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인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장

[한국농어민신문]

10여 년 전부터 등장한 중간지원조직
개념 정리 등 가야할 길 여전히 멀지만
농촌발전 전략적 거점으로 더 강조돼야

마을만들기(마을운동)는 지방자치의 진전과 더불어 풀뿌리 주민자치운동으로 성장하고 확산되어 왔다. 농촌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행정 사업을 매개로 때로는 왜곡되면서 더디게 진전되고 있다. 그래도 주민들이 전면에 나서는 당사자 운동을 강조하며 “주민 스스로 말하게 하라”는 관점을 버린 적이 없다.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많은 정책들이 중앙정부 정책에 흡수되어 갈 때에도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강조하며 주민 모두가 같은 꿈을 꾸는 ‘더디 가더라도 제대로 가는 길’을 모색해왔다.

마을이란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진단하고 주민들이 지역사회의 주인공이 되는 공동체 세상을 꿈꾸어 왔다. “마을이 살아야 농촌이 산다” 슬로건 하에 담쟁이가 ‘절망의 담’을 함께 넘어가듯이 주민들과 함께 실천해왔다.

그럼에도 농촌의 고령화와 인구 감소, 양극화 등 구조적 문제는 더욱 심각해져 왔다. ‘도시와 농촌의 불균등 발전’이란 현상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농업 자체가 생계 기반이 되지 못하니 몸도 마음도 각박해지고 공동체 활동도 가다서다 제자리를 반복한다. 한때 유명하던 스타마을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의욕을 가지고 현장에 들어온 젊은 활동가는 생계 문제로 다시 떠나가고, 남아서 마을을 지키던 소수의 리더들도 이제 노인이 되어가고 있다. 정부 정책과 현장 사이의 괴리감은 좁혀지지 않은 채 시행착오는 반복되고 있다.

이런 구조적 장벽을 극복하자면 새로운 관점과 방법론이 필요했다. 무조건 열심히 활동한다고만 해결될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했다. 선진지 지자체에서 시도해온 경험을 배우면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종합선물세트’ 같은 대안을 찾아야 했다. 모든 농촌이 동시에 변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판단했다. 너무나 강고해 보이는 구조 속에서 빈틈을 찾아 새로운 지자체 모델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자 다짐했다. 그래서 진보적인 단체장과 정책 협력을 통해 민관협치의 관점에서 지역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모색했다. 우호적인 정책 환경을 조성하면서 ‘10년 앞을 내다보며’ 민간 주체를 발굴하고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전, 선, 면으로 확산시키고자 노력했다. ‘정책적 인큐베이팅’ 관점에서 전국 최초의 새로운 실험들을 다수 시도하며 민간의 조직적인 역량강화와 조직화에 집중하였다.

이런 기반 위에 민관협치의 핵심적인 제도적 장치로 중간지원조직이 논의되었고 10여 년 전부터 하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마을만들기 영역에서는 민간의 제안을 행정이 수용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선진적인 시도를 통해 나름대로 성공한 지자체가 하나씩 나타났고 전북 완주군과 진안군의 사례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인근 지자체로 조금씩 확산되면서 전북은 광역 단위의 큰 흐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충남은 처음부터 광역의 ‘정책적 유도’를 통해 시군의 민관협치 시스템 구축을 전략적으로 시도했던 사례라 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이런 전환이 모색된 지가 이제 1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이를 통해 마을만들기 중간지원조직은 전국의 40여 개 지자체로 확대되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중간지원조직의 전성시대’라는 비아냥거림 비슷한 말도 들린다. 하지만 마을만들기 영역은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지역 주도로 설치하고 운영되어 왔다는 점은 명확하다.

한편으로 중앙정부도 지자체 역량을 불신하니 대규모 공모사업을 지렛대로 중간지원조직 설치를 의무적으로 강조하기 시작했다. 국토부의 도시재생뉴딜사업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와 자치분권이 강조되고 마을만들기 사무가 작년에 지방으로 이양되면서 농식품부도 중간지원조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축적된 중간지원조직들의 강력한 문제제기도 한몫했다. 매년 3억 원 정도의 국비를 지원하는 시군역량강화사업은 중간지원조직을 설치, 운영하면 1억 원의 인센티브가 더 주어진다. 신활력플러스사업은 중간지원조직과 강력하게 연계하거나 사업 목표로서 중간지원조직 설치를 강조하고 있다. 농촌협약은 처음부터 민관협치의 정책 시스템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마을만들기 외에도 농촌관광, 귀농귀촌, 6차산업, 사회적경제, 사회적농업, 푸드플랜, 주민자치, 청년, 균형발전 등 거의 모든 정책 영역에서 강조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중간지원조직 만능론’이란 비판도 받고 있다. 민간의 조직된 역량이 부족하고 제도적으로도 취약하니 ‘중간’에 있는 불안정성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게 하는 점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농촌 현장에서 정책에 관여하며 활동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여전히 중간지원조직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힘주어 강조하고 싶다. 현장에 상주하면서 함께 일할 전업 활동가가 너무 부족하여 항상 외롭다. 사실 농촌정책 영역의 여러 보조사업이 집행 방식만 바꾸어도 중간지원조직의 상근인력은 30명으로 금방 늘어날 수 있다. 물론 그만한 역량을 가진 활동가를 찾기도 어렵고, 규모가 갑자기 확대되면 이런저런 부작용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농촌 현장에서는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중간지원조직, 전업활동가가 필요하다. 모든 농촌 지자체마다 공공일자리 정책의 일환으로 30명이 상주하는 통합형 중간지원조직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조금만 제도 설계에 관여해보면 현재의 재정 수준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충남 청양군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지나친 주장일까?

중간지원조직의 설치를 계기로 하여 전업활동가가 농촌 현장으로 돌아와 상주할 수 있는 거점이 그나마 확보된다. 결코 경력에 걸맞은 월급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지만 그나마 생계가 조금은 안정되고 열심히 배우며 활동만 해도 된다. 무조건 희생, 봉사만 강요하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이런 중간지원조직이란 제도적 장치 없이 활동가를 발굴하고 육성하겠다는 것은 결코 현실적이지 않다. 젊은 청년들이 농촌으로 들어와 행정과 민간 양쪽을 넘나들며 지역사회 전체를 보고 배우며 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적극 제공해야 한다. 중간지원조직은 농촌사회 학습의 가장 좋은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하다. 중간지원조직이란 개념 자체도 정리되어 있지 않고, 제도적으로도 매우 불안한 상태에 있다. 상근 활동가의 체계적인 유입경로도 잘 보이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심화연수 기회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간지원조직은 농촌발전을 위한 전략적 거점으로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 농촌의 희망을 찾아가는 교두보, 디딤돌로 유효한 전략이다. 이것이 현장에서 경험하고 당면과제로 제안하는 잠정적인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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