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진 천 춘천두레생협 이사

[한국농어민신문]

내년 농업예산으로 정해진 ‘16조’
농정대전환 준비 예산으로는 안보여
‘사람중심 농정’ 담겨있다 할 수 있나

온 국민이 코로나로 지쳐있는 판국에 더 지치게 하던 뉴스. 끝없이 이어졌던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충돌 뉴스는 여태 진행 중이다. 정치적 중요성이나 잘잘못에는 관심 없다. 다만 어마어마했던 뉴스 총량에는 할 말이 있다. 29%쯤은 되지 않을까? 사실 국민이 주목했다기보다는 주목을 강요당한 것이긴 하지만, 뉴스 주목도에서는 지나치게 과도한 대우를 받은 셈이다. 반면에 농업농촌뉴스는 2.9%라도 되려나?

중앙과 지방은 여러 면에서 다르다. 가끔 강원도를 벗어나면 지방뉴스를 챙겨보게 된다. 중앙뉴스 다음에 따라붙는 15분 쯤 되는 뉴스 말인데, 비로소 다른 동네에 왔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물론 강원도 뉴스도 춘천시나 원주시 뉴스가 반 이상이듯, 대부분 중심도시 뉴스로 채워지기는 한다. 그래도 강원도 뉴스 속에서 간간이 인제나 양양 뉴스를 접하듯, 순창이나 청송 뉴스를 접하게 되면 괜히 반갑다.

지방뉴스 특히 군 단위 뉴스는 결국 농업농촌 뉴스다. 지방 뉴스의 농업농촌 비중은 중앙 뉴스와 비교할 수가 없다. 지리적으로도 지방 사람들은 농업농촌과 가깝고, 접하는 뉴스 총량도 훨씬 많다. 농업농촌에 관해서 일단은 뭐라도 듣고 뭐라도 봐야지만 다음의 접점이 생기는 법이다. 못 보면 마음에서 멀어지는 법이다. 물론 지방뉴스가 농업농촌 이슈에 잘 접근하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농업농촌 뉴스의 총량을 따진다면 상당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6시 내고향’이나 ‘생생정보통’ 같은 시사교양 정보프로그램이 있으니까 말이다. 대개 저녁밥 준비를 하면서 무심하게 보거나 듣게 된다. 구석구석 훑어 소개하는 먹거리와 볼거리는 코로나 시대에 대리만족이나마 주기도 한다. 호들갑 떠는 리포터나 시골 어르신들의 어색한 연기를 보는 예능적 재미도 쏠쏠하다.

귀농을 준비하는 분들 앞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한다. “저도 6시 내고향을 즐겨봅니다만,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농업농촌을 속단하면 곤란합니다.” 어떤 그림은 제공하지만 현실 인식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여줄 만한 것만 보여준다. 방송의 컨셉이 원래 그런 것이고, 방송을 위한 설정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어쩌랴. 농업농촌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으니, 방송 컨셉은 환상이 되고 설정은 가식이 되는 것이다. 심하면 코미디가 되기도 하고.

12월이 되자마자 여의도 뉴스가 전해졌다. 2021년도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이 전체 국가예산의 2.9%인 약 16조원으로 확정됐다는 뉴스. 농업계는 5500억원 이상 증액을 요청했지만 결국 1500억원 증액에 그쳤다는 뉴스, 7년 전에 4% 아래로 떨어졌던 농업예산 비중이 처음으로 3% 아래로 떨어진다는 뉴스. 농업계 신문에서나 볼 수 있는 뉴스. 중앙뉴스는 다루지 않는 뉴스.

16조원이든 1500억원 증액이든 체감할 수는 없다. 그 와중에 %의 메시지는 숫자보다 강력하고 마법과도 같다. 농업농촌이 또 무시당했다는 농민들의 분노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3%에서 한 끗 모자란 2.9%에 눈이 가게 마련이다. 농업농촌의 회생을 위해서는 못해도 4% 수준은 회복돼야 한다는데 고작 2.92%라니! 그런데 갑자기 궁금증이 생긴다. 만약 3.01%라면 어느 정도는 대우받는 셈일까? 4%면 회생의 희망이 있는 것일까?

괜한 착각은 말아야 한다. 2.9%는 농림축산식품부 예산 비중일 뿐이다. 물론 중요한 지표라 하더라도 진실 전체를 다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가계 지출을 생각해 보자. 겨우 2.9% 남짓만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계비 가운데 외식 포함한 먹거리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엥겔지수)은 25~30% 사이에 있다. 그러면 국민은 농업농촌에 29%쯤 마음도 쓰는 것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겨우 2.9%만 농업농촌에 마음을 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2.9%는 정부의 지출이다. 정부 지출은 사람처럼 먹는 데 쓰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그 쓰임새다. 16조원이든 20조원을 기대하든, 지출의 배분이 적정하고 돈의 행방이 확실하다면 문제는 없다. 아예 없다기보다는 문제가 덜하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있는가? 농업계의 요구와 예산의 증액과 지출의 배분은 순조롭게 합의되고 있는가? 어림도 없다. 관행이 대부분이고 정부든 지자체든 힘은 예산 부서에 있다.

도무지 농정대전환을 준비하는 예산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단적으로, 청년농업인 예산이 정부 원안에서 +1이라고 해서 찾아보았는데, 처음에는 단위를 잘 못 본줄 알았다. 16조 규모에서 1억원 증액은 숫자 장난에 불과하다. 여기에 무슨 사람중심 농정의 비전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말하기도 지친다.

농업농촌을 아끼는 국민들이다. 지출할 것은 지출하는 국민들이다. 농업농촌의 중요성을 잘 안다고 답하는 국민들이다. 국가 비전은 농업농촌의 오늘을 극복하는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다. 그러므로 국민들이 농업농촌을 2.9% 대우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의 세금을 갖고 노는 존재들은 따로 있다. 2.9%는 사회적 대우의 지표가 아니다. 농정적폐 청산이 시급하다는 지표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