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F 살처분 참여 농가는

[한국농어민신문 우정수 기자]

연천군에서 모돈 700마리 규모의 디디팜을 운영하고 있는 이창번 대표.

예방적 살처분 참여 이후
1년이 다돼서야 허용
간신히 이뤄진 재입식이지만
1년 뒤에나 출하소득 발생
“앞으로가 더 걱정” 한숨


“돼지 재입식을 해서 다행이긴 한데,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지난해 9월, 국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첫 발생한 이후 예방적 살처분으로 돼지 8000여 마리를 잃었던 이창번 디디팜 대표의 한숨 섞인 목소리다.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에 위치한 디디팜은 아버지와 함께 일하던 이 대표가 2018년 독립해 의욕적으로 운영하던 농장이다. 모돈 700마리에 상시 사육 규모는 5000마리 수준. 하지만 1년 넘게 비었던 디디팜에서는 지난 11월 말이 돼서야 다시 돼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디디팜은 액상 사료급이시설, 축사 내 냉방설비, 중앙집중배기시스템까지 첨단 시설을 완비한 스마트 농장으로, HACCP 인증은 물론 경기도 인증 ‘가축행복농장’에도 등록한 우수 농장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아프리카돼지열병 관련 재입식 대상 농가에게 요구한 ‘8대 방역시설’ 대부분을 이미 갖추고 있던 농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상황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지 인근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살처분을 밀어붙였다.

이 대표에게 큰 자부심이었던 양돈장은 돼지 살처분 이후엔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왔다. 농장 신축 과정에서 60억원의 부채를 지게 됐는데, 매달 상환해야 하는 이자만 해도 1500만원이나 됐다. 이창번 대표는 “살처분 보상금은 이자 갚는데 들어가고 아버지 농장 보상금으로 생계를 유지했다”며 “살처분 이후 너무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살처분·수매에 참여했던 농가들은 경제적·정신적 어려움이 가중되자 정부에 조속한 재입식 허용을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는 방역을 이유로 재입식에 난색을 표하다 지난 9월, 살처분 이후 1년이 다 돼서야 재입식을 허락했다. 그러나 재입식을 눈앞에 둔 시점에 화천군 양돈장 두 곳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하면서 디디팜은 11월 말이 돼서야 재입식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기다리던 재입식을 했지만 이 대표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이창번 대표는 “돼지를 출하해 소득이 발생하는 1년 뒤까지 농장을 무슨 돈으로 운영할지 막막하다”며 “자금 문제로 재입식 절차에 들어가지 못한 농가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창번 대표는 일단 정부의 ‘아프리카돼지열병 관련 긴급경영안정자금’ 대출로 재입식을 시작했다. 이 자금으로 6개월 정도는 버틸 수 있지만 그 이후가 걱정이다. 이번에 들여온 후보돈 대금도 일부는 지급하지 못했다. 이 대표는 “살처분만 아니었으면 안정적으로 운영했을 농장이 1년여 사이 6개월 앞을 장담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 농장으로 전락했다”며 “농장 운영 계획을 세울 때 가족 생활비를 제외해도 감당이 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이창번 대표는 선량한 농가들이 자신과 같은 피해를 보지 않도록 반드시 방역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창번 대표는 “우리나라는 차단 방역이 우수한 편으로 도축장에서 질병 검사를 철저하게 하고, 모돈이 움직이는 것도 GPS로 추적이 다 이뤄진다”며 “구시대적인 살처분 정책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정수 기자 wooj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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