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천 강원도신농정기획단 연구원

[한국농어민신문]

농특위 ‘농정대전환 작업’ 존중하지만
농어업·농어촌 그린뉴딜 등 뭔가 허름
치열한 평가·반성 거쳐야 국민들 납득

뭔가 한방이 없는 느낌이다. 농특위에 아쉬움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농정개혁을 주장하고 제안하는 계기라도 마련하는 농특위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긍정적 태도로 농특위의 논의를 담은 문서들을 보게 되면, 이만큼이나 앞선 공적인 문서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평가와 반성’ 대목에서 민(民)의 시각이 스며들어 있음이 감지된다. 대조적으로 행정이 작성하는 공문서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이다.

과거에 대한 평가 부분을 보자. 농특위는 과거 신자유주의 국가모델 농정의 농업발전 전략은, 생산주의(성장주의)·경쟁력주의(구조개선)·설계주의(보조금 위주) 농정이었다고 정리하고 있다. 팩트체크일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이러한 과거 농정이 ‘양적성장’과 ‘구조조정’을 실현했다고 평하고도 있다. 어떤 실현?

평가는 위기 분석으로 이어진다. 과거 농정은 경제적·사회적·환경적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다양한 위기를 발생시켰다고 진단하면서, ①농업농촌이 직면한 기후위기와 생태환경 악화 ②국민 먹거리의 위기(먹거리불안·불평등) ③지역의 위기(농어촌소멸·도시과밀화) ④농가안전망의 위기(농산물가격불안·도농소득격차확대) 등 위기를 4가지 범주로 압축해 언급하고 있다.

반성은 사뭇 강렬하기까지 하다. 농업농촌의 대전환 없이 기후·먹거리 위기 해결은 불가능하며, 기존 농정의 전환 없이 농업농촌은 지속 불가능하다는 언명. 여기서 강렬한 핵심 키워드는 ‘불가능’이다. 지금 전환하지 않는다면, 전환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농업농촌은 그 무엇도 ‘불가능’하다는 반성적 통찰일 수 있다.

농정대전환을 위한 농특위의 공동 작업들을 존중한다. 12대 개혁 아젠다와 3대 중점 추진전략(19.12) 그리고 농어업·농어촌 그린뉴딜(20.9)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뭔가 허름하다. 결정적 한방이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이 문제일까? 농특위의 역할을 기대하며 두 가지 문제만 언급한다.

첫째, 평가와 반성의 충분하지 않다. 앞서 언급한 4가지 범주의 위기를 상기해 보자. 이러한 위기 수준을 과거 농정이 양적성장과 구조조정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부작용 수준’으로 볼 수는 없다. 결과 수준은 실로 무지막지하기 때문이다. 과거 농정은 농업농촌의 근간을 흔들어버렸다. 국가존망의 위기를 초래했다.

물론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과 ‘대전환’을 천명하는 것이겠다. 그러나 막상 이런 반응이 아닐까? ‘이해는 잘 안 되지만, 뭔가 잘못되기는 했나보군.’(보통의 국민) ‘불가능하니 전환하자면서 새로운 것은 없고 잡다하군.’(현장의 농민) 현재로서는 국민에게도 농민에게도 호응을 끌어내지 못하는 형국이다.

수십년 동안 과거 농정의 규정을 받으며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중이다. 어찌어찌 대처하며 지나고 돌아보니, 농업농촌의 미래가 한없이 불투명해졌다. 농본(農本)이라 했거늘 뿌리 채 뽑혀나갈 지경이다. 이 결과적 대위기의 책임소재를 따지자면, 나도 당신도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과거 농정에 젖은 존재들이 대전환의 길을 선도할 수 있기는 할는지, 그것부터 의심스럽다.

대전환은 평가와 반성의 시작점이 아니다. 길고 시끄럽고 고통스러운 평가와 반성의 결과점이어야 마땅하다. (과거 농정에 대한) 그런데 평가가 너무 간소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반성과 대전환의 제언은 논리적 비약으로 들린다. 평가와 반성이 치열하고 처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대체로 희망의 길을 찾아나가자는 느낌만 준다. 현장에서 울림이 없는 이유다.

둘째, 농정대전환이라면 사람 중심의 정책을 최우선에 두는 ‘다름’이 확인되어야 할 텐데 아주 미흡하다. 변화를 체감하려면 사람에 대한 길고 집요한 관심과 투자가 피부로 느껴져야 한다. 생산·구조에서 사람으로 확연히 이동한 것이 보여야, 비로소 농정틀(패러다임) 전환의 실체가 감지되는 것 아닐까?

농업에서 농촌으로 정책이 주목하는 바가 이동해야 할 것이고, 농사를 짓든 아니든 청년·여성·고령자에 대한 각별한 기획이 요구된다. 농민을 더 치밀하게 구분해서 적절하게 힘을 북돋워야 한다. 예산은 미래의 주체인 사람에 투자하는 방향으로 조정되어야한다. 실적이나 따져서는 어림도 없는 일인데, 바로 그 다른 방식을 추진한다면 대전환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미래를 열어가는 새로운 주체 형성’은 여전히 무책임한 희망사항의 나열로 들린다. 최근 대통령 발언을 보자. “농촌에서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과 귀농인들이 농촌에 혁신과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희망사항이다. “2030년까지 밀 자급률을 10%로, 콩은 45%까지 높일 것입니다.” 치밀하지 못한 틀린 말이며 꿈같은 말이다. 청년들을 세련된 스마트팜으로 안내하는 농정이다. 땡볕에 대접도 못 받는 밭농사를 누가 감당하며 지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인가?

과연 논쟁다운 논쟁을 거치고 있는가? 치열한 평가와 반성은 농정대전환의 출발이다. 그래야 국민이 고개 끄덕인다. 사람을 믿고 사람을 키우는 일은 농정대전환을 통해 가야할 길이다. 그래야 국민이 신뢰로 전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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