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 상한액 왜 올려야 하나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김경욱 기자]

국민의힘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축수산물 선물 상한액을 상향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사진제공=이만희 국회의원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이하 청탁금지법) 시행령상 농축수산물 선물 가액을 현행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농업계의 요구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외식 소비와 대면 활동이 줄어 판로가 끊기고 자연재해 피해로 농산물 생산까지 힘겨운 전례 없는 상황에서 명절 선물 특수에 더욱 목을 맬 수밖에 없는 농업·농촌 여건과 무관치 않다는 목소리다.

지난 추석 선물가액 완화로
10만~20만원대 매출 10.3%↑
“부정청탁 증가 정황은 없어”


▲가액 기준 상향 조정 필요=청탁금지법은 음식물·선물·경조사비 상한액을 각각 3만원, 5만원, 5만원으로 제한했지만, 2016년 9월 법 시행 이후 한 차례 개정을 거쳐 농축수산물 선물의 경우에만 10만원까지 허용하고 있다. 법 시행 전부터 농업계는 도입 취지에 찬성하면서도 소비 위축을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가액 기준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사과상자에 든 ‘돈’을 잡아야지 왜 애먼 ‘사과농가’를 잡느냐”는 것.

특히 지난해와 올해 농업계는 코로나19 여파 속 외식 소비 감소, 친환경급식 중단, 대면 판매 축소 등에 자연재해까지 겹쳐 명절 특수 수요에 더욱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이런 가운데서도 농어업 분야에 대한 정책 지원은 추가경정예산에 반영되지 못했고, 올해 농업 예산의 비중도 사상 처음으로 국가 전체 대비 2%대(2.9%)로 떨어지는 등 정책적 배려 역시 미흡하다는 비판이 있다.  

여기에 이번 설이 코로나19의 재확산 속에서 귀성 자제와 경기위축에 따른 소비 감소 등으로 애초 기대한 설 특수마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더해지며 가액 기준 상향 등 후속 정책들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박연순 한국과수농협연합회 전무는 “지난 가을 과수 농가들은 긴 장마와 태풍 등 유례없는 이상기후에도 양질의 과일을 생산해냈지만, 생산량 감소는 피할 수 없었다”며 “청탁금지법 선물 상한액 인상으로 연중 최대 과일 소비 성수기인 설 대목이라도 과일 소비가 살아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최악 작황 과일 시세 오를 전망
현행 10만원 가액 유지되면
수요 공산품으로 돌아설 듯


양상국 가락시장 한국청과 이사는 “지난해 이상기후로 산지 작황이 최악이었다. 올 설 사과·배 등 주요 선물용 과일 시세가 예전보다는 오를 것으로 보이는데 청탁금지법상 현행 10만원으로 가액을 묶어 놓으면 공산품으로 선물 수요가 돌아설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명절 기간 농축수산물 소비는 가액 기준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 조정한 지난해 추석(9월 10일부터 10월 4일까지), 전년보다 증가했다. 농축수산물 소비에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였다는 평가가 많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0년 추석 농식품 선물 매출액은 2019년 추석 대비 7% 증가했다. 품목별로 축산물 10.5%, 가공식품 7.5%, 과일 6.6%, 수산물 4.7%씩 매출이 늘었다. 가격대별로도 10만~20만원대 선물 매출이 10.3% 증가했다.

한국농축산연합회는 6일 성명에서 “코로나19를 비롯해 태풍과 집중호우 등 자연재해로 인해 국내 농산물 소비감소가 발생하면서 현재까지 그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농산물의 소비 진작이 필요하며 특히 올 설 명절 농축산물 선물 가액의 상향 조정은 분명한 대책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도 “지난해 추석 선물가액 완화 조치로 10만~20만원의 선물 매출은 10.3% 늘면서, 특수를 누린 것이 증명됐다”며 “그럼에도 우려된 부정청탁이 증가하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농업계 매년 명절 정례화 요구
대통령 ‘열외 필요’ 언급하기도

▲시행령 개정 요구
=청탁금지법의 농축수산물 선물 가액 상향 조정을 매년 명절 기간 정례화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도 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명절 기간에 한해 농축수산물 선물 가액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한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 촉구 건의문’을 지난해 12월 15일 국무총리실과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식 접수한 바 있다.

한농연은 “국산 농축산물의 자연적인 소비 확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농축산 선물 가액 한도를 늘릴 경우 별도의 사회적 비용 없이 소비 증진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명절 선물용 농축수산물의 경우 청탁금지법상 적용을 예외로 둘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수산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지난 1년간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경제사회활동 위축으로 수산물 수요가 급감해 어민들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으며, 최근 전국적인 재확산은 설 명절을 앞두고 내수경기 회복을 바라는 어민들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이라며 “명절에 농축수산물을 주고받는 것은 미풍양속임을 고려해 명절 선물용에 한해 농축수산물은 예외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과 관련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전인 2017년 3월 농축산연합회와 가진 간담회에서 “적어도 농축수산물은 청탁금지법에서 열외조치가 필요하고, 하다못해 농축수산물에 대한 상한가격만 예외적으로 인상시켜도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고성진·김경욱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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