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병성 기자]

2020년산 쌀 생산량이 350만7000톤으로 공식 확정됐다. 지난해 생산량 374만4000톤 보다 6.4% 감소한 물량으로 긴 장마와 태풍 등 기상재해 때문이다. 이로 인해 RPC의 벼 매입량이 지난해보다 대폭 감소했고, 일부 지역을 시작으로 매입가격 결정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작황이 저조해 쌀자급률이 급락하는 등 식량안보를 위한 양곡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 쌀 생산량 조사 결과 

재배면적 0.5% 소폭 준 반면
긴 장마에 태풍피해 겹쳐
올 생산량 전년비 6.4% 감소

통계청은 12일 2020년산 쌀 생산량이 350만7000톤(현백률 92.9% 적용)으로 지난해 374만4000톤보다 6.4% 감소했다고 확정 발표했다. 벼 재배면적이 지난해보다 0.5% 소폭 감소에 그쳤지만, 긴 장마로 일조량이 급감했고, 9월에는 태풍 피해가 겹쳐 올해 흉년이 든 것이다.

통계청의 쌀 생산량 조사에 따르면 올해 벼 재배면적은 72만6000ha로 지난해 73만ha보다 0.5% 감소했다. 또한 10a당 생산량은 483kg으로 지난해 513kg보다 5.9% 줄었다. 2013년 이후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508kg(2013년)~542kg(2015년)을 기록해 왔지만 올해는 400kg대로 급감한 것이다.

기상재해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54일 지속된 사상 최악의 장마와 일조량 부족, 집중호우, 연이은 태풍 등 기상재해가 동시다발 겹친 것이다. 실제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벼 유수 형성 및 수잉기(7월 상순~8월 상순) 일조시간이 134.5시간으로 2018년 342.2시간, 2019년 258.8시간보다 크게 감소했다. 강수량은 698.6㎜로 평년보다 매우 많은 비를 기록했다. 출수 및 개화기(8월 중하순) 강수량도 123.7㎜로 지난해 103.4㎜보다 많았다. 이로 인해 1㎡당 완전낟알 수가 2만8342개로 지난해 3만44개보다 5.7%나 적은 것으로 통계청 조사에서 나타났다.

시도별 생산량은 경기도가 34만8000톤으로 지난해 37만4000톤보다 6.8% 줄었고, 강원도는 12만7000톤으로 지난해 15만1000톤보다 15.6% 급감했다. 충남은 67만8000톤으로 지난해 70만9000톤보다 4.5% 감소했고, 충북은 16만1000톤으로 지난해 17만4000톤보다 7.6% 줄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쌀이 생산되는 전남의 경우 68만8000톤을 기록해 지난해 72만5000톤보다 5.1% 줄었으며, 전북은 55만6000톤으로 지난해 60만5000톤보다 8.1% 적었다. 경남은 31만4000톤으로 지난해 33만2000톤보다 5.3% 감소했고, 경북은 49만5000톤으로 지난해 52만9000톤보다 6.5% 줄었다.

이 같은 통계청의 쌀 생산량 조사는 전국 6300개 표본구역에 대한 현지 방문 실측 조사로 진행됐다. 표본구역 3㎡의 벼를 수확해 탈곡, 건조, 제현 후 현미 무게로 단위 면적당 쌀 생산량을 산출한다.


 #RPC 벼 매입량 지난해보다 적어 

쌀 생산량 감소로 인해 RPC의 벼 매입실적도 지난해보다 떨어지고 있다. 11월 10일 기준 농협RPC 142개소의 자체 벼 매입량은 59만1000톤으로 집계돼 지난해 같은 기간 68만7000톤의 86% 수준을 보이고 있다. 또한 농협DSC·농협도정공장 매입량도 26만5000톤으로 지난해 28만9000톤보다 적은 물량이다. 그나마 RPC와 DSC를 운영하지 않는 일반농협의 경우 매입량이 23만1000톤으로 지난해 23만5000톤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농협의 전체 매입량은 10일 기준 118만7000톤으로 지난해 121만1000톤보다 12만5000톤이 줄었다. 또한 올해 165만톤의 매입 계획을 잡고 있지만 현재 추세라면 목표량을 채우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민간RPC들의 매입실적도 떨어지긴 마찬가지다. 11월 9일 기준 15만톤으로 지난해 보다 5.9%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농협경제지주 양곡부 관계자는 “농협DSC와 일반농협보다 농협RPC의 지난해 대비 벼 매입 비율이 더 낮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며 “건조저장 시설을 갖춘 대농들은 주로 RPC에 출하를 하는데 올해는 대농들의 자가 저장 물량이 늘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벼 생산량이 감소하고 RPC의 벼 매입량도 줄어든 가운데 산지 벼(조곡)값도 서서히 윤곽이 잡히고 있다. 경기도, 강원도, 전북 등 일부 지역에서는 RPC들이 올해 매입가격을 확정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매입가격 추이를 보면 경기도의 경우 벼 40kg 포대당 최고 8만1000원을 책정했다. 전북에서도 최고 7만1500원 안팎의 매입가격이 나오는 가운데 일반품종은 6만9000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북의 RPC 관계자는 “통계청 쌀 생산량이 발표됐기 때문에 이달 중으로 벼 매입가격이 결정될 것”이라며 “현재 벼 생산량이 많은 전남북의 경우 신동진 품종은 7만1000원 선이고, 일반 품종은 6만9000원 정도의 시세를 이루고 있다. 충남의 경우 고품질 삼광이 7만1000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산지동향을 전했다.

벼값이 더 오를 수 있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충남의 RPC는 관계자는 “쌀생산량이 크게 감소한 것은 분명한 현실로 확인된 만큼 벼를 더 확보하려는 수요가 많아 산지 벼값도 추가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고 예측했다.
 

 #정부는 “쌀 공급 이상 없어” 

수급불안 여론 원천차단 속
정부양곡 공매 검토 나서

농림축산식품부는 쌀생산량이 지난해보다 6.4% 감소했지만, 쌀 공급에는 문제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산지쌀값 상승에 따른 가수요 등이 발생해 수급불안이 예상되면 정부양곡을 공급해 쌀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방침이다. 농식품부가 쌀시장 안정을 위해 가용할 수 있는 물량은 2020년산 공공비축비 34만톤 중 일부 물량과 2019년산 24만톤, 2018년산 13만톤 등이 있고, 수입산 또한 46만톤을 저장해 놓고 있다.

이처럼 2020년 9월말 기준 정부양곡 재고량은 95만톤에 달해 쌀공급 여력이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농식품부는 또 2020년산 밥쌀용 신곡 수요가 291만톤 수준으로 예측된다며 수급불안을 조장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이달 중으로 ‘양곡수급안정위원회’를 열어 쌀 수급대책을 논의한다는 계획도 잡고 있다. 정부양곡 공매물량과 방출시기가 중점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양곡수급안정위원회는 농식품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농민단체, 소비자단체, 산지유통업체(RPC단체), 전문가 등이 참여한다.

농식품부 식량정책과 관계자는 “쌀 수급에 문제되지 않도록 수요에 비해 부족한 물량은 정부양곡 공급으로 안정시켜야 한다”며 “다만 구체적인 정부양곡 공매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논란의 쌀생산 통계 

통계청 쌀 생산량 통계 두고
산지농민·RPC 의문 여전
내년 3~4월 경 검증 가능

산지 농민과 RPC들은 통계청의 쌀 생산량 통계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20~30% 가량 수확량이 줄었다는 게 농민들의 전국적인 지적이다. RPC들 또한 매입량이 줄어든 것은 농가보유량도 원인이겠지만, 무엇보다 쌀 생산량 감소가 주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통계청이 발표한 쌀 생산량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산지RPC 등 양곡유통업계에서는 빠르면 내년 3월 이후 통계청 쌀생산량 통계에 대한 신뢰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늦어도 6월 재고량을 파악하면 된다는 것이다. 정확한 물량을 추정할 수 없는 농가보유 물량이 일반적로 3~4월 이후에 대부분 출하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농협(RPC, DSC, 농협창고 보유량)과 민간RPC들의 벼 재고량을 집계해 보면 된다는 것이다.

일선 RPC 관계자들은 “쌀 생산량이 정부통계이기 때문에 무조건 부정할 순 없다”며 “그러나 현장 체감과 통계 수치 차이가 많은데, 3~4월 경 산지의 벼 재고량 등 수급상황을 분석하면 통계가 어느 정도 정확했는지 확인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식량안보 위한 양곡정책 다시 짜야 

자연재해로 잇단 흉년
식량안보 빨간불 우려 고조
강도 높은 쌀대책 마련 여론

식량안보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기상재해로 인한 흉년과 쌀 재배면적 감소로 생산량 역대 최저치를 매년 갈아치우고 있는데,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주곡인 쌀 자급률 하락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 밥쌀용으로 공급여력이 있다고 하지만 가공용(사업체 수요)을 포함하면 쌀 자급률이 100% 밑으로 떨어진다. 2018년 75만5000톤, 2019년 74만4000톤 등에 달한 사업체의 가공용 수요를 포함해서다. 2020년산 쌀 전체 수요량을  밥쌀용 291만톤, 사업체 가공용 75만톤으로 각각 가정하면 총 수요량은 366만톤으로 이미 국내 생산량을 뛰어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현재 가공용의 상당한 물량이 수입산이다.

이처럼 그동안 안심하고 있던 쌀 자급률마저 불과 1~2년 사이 위태로운 상황으로 반전된 가운데 정부가 양곡정책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국쌀생산자협회는 지난 11일 국회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연재해로 인한 쌀 생산량 감소는 재난 수준이다. 양곡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시기가 됐다”며 “쌀 생산량을 줄이기 위한 쌀 생산조정제가 아니라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회에서도 쌀 대책을 강도 높게 주문하고 있다.  서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11일 농업인의 날을 맞아 농업이 생명산업, 국가 기간산업, 민족공동체의 터전이며 새로운 시대에 맞는 과감한 농정변화와 국가식량계획 및 식량자급 체계 구축을 말씀하셨다”며 “농정당국이 대통령의 농정철학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데, 농업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병성 기자 leeb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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