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혁신성장정책연구본부장

[한국농어민신문]

한반도는 이미 아열대 농업 지역 진입 
품종, 재배·방제법 등 대대적 정비 필요
선도농-벤처농 스마트농업 경쟁도 눈길 

2020년 한해 우리 농민들은 전 작목에 걸쳐 최고로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 봄에는 때늦은 서리로 개화기 피해가 막심했고 여름에는 54일이란 최장 장마로 일조량 부족과 생육기 피해를 입었다. 가을에는 4번의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면서 수확기 낙과와 도복 피해가 발생했다. 잦은 태풍으로 이웃 논 임에도 이삼일의 수확일 차이 때문에 수익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화상병은 그 어느 해보다 넓은 면적에서 발생했고, 겨울에는 AI가 시작되고 있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지난해 같은 기후패턴 변화가 한 해에만 그치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해서 이어질 상황이라는 것이고, 작물이 느끼는 기후변화의 충격은 사람이 느끼는 충격에 비할 바가 아니다. 기후변화 대응은 2021년 우리 농업 기술혁신이 극복해야 할 거대한 물결이 됐다.

한반도 농업은 이미 기후적으로 온대 농업을 지나 아열대 농업 지역으로 진입했다. 우리의 농업 연구와 생산기반은 거의 모든 작물에 걸쳐 온대농업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작물의 품종, 생리, 병리, 재배법, 방제법 등 농업 기술 전반을 아열대 기후에 맞춰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재정비를 해야 한다. 신규작물 도입에 최소 10년이 걸리는 만큼 아열대 신규작물 관련 연구도 더욱 본격화해야 한다. 농업연구의 본질은 기후와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끝없는 반복이고 국가적 대응이 필요한 과업인 만큼 국공립연구기관의 역할에도 주목해야 한다. 농업연구와 생산기반의 미스매치도 하루 빨리 정비가 필요하다. 예로써 사과농가들은 적지를 찾아 이미 양양까지 북상해 있지만 사과연구소는 군위에 있고 다른 작물도 유사한 상황이 많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정부와 국회에서는 탄소중립을 의미하는 넷제로(Net Zero)와 농업에너지 패러다임 전환, 반추동물과 벼농사의 온실가스 저감 등 중장기 이슈 위주로 접근하고 있다. 그렇지만 농업현장에서 느끼는 체감도는 훨씬 더 절박하고 긴박해 농민들은 당장 내년, 내후년을 걱정하고 있다. 예산부처와 국회를 설득해서 농업기후변화 재원을 확보하려면 농업계 전체가 지금보다 훨씬 더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며, 기술적 대응도 중요하지만 재해보험 확대 등의 당장의 농민 현안부터 풀어줘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과 더불어 2021년 농업 기술혁신의 또 다른 큰 물결은 스마트농업을 향한 농업계 내외부 레이스의 시작이다. 전통적인 농업기술 혁신은 농업계 내부 전문가에 의한 작물중심의 접근이었고, 비농업 분야 전문가의 농업혁신 참여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반면에 스마트농업은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농업기술에 ICT를 접목하는 만큼 비농업 분야 ICT 전문인력의 농업혁신 참여가 매우 돋보인다.

성공한 농업인들이 현장의 필요에 의해 스마트기술을 연구하고 도입하는 선도농 그룹과 ICT 전문성을 기반으로 농업에 진출하는 벤처농 그룹의 대결은 점차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선도농 그룹이 오랜 농업경험과 현장지식에서 나오는 정확한 문제의식을 무기로 하는 반면에 벤처농 그룹은 농업문제에 대한 참신한 시각과 해법을 ICT 기술로 풀어내는 측면에서 선도농 그룹을 압도하고 있다. 전자가 주로 정책자금을 활용한 혁신에 익숙하다면 후자는 투자시장의 자금을 혁신의 원료로 사용한다는 점도 큰 차이점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양쪽 모두에서 이런저런 성공사례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고 성공사례는 또 다른 혁신 시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느 쪽이건 우리 농업 기술혁신에 많은 참여와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도농 그룹과 벤처농 그룹은 경쟁보다 협력의 파트너가 될 것이고 상호학습을 통해 우리 농업기술 혁신에 신선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이기 때문이다.

기후가 바뀌듯이 농업기술혁신 트렌드도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 윈스턴 처칠은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 농업이 위기라고 하지만 희망의 씨앗은 도처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 농업이 수많은 난관을 기술혁신으로 극복해 왔듯이 지금 우리농업이 처한 위기와 어려움도 잘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믿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2021년을 맞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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