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범 여민동락공동체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당신은 당신 자녀들에게 돈 몇 푼 지원하면서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농촌에  남으라고, 내려가라고 권할 수 있는가! 내 자식에게 권할 수 없는 것을 다른 청년들에게 마치 그럴듯한 기회인 것처럼 말해선 안된다. 청년들이 바보가 아니다.

 

14년 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곳에 온 8살, 4살 두 꼬맹이가 어엿한 성인과 고3이 되었다. 격세지감이 따로 없지만 우리와 농촌의 현실을 보자면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누군가 그랬다. 수십년 친환경농사를 이야기하고 농가를 조직했지만 정작 자신의 자녀는 조직하지 못했다고. 남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웃과 지역을,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이야기하며 좋은 사람들 속에서,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자란 아이들이 건강하고 더 행복할거라 말했지만 정작 그런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 우리 아이들은 행복할까? 과연 농촌에 살고 싶을까!

시골에 내려온 첫해, 딱 한 번 원래 살던 아파트로 가자고 했지만 그 뒤론 별다른 말없이 두 아이는 학원과 입시에서 벗어나 '대 자유'를 만끽하며 살았고 그것이 아이들의 성향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3년 전이다. 첫째가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는데, 공교육은 나와 맞지 않아 고등학교를 자퇴하겠다”고 했다. 몇 번의 입씨름 끝에 결국 허용했고 대신 공동체에서 함께 일 할 생각은 없는지 넌지시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없어요. 도시로 나가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엄마, 아빠의 뜻은 좋은데 여민동락은 너무 일이 많아.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아.” 

그렇다. 전투적으로 살았다. 당시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했지만 우리 아이들은 필요할 때 함께 하지 못한 부모를 보며 여민동락의 일이, 농촌의 팍팍함이 좋게 보였을리 없다. 결국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아들은 짐을 싸 인근 도시로 나가 2년간 좋아하는 사진과 영상을 배웠다. 또한 자타가 공인하는 사회성으로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면서 마음 맞는 사람들의 일을 돕고 용돈도 벌며 열심히 놀았다.

그리고 1년 전 군 입영 통지서를 받더니 불현듯 짐을 싸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입대 전까지 인생계획을 세우며 또 열심히 놀겠다는 첫째는 지역의 학부모들이 운영하는 마을학교 영상반 강사로 자신의 초등학교 후배들을 가르치고 마을 이모가 운영하는 농장에서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 일을 거들며 원하는 대로 살았다.

며칠 전이다. 훈련소 입소 하루를 앞두고 가족끼리 조촐한 송별회를 했다. 인생계획은 세웠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3년 전 질문을 다시 꺼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크게 부정적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더 멀리 갈 생각이라며 스페인을 이야기 한다. 군 제대할 때쯤 코로나19는 종식되니 그때 떠난다는 그럴듯한 예견까지 덧붙인다. 물론 돌아 올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까지 건네면서.

그런데 그 다음 질문이 뼈아프다. “아빠 여기서 뭘 할 수 있어? 사람도 없는데 말이야. 이런 일거리야 지금은 할 수 있지만 돌아와선…” 물론 지역의 구상을 이야기하며 너의 그 능력이 필요하다 했지만 마음 한켠엔 말을 하는 나도 장담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둘째는 농고에 갔다. 농사에 '농'자도 모르던 아이가 갑자기 선택한 결정에 가족 모두가 걱정하며 제발 졸업만 해주기를 부탁했지만 이제 1년 남았다. 어느날 둘째가 물어봤다. 본인이 선택해 농고를 갔으면서도 농사지을 생각이 없다던 아이가 “근데 우리 농사지을 땅은 있어?”라며 말이다. 순간 당황하여 “졸업만 하면 말이야. 국가에서~~~” 농업 정책을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농촌의 현실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선 걱정이 앞선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첫째와 둘째의 선택지가 넓어졌다는데, 그들의 구상에 이곳도 포함될 수 있다는 여지에 안도와 희망을 느꼈다.

작년부터 서울시 청년허브와 청년 삶의 경로 탐색 프로젝트 '별의별 이주 00'을 함께 했다. 무한경쟁과 갈수록 벌어지는 격차사회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서울 청년들에게 다른 삶, 새로운 길이 있음을 보여주는 참으로 의미 있는 농촌 탐색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수많은 귀농귀촌 프로그램을 접하며 선배라는 이유로 강의도 했지만 당사자인 청년들 입장에서 고민하고 현실과 이상을 적절하게 잘 꿰어놓는 그들의 실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해도 이 프로그램으로 10여명의 청년들이 여민동락을 방문했고 그 중에 한 청년이 남았다. 그러나 다수의 청년은 여민동락의 지향과 가치엔 동의하지만 선뜻 농촌행을 실행하기 어렵다 한다. 맞다.

우리 아이들은 그나마 이곳에 부모가 살고 있고 일상에서 농촌을 경험하지만 도시 청년들은 무연고, 무자본에 기반이 매우 부실한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농촌은 도시에 비해 혈연과 학연 등의 사회적관계망이 강하여 진입이 어렵고 실패했을 때 포용해 줄 비빌언덕이 없다. 정글과 같은 도시와 비교해도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다.

청년이 미래다, 희망이다 말만 해서 안 된다. 수십조를 하드웨어와 프로그램에 쏟아 부은들 사람이 남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제 과감히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장기적으론 지역을 살리는 교육에 집중하여 우리 아이들이 남거나 돌아오게 하고 단기적으론 지역에 남거나 시골행을 감행하는 용기있는 도시 청년들에게 지역 활성화를 위한 적정수준의 활동비를 일정기간 제공하고 주거지를 마련해줘야 한다. 일본의 지역부흥협력대나 무주군 과소화인력대응사업이 좋은 사례다. 

당신은 당신 자녀들에게 돈 몇 푼 지원하면서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농촌에 남으라고, 내려가라고 권할 수 있는가! 내 자식에게 권할 수 없는 것을 다른 청년들에게 마치 그럴듯한 기회인 것처럼 말해선 안 된다. 청년들이 바보가 아니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