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주현주 기자]

지난 2월 ‘김치산업진흥법’ 개정으로 11월 22일 ‘김치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제정됐다. 지난달 20일 농협중앙회에서 열린 제1회 김치의 날 기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이 참석해 농업인과 김치산업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22일에는 국내를 포함해 영국, 프랑스, 호주, 미국 등 7개국에서 김치 페스티벌을 동시에 생중계했다.

김치 수출에도 날개가 달렸다. 올해 3분기 김치 누계 수출액은 1억 85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5%가 증가했다. 재료 하나하나(11월)가 모여 22(22일)가지의 효능을 나타낸다는 의미를 담은 김치의 날은 김치 종주국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한 듯하다. 하지만 첫 번째 맞은 김치의 날에서 서늘한 ‘데자뷔’가 연상되는 건 왜일까.

10월 마지막 주 목요일은 ‘막걸리의 날’로 올해 10회째를 맞았다. 한해 첫 쌀이 나오는 시기에 맞춰 햅쌀로 빚은 막걸리를 기념하기 위해 이날로 정했다. 당시 막걸리는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일본에서 막걸리가 건강에 좋은 술로 인기를 끌었고, 첫 번째 막걸리의 날이 열린 2011년 막걸리 수출액은 5273만5000달러로 전년보다 3배가 급등했다.

수출 호조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막걸리 붐’이 일었다. 2011년 제1회 막걸리의 날은 막걸리 페스티벌을 중심으로 나흘간 성대하게 열렸다. 농식품부 장관은 막걸리 수출을 자축했고, 2013년에는 막걸리의 날 기념행사를 3개국에 생중계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걸리의 인기는 채 5년도 가지 못했다. 일본에서 막걸리 인기가 사그라들자 막걸리 수출액은 급격한 하향 곡선을 그리며 5년 만에 70% 넘게 하락했고, 막걸리의 날 행사도 이후 규모가 축소되다가 작년부턴 공식적인 언급조차 사라졌다.

김치와 막걸리. 종주국으로서 해외에서 먼저 인기를 얻어 국내에서 주목받게 된 발효식품. 두 산업이 비슷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김치 업계는 이미 수출용 김치에 사용하는 고춧가루는 중국산 고춧가루가 대세라고 말한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막걸리 원료가 수입쌀이 대세가 된 것처럼 말이다. 올해 말부턴 국내 기업의 미국 현지 김치 공장이 본격 가동될 예정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하필 김치의 날을 제정한 해 김치의 날 직후 배춧값이 폭락한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지금 반짝 뜬 붐이 ‘빛 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으려면 업체들은 저가 원료로 한 출혈 경쟁을 멈추고 종주국으로서 본연의 맛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막걸리 전문가의 조언이 김치에도 해당되는 듯하다. 10년 뒤에도 김치의 날을 기념하고 싶다면 배추, 무, 마늘, 고추 등 산지와 김치업체 간 계약재배 확대, 수매자금 지원, 저온저장창고 구축, 포장 기술 개발, 식생활 교육, 소비 홍보를 통해 안방 시장부터 내실화를 기해야 한다.

주현주 기자 joo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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