에 안전관리자를 배치하듯이 농업분야에도 안전관리자 육성과 교육이 필요하다.

농촌인구 60%는 고령자다. 또한 가정 내 안전사고 중 60세 이상 노령층이 13.2%를 차지하는데, 미끄러짐이나 넘어짐 사고가 절반에 이른다. 노인이 대부분인 농촌에서 가정 내 안전사고와 농작업 안전사고가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에 대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나이를 먹으면 동작이 다소 둔하고 반응이 늦은 데 비해 농업분야의 작업환경은 다양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 특히 여름에는 뙤약볕이나 고온 다습한 환경으로 열 질환 사망자 소식도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농장과 집이 붙어있는 경우 동물의 안전, 위생, 건강이 사람들의 건강과 직결된다. 예를 들어 AI나 구제역이 발병하면 소독과 방역에 사용되는 화학물질과 스트레스는 농업인의 건강에 잠재적인 위협이다. 이에 농촌진흥청에서 여성·고령 농업인들이 사용하기 편리하게 신체조건을 고려해 소형·경량·승용형 농기계를 개발하고, 작업 부담을 줄여주며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각종 편이장비와 개인보호구를 보급하는 것은 농업분야의 안전을 지켜나가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한 농촌진흥청에서 담당한 ‘농어업인의 안전보험 및 안전재해 예방에 관한 법률’에 의한 안전 재해 연구 및 예방 업무를 좀 더 신속하고 확장적인 정책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정부가 역점으로 추진 중인 수소경제의 최대 걸림돌은 충전소 안전 문제다. 2019년 발생한 노르웨이 충전소와 국내 수소저장 탱크 폭발사고로 인해 안전성을 홍보하는 노력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사실과 인식이 싸우면 인식이 승리하게 된다. 한 번의 안전사고는 모든 사람을 망설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농작업 환경의 안전성이 중요한 정책이슈가 돼야 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농업이 안전하다는 인식은 귀농귀촌 인구증가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빅데이터, 스마트팜 등은 농업에 큰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농업이 점점 자동화되고 첨단화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이를 조작하고 운영하는 사람의 안전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것이다.

수년간 전투기 조종사들의 안전교육을 담당하면서 알게 된 것은 첨단기술의 집약체인 비행기를 조종하는 사람들은 다소 강박적일 정도로 작은 절차를 반복하고 확인한다는 것이다. 그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거나 조금만 이상해도 비행을 중단할 만큼 안전을 중요하게 여긴다. 다 아는 사실, 다 아는 절차를 계속 확인하는 노력은 안전의 핵심이다. 농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안전하고 편리한 농업이 돼야 한다. 그래야 젊은 인력이 유입되고 농어촌이 성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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