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농촌진흥청 농업환경부장

[한국농어민신문]

지난 여름 장대비를 맞으며 대학생 등 70명이 흙을 파고 토양의 단면특성을 조사했다. 한국토양비료학회와 농촌진흥청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토양조사경진대회인데, 이제 이 대회마저 없다면 흙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도, 참여한 청년들의 맑은 눈빛은 의욕으로 빛났다. 의학계 교수를 초청한 세미나에서도 첫 번째 제기한 이슈는 놀랍게도 ‘흙의 건강’이었다(채수완, 2017; Soil, Plant and Human Health). 현대인의 질병과 사망원인 중 음식물 성분(질) 변화도 중요한 요인인데, 과일과 채소의 기능성 영양성분(비타민, 미네랄)이 미국이나 한국 모두 감소했다는 것이다. 또 작물과 가축을 키우고 사람이 먹는 과정에서 토양의 건강이 사람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강조했다.

농사·환경·의학의 공동학회를 결성하는 일본 기타자토대학 토론회에서 미나미 카츠유키(2006)는 토양이 인간생활 전반의 기초이므로, 근대적 농업경제 때문에 붕괴된 토양에 다시 한 번 조화를 가져다주는 것 이외에는, 건강한 세계로 만드는 방법은 없다고 단언했다. 생물은 모두 토양의 비옥도(땅의 힘)에 따라 건강 상태가 결정된다. 모든 음식물은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토양으로부터 생기기 때문이다. 21세기 예방의학은 리스크(안전과 위험) 평가·관리·커뮤니케이션(의사소통), 병의 발생 예방, 건강의 질 증진과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사람의 심신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한 출발점이 토양(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흙이 건강하면 사람이 건강하다.

그렇다면 건강한 흙(토양)이란 무엇일까? 건강한(비옥한) 흙이란 유기물 함량이 충분해 유익한 미생물이 많은 상태로, 질소, 인, 미네랄 등 영양분에 과부족이 없고 산성도 알칼리성도 아니며(중성), 배수성과 통기성이 좋은 것이다. 흙은 흙알갱이와 공간(물, 공기)으로 구성된다. 흙알갱이가 흙의 50% 정도를 차지하고 물과 공기가 나머지 50% 정도를 차지한다. 이러한 공간이 있어야 식물의 뿌리가 숨을 쉴 수 있다. 이는 우리 삶에도 공간이 있어야 하고 쉬어가는 틈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건강한 흙은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 삶의 유연성과 탄력성을 의미하는 것일지 모른다.

흙의 차이는 식량 생산력의 차이로 나타나기 때문에 좋은 토양이 있는 곳에 농경지가 발달했다. 그러나 좋은 흙도 강수량(물, 기후)이나 태양에너지 양에 따라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비옥한 토양의 분포와 강수량, 인구밀도가 함께 분포한다. 농업이란 사람이 밭(흙)에서 작물을 가져가는 행위다. 그만큼 토양의 양분이 줄기 때문에 줄어든 만큼의 양분을 흙에 보급해줘야 한다(후지이 가즈미치, 홍주영 옮김, 2019). 그래서 의사가 진찰하고 약을 처방하듯, 흙의 건강상태를 진단(토양검정)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재배할 작물이 필요로 하는 양분을 적정하게 넣도록 처방(비료사용량 처방)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현재 226작물에 대한 처방이 가능하도록 했고 이를 흙토람(토양정보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건강 상태에 따라 처방받은 약이 좋다고 해서 그 약을 무조건 많이 먹는다고 좋은 것이 아니듯이 흙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비료사용량 처방을 지키는 것이 흙도 작물도 그리고 결과적으로 사람도 건강하게 하는 중요한 일이다. 의사의 처방이 인체의 생체시스템을 방해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최소한의 개입이듯이, 비료처방 역시 생태계 개입을 최소화하고 흙과 사람이 상생하는 방법인 것이다. 언제든 자연으로 환원할 수 있는 상생라이프 지혜라고나 할까?

올해 5월1일 시행된 공익직불제는 적정 비료사용량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비료사용량 처방을 준수하면 화학비료 사용량도 지금보다 최대 30% 가까이 줄일 수 있어서, 최근 논의되는 온실가스 감축에도 효과적 대응이 가능하다. 다만, 준수에 따른 변화와 효과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체계적인 모니터링 시스템을 만들어 농업인과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그러나 공기나 물처럼 늘 우리 곁에 있는 흙이지만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소중함이 간과되고 있고,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도 줄어들고 있다. 이제 흙은 개별 논과 밭의 자원이지만 공공재로서 우리의 건강한 삶의 출발점이자 환경과 상생하는 중요한 매개체임이 인식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